Scenario Writer : 팀 가나다(@RPGGND)

 

2021. 07. 25, 10. 22

천가람 X 권서율

KP : 곰탱

PL : 레시 펜들턴

 

 
세션카드
 
Written By. 팀 가나다
 
철거 예정 청춘 1길
 
2021. 07. 25
 
15 : 34
 
KPC 천가람
 
PC 권서율
 
START
 
‘다음 역은 ■■입니다. 내리실 문은-’
 
덜컹, 덜컹.
 
기차가 건네는 리듬은 불친절합니다.
 
그 엇박자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즈음, 창가 너머로 이제 익숙한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가 뜬 낮, 밖은 모든 게 싱그러운 생명이 완연한 여름입니다.
 
당신이 앉아 있는 곳은 고등학교 때 살았던 동네로 가는 기차 안입니다.
 
기차에 남은 사람은 몇 없어 적막하기만 합니다.
 
하긴, 이제 그 동네 전체가 철거 예정이라 했던가요.
 
본래도 큰 동네가 아니었지만, 학생 수가 줄고 하나둘씩 떠나며 자연스레 유령 마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졸업 후 그 마을을 떠난 이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방문하는 것도 5년만일까요.
 
7년 전 죽은 누군가의 기억이 스며든 장소에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을 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손에 들린 편지가 유독 무겁습니다.
 
몇십 번이고 읽었을 그 편지가요.
 
어쩐지 꿈을 꾸는 기분입니다.
 
이 모든 게 신기루 같아 괜히 편지에 눈길이 갑니다.
 
권서율:(기차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창가 너머만 바라보다가 제 손에 들린 편지를 봅니다. 읽으면서도 유독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여러 번 들여다 봤었죠. 이젠 눈을 감고도 편지의 서두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천가람, 천가람....
 
익숙하고도 그리운 이름입니다.
 
닳도록 불러도 사라지지 않는 게 이름인데, 그 이름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니까요.
 
7년 전,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날 당신의 선배이자 첫사랑인 가람은 죽었습니다.
 
이별은 한순간이지만 다행히 인사할 시간이 주어졌었단 것에 감사해야 할까요.
 
그게 비록 서로의 의지로 인해 만들어진 시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이 편지는 누구에게서 온 건가요?
 
권서율 관찰 판정
 
권서율: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구겨질 때까지 읽은 편지의 필체는 가람의 것이 확실합니다.
 
주소 하나 없이 갑자기 당신의 집 앞에 떨어진 편지.
 
어느 누가 칠 수 있는 장난도 아닙니다.
 
권서율:(괜스레 구겨진 부분을 손으로 쓸어서 펴봅니다. 최대한 자국을 없애본다고 해도 이미 종이에 남아버린 흔적은 쉬이 지워지지 않네요. 조금 더 조심해서 볼걸, 미약한 후회가 머릿 속을 맴돕니다.)
 
기차는 잡념 하나 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립니다.
 
당신은 어째서 이 편지를 따르고 있는 건가요?
 
그곳에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편지의 주인까지도.
 
권서율:(평소의 자신이라면 이런 믿기 힘든 편지를 따라 전에 살았던 동네로 돌아가는 건 하지 않았겠죠. 이런 걸 어떻게 믿겠어요. 누군가가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는거라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겁니다. ..하지만, 7년 전의 그날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번에도 천가람이 무슨 짓을 해서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된게 아닐까요? 천가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잖아요. 그 일말의 믿음이 저를 움직이게 한 거겠죠.)
 
속은 셈 치고 가는 동네는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일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요.
 
재개발 후에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탈바꿈 되어 있겠죠.
 
떠드는 사람 없는 한적한 기차.
 
산길과 바닷길을 달려 창문의 풍경이 휙휙 달라집니다.
 
너른 햇살에 천천히 눈이 감겨요.
 
수마에 사로잡힙니다.
 
어차피 당신이 도착할 곳은 종점이니까, 졸음을 굳이 참을 필요는 없는 거 같습니다.
 
편지를 받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일까요.
 
창가에 기댄 머리가 점점 아래로 떨어집니다.
 
의식 역시 꿈의 어딘가로 떨어져가고요.
 
덜컹.
 
기차의 리듬이 희미해집니다.
 
장면전환
 
천가람:후배님?
 
끔뻑, 그리운 목소리에 눈이 천천히 떠집니다.
 
비몽사몽 정신을 간신히 일깨우면 청명한 하늘이 보입니다.
 
그리고, 눈앞의 가람까지도요.
 
아. 눈을 뜨니 우리는 옥상에 있습니다.
 
권서율 정신력 판정
 
권서율: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천가람?
 
상황파악을 하는 것도 잠시, 평소에 자주 꾸던 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이 보냈던 여름의 언젠가.
 
찾아올 운명을 꿈에도 모른 채 마냥 즐겁기만 했던 나날 중 일부입니다.
 
동네로 가던 길 마음이 뒤숭숭했을까요, 이런 꿈을 꾸다니.
 
눈앞의 가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난간에 기댄 채 당신을 마주 봅니다.
 
천가람:자다 깬 거야? 악몽이라도 꿨어?
 
조용한 옥상은 어느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당신과 가람만 이 학교에 남은 것처럼.
 
권서율:...선배.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이 어디인가 가늠해보다 천가람에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많이 피곤했나보네요. 기차를 타는 중에서도 이런 꿈을 다 꾸고.)
 
천가람:응? (웃는 낯으로 고개를 기울입니다. 갑자기 자다 일어나서 자신을 부르는 서율이가 조금 낯선 듯)
 
권서율:잠깐.. 졸았나봐요.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말하며 자세를 바로 고쳐앉습니다.) 제가 잠이 덜 깨서 그런데, 우리 지금 뭐하고 있었어요?
 
천가람:공부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의대 간다고 하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직 1학년인데~ (넉살 좋은 표정으로 말하더니) 지금? (어떤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사실 서율이 잠든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든 서율만 바라봤던 지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그냥 요즘 떠도는 얘기 중 하나를 해볼까요) 우리 학교 곧 있으면 폐교된다는 얘기 하고 있었을 걸? 당장은 아니고. 너 졸업할 때 즈음엔 그런다더라.
 
문득 가람의 입에서 낯선 단어가 흘러나옵니다.
 
아냐, 낯선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가며 그에 관한 소문을 얼핏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기억해보면 이맘때 즈음부터 학생 수도, 동네 주민 수도 빠르게 줄었던 거 같아요.
 
권서율:(그렇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 같은 거에 신경을 두질 않기에 늘 뒤늦게 천가람을 통해서 소문을 접하곤 했었죠.) 제가 졸업할 쯤에요? 꽤.. 빠르네요. (1학년인 지금에서는 크게 가늠이 오지 않지만요,)
 
천가람:그렇지? 나도 조금 놀랍긴 하더라. (그래도 네가 이 학교에서 끝까지 있을 수 있단 사실 하난 다행인 것 같아. 입 밖으로 꺼내면 부담이 될까봐 부러 말을 않는다) 최근에 사람 수가 많이 줄긴 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권서율:조금 아쉽겠어요, 선배. 저는 이제 입학한 거라 그렇게 크게 와닿진 않지만, 선배는 3년 동안 다닌 학교잖아요. (3년의 학창시절을 보낸 학교가 폐교가 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뒤숭숭하지 않을까?)
 
천가람:음.. (아쉬운가? 잘 모르겠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고민한다) 어차피 나 졸업해도 너 보러 가끔?은 아니고 자주 올 거라 딱히 상관 없는데.
 
권서율:..자주 온다고요? (여기를? 눈을 깜빡이며 천가람을 바라봅니다.) ...졸업하고 나면 보통 바빠지지 않아요?
 
천가람:(여전히 웃는 낯으로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서율을 봅니다) 글쎄? 바빠지긴 하겠지만... 여기 올 시간은 만들어야지. (네가 여기 있잖아. 이번에도 부담이 될 게 뻔한 말은 하지 않기로 해요. 이러다간 서율이 졸업하고서도 전하지 못할 것 같네요)
 
권서율:(바빠지더라도 자신을 보러 올 시간은 만들 거라는 말에 괜히 가슴 속 어딘가가 술렁였었죠. 그땐 천가람처럼 챙겨주던 선배가 많지 않았기에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느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천가람이 자신을 콕 집어 보러 올거라는 저 말이 기뻐서 그리 느끼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신만 보고 갈 건 아니겠지만, 저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것 정도는 죄가 아니잖아요.) 그거, 기쁘네요. 선배가 졸업하고도 가끔... 아니,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게요. (천가람을 따라 희미하게 눈을 접어 웃어 보입니다.)
 
천가람:연락도 자주 할 건데, 직접 만나는 게 더 좋지. 역시? (어차피 졸업하고나서 대학도 가지 않을 거라 할 게 없기도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를 미래이지만, 이렇게까지 콕 집어 구체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상대가 권서율이라서. 물론 제 상태로 보아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자신을 보며 옅게 웃는 서율을 따라 웃다가 불현듯 터져나오려는 기침에 팔로 입가를 가려요. 아픈 건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요)
 
권서율:그렇죠. 연락보단..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마주하는 게 좋을 수 밖에 없잖아요. 이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으니까. 그 생각이 들자 제 팔로 입가를 가리는 천가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선배, 어디 불편해요? (안 되는데. 이건 꿈이잖아요. 꿈이면 조금은 평화로워도 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까지 그때와 비슷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천가람:.. 응? 아니야, 그냥. (서율의 물음에 천천히 팔을 내립니다. 날이 더워서 그랬다는 핑계로 적당히 넘어가기엔 입가를 가렸으니, 앞뒤가 맞지 않겠죠. 양손을 들어 가로저으며 자신은 정말 괜찮다는 뜻을 전합니다. 괜찮은 척 하기엔 도가 텄잖아요. 2년 전, 어머니를 보냈을 때도 자신은 초연했습니다. 그래요.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어요) .. 날이 너무 덥다. 그치?
 
권서율:(아닐리가 없잖아. 그때 당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혼자 괴로워했음을 알아버렸는데. 그런데도 자신은 무엇하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뒤늦게 천가람 네가 죽고 나서야 겨우 조금 알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자신은 괜찮다고 넘어가는 천가람에게 무어라 반박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게요. 이제 여름에 들어섰다고, 날이 자꾸 더워질려고 하네요. 이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옥상에도 있기 힘들겠어요.
 
천가람:... 그러네. 여름 되면 어디 가지? 옥상이 내 아지트인데.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십니다. 물론 제게 여름이 주어지지 않을 거란 건 잘 알고 있어요.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상태입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시한부나 다름 없죠.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은 희망을 바라고 내일을 바라보고 사는 법이에요. 자신의 한여름에 서율도 같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요)
 
권서율:그땐, 다른 아지트를 찾으면 되겠죠. 저도 같이 찾아볼게요. (그리 말하며 눈을 감은 채 학교 내 어디가 아지트로 괜찮을지 고민해봅니다. 애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조용하잖아.) ...도서실은 어때요? 거기엔 에어컨도 있잖아요. 어차피 다른 애들은 거기 잘 이용하지도 않으니 한적하기도 하고, 구석에 있으면 책장에 가려져서 사서 선생님 눈에도 잘 띄지 않겠죠. (잠깐, 도서실에서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노닥거리면... 조금 그럴까요?) ...겸사겸사 책도 읽을 수도 있고요.
 
천가람:도서실? (나쁘진 않은데. 공부만 하는 후배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제법 자신다움에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근데, 도서실에서 그래도 되려나) 난 별로 책 안 읽는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더니) 도서실에서 떠들어도 되나?
 
권서율:(아차.) 떠드는 건... 안되지 않을까요? (어떡하지. 눈을 가볍게 깜빡이며 다른 곳은 없을까 떠올려봅니다. 자신은 한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지만 천가람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으니까요. 잠에서 깨면 쓸모없어질 고민이겠지만... 지금 제 옆에 천가람이 있는 걸요. 진지하게 받아줘야죠.) ...선배는 괜찮은 곳 알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같이 찾아보겠다고 해놓고는 별달리 떠오르는 게 없음에 조금 부끄럽다는 듯 한숨을 쉽니다.)
 
천가람:역시 그렇겠지..? (조금 아쉽네요.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조금 로맨틱한데 말이죠. 떠들지 않는다면 나중엔 한번 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자신이 말을 정말 안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같이 고민해주다 끝내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곤 작게 웃어버립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뭘 하든 귀여워 보인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아요) 음.. 학교 뒤쪽이 조금 괜찮긴 한데. 거긴 가끔 담배 피러 오는 양아치들이 있어서. 후배님 데리고 가기엔 좋은 곳은 아닐 것 같아. (학교를 다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둘이 있을 곳을 생각해 보니 많이 없네요. 학교 부지가 이렇게 좁았던가. 괜히 학교를 탓해봅니다)
 
권서율:(여기에도 양아치가 있구나.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봐요.) 음... 하나 둘 따져보니까, 갈 곳이 없네요. (사실은 천가람이랑 같이 있는 거라면 어디든 상관 없는데.) ...선배, 그러면 나중에 같이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찾아보는 건 어때요? 지금 이렇게 떠올려보는 것보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으면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 보일지도 모르잖아요.
 
천가람:(따라서 하늘을 보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서율의 말에 약간 놀란 듯 시선을 내려 서율을 봅니다. 같이 다니자고 할 줄은 몰랐던 듯 해요. 그야, 지금까지의 서율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었으니까. 혼자만의 짝사랑이잖아요, 이건. 그런데... 아니었나요? 눈을 깜빡이듯 눈가가 찌푸려졌다가 펴집니다) 음~ 그럴까? 왠지 그게 더 나을 것 같네. 어디가 맘에 드는지도 알 수 있고.
 
권서율:선배 아지트라지만.. 거기에 저도 자주 있을 건데, 따로 찾고 있을 바엔 같이 찾는 게 시간도 아끼고, 고민도 덜하지 않을까요?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이 어떤 식으로 들렸을까 싶어 변명 아닌 변명을 늘여놓아 봅니다. 물론 자신은 진심으로 한 말이지만... 천가람은 아니잖아요. 혹여나 제 속내가 비칠까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들키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에 겨우 천가람의 아지트에 자신도 당연히 있지 않겠냐는 말만 내뱉습니다. 우리 사이에 이정도는, 바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천가람:당연하지. 아마 너밖에 없을걸? (어깨를 으쓱이며 당연한 말을 한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자신이 굳이 아지트를 찾아서 만들어낸 이유도 권서율 때문이었잖아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둘이서만 있고 싶은 마음에. 그러니 두 번째 아지트에도 우리 둘만 있는 게 당연해요. 변하지 않는 진리 같은 겁니다)
근데, 시험 끝나면 뭐 할 거야?
 
권서율:(당연하다는 말에 내심 긴장했던 것이 풀렸는지 작게 숨을 내쉽니다. 당연하대요. 저 말의 속뜻이 어떤지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말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술렁입니다. 괜스레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진정해봐요.) 시험이 끝나면... 뭐가 부족했는지 오답정리도 해보고, 보강해야 하는 건 뭔지 체크도 하고...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며 해야 하는 일들을 나열해나가다 잠시 말 끝을 흐리며 뜸 들입니다. 슬쩍 곁눈질로 천가람을 보네요.) ...너무 이런 것만 하면 힘들겠죠? 이번에 반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꼭 보라고 한 영화가 있었는데. 그거도 한번 보고 싶네요.
 
천가람:(손가락을 접으며 자신이 할 일을 체크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권서율스럽다는 생각 밖엔 들지 않습니다. 시험을 위해 그만큼 고생했으니 한번 정도는 쉬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말이죠. 그런 생각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자신을 곁눈질하며 넌지시 말하는 목소리에 푸슬 웃습니다) 그럼 그거라도 같이 보러 갈래? 어떤 영환데?
 
권서율:(무심결에 반 친구라고 했는데, 이즈음에 개봉했던 영화가 무엇이 있었는지 자신이 기억할 리 없습니다. 당장 지금 상영 중인 영화도 동기들이나 친구에게 알음알음 전해 듣는걸요. ...아니, 어차피 내 꿈인데. 아무거나 말해도 되지 않아? 왜 자꾸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걸까요. 그만큼 이 꿈이 현실이길 바랐기 때문일까요? 천가람의 말대로 자신이 지금까지 악몽을 꾼 거였다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요? 그런 생각도 잠시,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저어 흔듭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어떻게 당신과 작별했는데.) 어떤 영화였더라, 친구가 말하는 걸 주의 깊게 듣질 않아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로맨스 영화였던 것 같은데. 꼭 그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영화관에서 끌리는 거로 고르면 되지 않을까요? (대충 얼버부리듯 말을 마무리합니다.)
 
대화를 하고 있다 보면, 문득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요. 여름이죠.
 
곧 있으면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주어질 겁니다.
 
시험이 끝나고 같이 뭘 할지 약속했던 기억은 없지만, 꿈이니까 한번쯤은 이런 말을 건네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가람의 대답은 당연히 당신이 바라는 것이 될 게 뻔하고요.
 
그야, 이건 꿈이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가람에게 건네줄 말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요.
 
당신이 여름에 멈춘 그에게 건네줄 수 있는 건 제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건넬 수 있던 건, 말이 아닌, 희고 흰 국화꽃 한 송이가 전부였으니까요.
 
가람은 7년 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당연하죠, 당신의 기억은 그때에 멈춰있으니까.
 
선배 A: 뭐야, 너 오늘도 여기 있냐?
 
한 학생이 옥상 문을 열고 가람에게 다가갑니다.
 
이 역시 익숙한 얼굴이에요.
 
가람이 죽었던 날, 저 환하게 웃는 얼굴에선 상상도 못 할 표정을 지었던 선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람은 평소처럼 웃습니다.
 
천가람:여기가 내 아지트잖아.
 
당신은 그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나요?
 
물론, 이곳은 그저 꿈이지만…
 
권서율:(...봄과 초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의 천가람도 보고 싶었는데.)
 
천가람:아, 맞다. 후배님. 학교 끝나고 시간 있어?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는데.
 
가람은 제 친구를 밀어내며 당신에게 고개를 돌려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대화도 나누었던가요?
 
입을 떼려던 찰나, 부드럽지만 아무 감정 없는 기계음이 울려 퍼집니다.
 
'다음 역은- 종점으로-'
 
시야가 흔들리고, 또 흐릿해집니다.
 
그리운 풍경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해요.
 
마지막으로 본 가람은 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7년 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요.
 
장면전환
 
번쩍, 눈을 뜨면 다시 기차 안입니다.
 
눈가가 시려오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기차는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습니다.
 
몇 없는 승객들도 짐을 챙겨 하나둘씩 자리를 뜹니다.
 
당신도 나가야 할 거 같아요.
 
권서율:(깜빡, 조금 전까지 자신이 천가람과 있던 학교 옥상이 아닌 기차 내부가 왜인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분명 여기가 현실일 텐데 말이에요. 잠시 앉은 채로 생각을 정리하고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영화 같이 보겠냐는 확답, 듣지 못했는데.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네요.)
 
밖으로 나가면 익숙한 역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동네를 떠날 때도, 이삿짐까지 모조리 옮긴 후에도 지나왔던 역입니다.
 
권서율 지능 판정
 
권서율: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여기 역 이름이 왜 햇귀인 줄 알아? 왜냐면…’
 
드문드문 가람과 나눴던 대화가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재생됩니다.
 
그 뒷말까진 생각나지 않지만요.
 
괜히 고개를 올려 역을 보면, 다 녹슨 판에 적힌 ‘햇귀역’이 보입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자, 어쩐지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무얼 바라고, 무얼 생각하고 여기까지 온 건가요?
 
7년 전 죽은 선배로부터의 편지라니….
 
어느 누군가의 지독한 장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미소리가 울려퍼집니다.
 
꿉꿉하고 더운 날씨에 편지를 잡은 손에 얼핏 땀이 뱁니다.
 
철거 전 마지막으로 동네를 둘러 보아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변했고, 또 어떤 모습으로 사라질지 마지막으로 지켜볼까요.
 
더듬더듬 익숙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길 수 있습니다.
 
권서율:(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고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역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이 어땠더라. ..뭐, 발길이 닿는 대로 가다보면 기억나겠죠. 이곳으로 돌아온지, 자그마치 5년 만이잖아요.)
 
역을 지나 인도를 따라 걸으면 굴착기나 큰 트럭, 그 외 철거 작업을 위해 모인 사람과 장비들이 보입니다.
 
그중 한 사람이 당신을 힐끗 보더니, 잠시 손을 들고 소리칩니다.
 
인부: 두고 오신 물건이라도 있어요?
 
권서율:(왜 저런 걸 물어보는 걸까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단은 가볍게 고개만 까딱여 인사해봅니다.) ...아뇨. 두고 간 물건은 없는데... (아, 설마. 이젠 철거로 인해 들어갈 수 없게 된건가?) 혹시, 지금 동네 출입이 통제된 건가요?
 
인부: 아뇨, 그건 아닌데. 오후부턴 마을 전체를 걸쳐 철거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위험해서요. 철거 중인 곳 주변에만 오지 않으시면 됩니다. 밤에는 마을 전체를 닫아두니 해가 지기 전에 나와주세요.
 
권서율:(그나마 다행이네요. 여기까지 와놓고서 허탕칠 뻔 했어요.) 그런가요. 네, 알겠습니다. 해가 지기 전엔 나갈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철거 중인 곳만 가지 않으면 된다. 작게 중얼거리며 기억해놔요. 흠... 학교는 철거를 마지막에 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잖아요. 인부에게 다시 인사하고는 학교가 있는 쪽으로 갑니다. 언제 철거할지 모르니 역시 다른 쪽을 기웃거리는 것보단 원래 목표했던 곳을 가는 게 좋아보여요.)
 
본격적인 철거 시작일은 오늘이었나 봅니다.
 
해가 지면 모든 작업이 멈춘다고 합니다.
 
어둠은 늘 위험하니까요.
 
밤이 되기 전에 금방 둘러보고 가야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니까요.
 
낮이 길어 다행입니다.
 
천천히 둘러보며 추억에 잠길 시간 정도는 있을 테니까요.
 
조금 더 걸어가면 기찻길과 신호등이 놓인 길이 보입니다.
 
사람의 발걸음이 적었는지, 마지막 기억보다 풀은 더 우거져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이 기찻길을 건너가는 것이 하나의 놀이였고,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죠.
 
그때보다 더 커버린 발을 옮기려 할 때면 길 너머 전봇대 아래…
 
당신이 잘 알고 있는 복장의 누군가가 보입니다.
 
아득히 멀고, 또 가까운 곳에서.
 
권서율:?
 
권서율 관찰 판정
 
권서율: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익숙한 교복, 그리고 익숙한 머리 색.
 
기억이 멈춘 그 뒷모습 그대로.
 
저건… 가람의 뒷모습과 같습니다.
 
권서율:....
 
…천가람?
 
상대는 우중충한 거리를 유유히 걸어갑니다.
 
권서율:..선배? (천천히 걷던 걸음을 조금 급하게 보채봅니다. 이런 시간, 이런 곳에서 저렇게까지 닮은 뒷모습을 가진 다른 사람이 있을리 없잖아요. 설마. 이번에도, 정말로? 정말로 천가람인 걸까요? 쥐고 있던 편지가 다시 조금 구겨져버립니다.)
 
당신이 발을 떼거나 소리를 치려 하면 그 순간, 기차가 들어온다는 경보음이 울립니다.
 
덜컹, 덜컹…
 
안전대가 내려가면 기찻길은 걸어갈 수 없게 막힙니다.
 
순식간에 불어오는 바람과 나부끼는 머리카락.
 
요란한 소음과 함께 기차가 지나가고…
 
아까 그 거리에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전봇대 아래의 가람은 그저 환상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기차에서부터 무언가 꿈을 꾸듯 감각이 떨어집니다.
 
권서율:.... (아까 그 사람이 지나간 곳이 어디로 이어지는 길이었나 떠올려봅니다. 환상이었는지, 아닌지는 따라가보면 알겠죠. 아직은 밤이 되기 멀었으니까요.)
 
다시 기찻길을 건너자 자주 걷던 길이 보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검은 선들이 늘어진 하늘, 낡은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음식점과 편의점, 문방구와 학교로 가는 골목길…
 
모두 그 자리 그대로 있습니다.
 
아니, 그대로는 아닙니다.
 
모두 하나같이 낡고 어딘가 부서져 있습니다.
 
쥐죽은 듯이 조용한 거리에는 단 한 명, 당신만이 숨을 쉬고 있어요.
 
푸른 하늘 아래 건물들은 강한 햇빛과 선명한 명암 때문에 더욱 해묵어 보입니다.
 
권서율 듣기 판정
 
권서율: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쪽이야."
 
그 조용한 거리,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분명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
 
이 목소리는 어쩐지 앳된, 그리고 웃음을 가득 머금은 편지의 주인인 가람의 것입니다.
 
권서율 이성 판정
 
권서율: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변화 없음
 
목소리는 학교로 가는 골목길에서 울려 퍼집니다.
 
이쪽이야, 이쪽…
 
장난스러운 그 목소리의 주인은 확실하게 천가람입니다.
 
…잘못 듣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자꾸 발걸음이 움직입니다.
 
7년 전, 지나치게 비슷하고 생생한 그 목소리가 자꾸만 당신을 어디론가 이끕니다.
 
권서율:선배, 정말로 선배인 거예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도 발걸음은 머뭇거리지 않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합니다. 정말로 천가람이면 어떡하지. 이제와서야 천가람을 만나면 어떤 얼굴로 봐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그 골목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 담쟁이 넝쿨이 가득한 담벼락이 보입니다.
 
이 길은 학교 뒷문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죠.
 
수업이 끝나고 어디론가 급히 움직이던 아이들.
 
이 길을 당신과 가람도 건넜었습니다.
 
목소리는 학교 쪽에서 들리나 싶더니, 어느 순간 끊겨 사라지고 없습니다.
 
역시, 그건 어느 환청에 불과한 것이었을까요.
 
권서율 모국어 판정
 
권서율:
언어(모국어)
기준치: 80/40/16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담쟁이 넝쿨이 뒤덮인 담벼락.
 
수많은 필체의 낙서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편지의 필체와 같은, 유언처럼 남기고 간 말도 새겨져 있습니다.
 
함께 적었을까요, 더듬더듬 손을 짚어 보면 바래진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졸업 후에도, 천가람은 후배님을 보러 학교에 자주 온다! 어길 시 벌금 100만 원.’
 
7년 전, 그러니까 잊고 있던 추억입니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함께 그린 미래에 서로가 있을 거라 생각했군요.
 
발걸음이 괜히 무거워집니다.
 
손끝에 닿는 문장 역시 곧 철거되어 사라지겠죠.
 
…잡념을 지우고 학교로 갑시다.
 
둘러 보아야 할 곳은 많으니까요.
 
계속 앞으로, 앞으로 움직입시다.
 
과거에 멈추지 말고요.
 
권서율:(이런 것도 적어놨었구나. 언제 잊어버린 거지. 담벼락에 새겨놨던 낙서를 생소하다는 듯 바라보다 시선을 지름길이 있던 곳으로 옮깁니다. 그래요. 이대로 멈춰있으면 못 따라가잖아요.)
 
그 골목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당신이 3년을 보냈던 학교가 보입니다.
 
자신이 졸업한 후 바로 폐교가 되었다고 했었죠.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고, 운동장의 잔디는 무성히 자라 풀밭이 되어있습니다.
 
지각이나,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저곳에서 봉사를 하곤 했는데.
 
사람의 부재가 느껴지는 학교는 숨이 죽은 듯 고요합니다.
 
권서율:(적당히 잔디가 없을 법한 곳으로 지나가며 천가람이 편지에서 말한 그 자리가 어디일지 생각해봅니다. 천가람의 교실? 아니면, 도서실? 그곳도 아니면.... 옥상이라던가. 고개를 들어 학교 옥상에 시선을 둡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실내로 들어가면 모든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딜 가야 만날 수 있을까요.
 
권서율:(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쉽니다. 거진 7년 만에 올라온 옥상이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도 한때는 아지트라며 자주 드나들었는데 말이에요. 차라리 이곳에 천가람이 있지 않은 게 나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가 아니라면, 교실에 있는 걸까요?)
 
당신의 교실에 가보기로 할까요.
 
자신이 졸업하면 자주 보러 오겠다는 말도 했었으니까요.
 
마지막 3학년을 보냈던 곳은 4층이었습니다.
 
권서율:(천가람이 자신의 교실이 어디였는지를 알긴 할까, 생각하면서 3학년 때 썼던 교실이 있는 방향으로 가봅니다. ...천가람도 3학년을 보냈던 교실이니,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오래된 복도는 삐걱삐걱, 낡은 소리를 냅니다.
 
교무실, 미술실, 음악실…
 
천천히 지나가는 교실 속은 엉망입니다.
 
권서율 관찰 판정
 
권서율: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실로 향하는 그 계단, 먼지가 쌓인 그 계단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있습니다.
 
최근에 방문한 걸까요?
 
발자국 위로 쌓인 먼지가 없습니다.
 
발자국은 당신이 쓰던 교실을 향해 이어져 있습니다.
 
권서율:(발자국이 보이자 설마하는 마음에 뛰듯이 걸어 교실 문을 잡아봅니다.)
 
드르륵, 낡은 문을 열면 마지막 기억 그대로의 교실이 늦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낡고 엉망인 이 학교 속, 먼지마저 흩날리지 않는 이 교실은 유독 멀쩡하고 정갈해요.
 
질서 있게 정돈된 책상과 창문에 달린 조금 바랜 커튼, 누군가 와서 치우고 간 거 같습니다.
 
낙서가 지워지지 않은 [칠판], 줄을 지은 [책상], 교실 뒤편의 [사물함]이 보입니다.
 
권서율:(교실을 둘러보다가... 칠판에 시선을 둡니다. 이거... 무척 익숙한 기분인데요.)
 
칠판의 낙서 역시 5년 전 그대로입니다.
 
나중에 커서도 연락하자, 성공해서 만나자, 분식점으로 5년 후에 집합…
 
그 사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글이 보입니다.
 
‘다시 만나자.’
 
졸업식 전날, 마지막으로 교실을 쓰며 다 함께 적었던 그 낙서.
 
당연하게도 가람의 것은 없겠죠.
 
그러니까, 저 낙서는 주인 모를, 평범한 졸업 날의 인사입니다.
 
다시, 다시….
 
왜 지키지 못한 말들은 늘 무겁고 다정한가요.
 
권서율:(무얼 기대하며 칠판을 본 걸까요. 5년 전에 반 친구들이 같이 적었던 낙서를 대충 훑어보다 책상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널브러진 다른 교실의 책상들과 다르게 이 교실의 책상만은 줄을 지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당신의 자리로 가면 익숙하고도 사뭇 달라 보이는, 쇠에 녹이 잔뜩 생긴 책상과 의자가 보입니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입니다.
 
마냥 좋은 기억만 있던가요?
 
시험이나, 어쩌다 혼이 났던 일이나, 아님….
 
쥐어 짜낸 기억의 끝은 모두 천가람입니다.
 
권서율:(언제부터 제 학창 시절의 끝이 모두 천가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겨우 한 학기도 같이 지내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깊숙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천가람이 참... 천가람 답다고 해야 할지, 그런 천가람을 잊지 못하는 자신이 미련하다고 해야할지. 세월의 흐름이 잔뜩 서린 책상과 의자를 괜스레 건드려보고는 고개를 들어 사물함을 바라봅니다.)
 
자물쇠가 그대로 걸린 사물함도 몇 보입니다.
 
당신이 쓰던 사물함을 열면 텅 비어있어야 하는데…
 
예상과 다르게 편지 한 통이 놓여있습니다.
 
편지지는 당신이 어제 받은 편지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가람에게서 온 그 편지 말이에요.
 
권서율:(저도 모르게 추억을 회상한다며 열었던 사물함 안에 편지가 들어있네요. 이것도 천가람이 쓴 거일까요? 이정도면...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라기엔 너무 정성스럽잖아요. 자신이 뭐라고 이런 장난을 치고 있겠어요. 그리 생각을 하며 편지를 읽어내립니다.)
 
접힌 편지지를 펼치면 짧은 글이 보입니다.
 
익숙한 필체예요.
 
오늘 수없이 읽었던 가람의 필체입니다.
 
…어째서 편지의 받는 이는 자신이고, 보내는 이는 가람인가요?
 
그리고 그 글의 내용은 마치 죽은 가람이 남기고 간 것만 같습니다.
 
세 곳을 모두 둘러보면 덜컹, 창문이 흔들립니다.
 
바람 때문이 아니라 누가 인위적으로 흔드는 것만 같아요.
 
덜컹, 덜컹…
 
창문은 계속해서 흔들립니다.
 
마치 이리로 오라는 듯이.
 
아까 들었던 그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요?
 
권서율:(....여기 4층인데. 편지를 다시 접어 쥐고는 창문 쪽으로 향해봅니다.)
 
당신이 창문 쪽으로 간다면 창 너머 운동장, 익숙한 교복을 입은 누군가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천가람이 웃으며 당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권서율 이성 판정
 
권서율: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이것도 환영인가요?
 
가람은 아까처럼 눈앞에서 또 사라질 거 같습니다.
 
만나야 해요.
 
너는 누구고. 이곳에는 왜 있고…
 
머릿속이 어지럽지만, 반대로 발걸음은 빨라집니다.
 
어서, 어서 천가람에게 달려가야만 해요.
 
권서율:(어떻게 계단을 내려갔는지 모르겠어요. 창 너머 운동장에서 웃고 있는 천가람을 보자마자 아까 기찻길에서처럼 잠깐사이에 사라질까 싶어 제 걸음을 보챘을 뿐입니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여유가 없잖아요. 이번에도 사라져버리면 어떡해요? 사라져버리면, 이젠 어디를 찾아봐야 하는 거예요?)
 
교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 계단을 건너…
 
운동장 밖으로 서둘러 나오면 그곳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헛것을 본 걸까요.
 
아까 가람이 있던 교문 쪽으로 가도,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권서율:...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헛웃음이 나올 거 같습니다.
 
무얼 기대한 건가요?
 
이상하고 맑은 날입니다.
 
당신은 가람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그리워했나 봅니다.
 
아님, 이 장소에 그리움이 증폭된 걸 수도 있고요.
 
해는 벌써 높이 떠 있습니다.
 
둘러볼 곳이 많아요.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떼려던 찰나…
 
천가람:뭐가?
 
누군가 익숙하게 당신의 팔목을 잡습니다.
 
꿈에서나 듣던 목소리, 웃음기가 가득한 그리운 목소리.
 
뒤를 돌아보면 익숙한 교복을 입은 가람이 보입니다.
 
천가람:... 신기하네. 7년 후의 너는 이런 모습이구나.
 
차마 어떤 감정인지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가람이 말을 잇습니다.
 
7년 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예요.
 
권서율 이성 판정
 
권서율: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화 없음
 
이것도 꿈인가요?
 
아니, 그럼 팔목에서 느껴지는 힘이나 온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권서율:천가람, ...선배. (자꾸만 보일락 말락 그 자리에 있질 않는 천가람을 찾느라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가 제 뒤에서 나온 천가람을 보고는 급격히 진정합니다. 속으로 생각하던 대로 이름만 불렀다 뒤늦게 선배라는 말을 덧붙여요.) ...정말로 선배예요?
 
천가람:그럼, 진짜 나지. 다른 사람일 것 같아? (웃으며 잡고 있던 서율의 팔목을 놓습니다. 대신 손을 올려 제법 길어진 서율의 머리카락 끝을 손바닥 위에 올려 사락, 흘러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 머리가 꽤 자랐네.
 
권서율:(...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천가람을 시선만 따라가며 보다 제 손을 들어 천가람의 소맷자락을 살짝 건들여봅니다. 차마 천가람을 건들여보기엔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으니까요.) 그 편지, 진짜였네요. 누가 장난치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자기가 믿지 않고 이곳에 안 왔으면 어찌할려고 그랬을까, 너는.)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때 내 머리가 어느정도 길이었나 잠깐 가늠해봅니다. ..지금보단 길이가 짧긴 했었죠.)
 
천가람:그런 장난을 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주소지도 없이 다짜고짜 집 앞에 떨어진 편지. 당사자 말고는 모를, 수신인과 발신인의 이름. 제 삼자가 칠 수 있는 장난은 결코 아니지. 그래도 서율의 성격상 장난이라 여길 거 같긴 했다. 그럼에도 믿고 와준 게 다행이지. 자신을 그만큼 믿었던가. 아니면 보고 싶었던가. 뭐.., 마지막 인사가 그랬으니 보고 싶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너는 매일 봤고, 나는.... .. 한동안 못 봤으니까. 그래서 그런 걸?
 
권서율:...있을 수도 있죠. (저도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생각이겠나. 우리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천가람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 그렇게 죽어버린 사람에게서 온 편지라고 믿을 바엔, 성격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이상한 사람이 굳이 자신 한 사람을 골리기 위해 천가람을 사칭해서 편지를 쓴거라고 믿는 편이 저한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당신도 몰랐을까? ..그럼에도 혹시나의 가정을 따라 이곳에 온 자신도 꽤.. 이성적이지 못했지만.) ...한동안이요. (그러면 너는 그 뒤로도 계속 이렇게 여름에 멈춰있었던 거야?) 선배는,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예요? 아직도 아파요?
 
천가람:(서율의 성격을 잘 아는 가람으로선, 이걸 차라리 한여름의 꿈이자 누군가의 지독한 장난이라 치부하고 무시하는 게 속이 편할 걸 잘 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에 굴하지 않고 만약을 가장한, 서율이 정말 자신을 보러 온다면, 그 작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 바람을 들어주는 건 너지) ... 잘 지냈다고 하기엔 좀 그렇겠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꼬리를 살랑 흔든다) 괜찮아. 지금은. .. 이젠 안 아파.
 
권서율:...안 아파요? (다행이다. 내심 그것이 신경쓰였는지 걱정하듯 바라보던 시선에 안도감이 깃듭니다. 죽어서도 아픈 건 저번으로 족하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무리한 건 아니죠?
 
천가람:그런 거 물어봐도 지금 당장은 말 못 해주는 거 알잖아. (곤란하지만 예상한 듯 웃는다. 자신이 아픈 게 그렇게까지 신경쓰였구나. 그리고 잠깐의 기억을 7년이란 세월 동안 품고 살아준 서율이 고맙기도 하고)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보단, 너랑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곳이 많아. 같이 갈래?
 
가람은 웃으며 손을 내밉니다.
 
왈칵 마음이 쏟아져요.
 
보고 싶던, 7년을 그리던 그 얼굴입니다.
 
환영, 귀신, 유령…
 
그 손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어떠한 것이든 상관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권서율:(말해주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천가람이 말을 아끼는 거면 이유가 있는 거겠죠. 겨우 이렇게 만났는데, 다른 걸 하기에도 벅찬 시간일 겁니다. 이게 현실이든, 꿈이든.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천가람이든, 귀신이든, 환상이든. 잠깐 정도는 즐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것도... 밤이 오면 끝날지도 모르잖아요. 7년 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까지 만났던 양 자연스럽게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맞잡아봅니다.) 제가 거절하지 않는단 거, 선배도 알고 있잖아요. 어디로 갈 거예요?
 
손을 잡으면 가람은 환하게 웃습니다.
 
천가람:일단 가볍게 동네 구경부터 할까? 너도 오랜만에 오는 거잖아. (서율의 손을 천천히 맞잡으며 손을 내려 나란히 둡니다. 웃는 얼굴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기나긴 시간의 공백이 있음에도 천가람은 권서율을 대하는 방식에 어색함이 없었다.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처럼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때마침 여름의 더운바람이 붑니다.
 
7년 만의 재회입니다.
 
아니, 이걸 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천가람은 분명 7년 전에 죽었는데.
 
손을 잡은 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까 그 골목길을 지나고, 다시 거리로…
 
이건 또 어떤 꿈일까요.
 
만약 이게 꿈이라면 그리운 이를 만난 행복한 꿈인지, 아님 깨어나면 공허함만 남는 악몽인지….
 
머릿속은 어지럽고 손을 감싼 체온은 다정합니다.
 
잠시 복잡한 생각을 버려둡시다.
 
해가 지면 이곳을 나가야 하니까요.
 
가람을 따라 계속 걸음을 옮기면 [문방구]와 자주 가던 [분식점]이 보입니다.
 
가람은 당신을 힐끗 쳐다봅니다.
 
원하는 곳으로 가자는 뜻일까요.
 
권서율:(저를 쳐다보는 천가람을 마주 보고 있다가.. 분식점에 시선을 돌려봅니다.) 그런데, 곧 있으면 이 동네 다 철거되는데 구경할만한 곳이 있어요? (자신이 지금까지 지나온 건물들은 다 헤져있었지 않았나?)
 
천가람:자주 갔던 곳은 아직 그대로잖아. 여기도 그렇고. (그렇지 않냐는 듯 건물을 보다가 다시금 서율을 봅니다. 얼굴엔 여전히 웃음이 가득해요)
 
권서율:...그렇네요. (이것도 천가람이 뭔갈 해둔 거 아니야? 라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천가람:... 이번에 난 진짜 아무짓도 안 했다? (표정에서 뭔갈 읽어낸 듯)
 
권서율:제, 제가 무슨 말 했어요?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괜히 찔려서 고개를 돌려 분식점 간판을 봅니다.) ..데려왔으면 안 들어가고 뭐해요? (제 생각을 들킨 게 부끄러운지 맞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어 당기며 분식점으로 들어가봅니다.)
 
간판의 글씨가 벗겨진 페인트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떡볶이부터 온갖 걸 다 팔던 분식점.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바랜 메뉴판은 자세히 보면 읽을 수 있어요.
 
권서율:(닫혀잇구나)
(쯧
 
천가람:(닫혀있네...~)
 
권서율:(..... 정말 여기 왜 데려온건지 고민중)
 
천가람:겉으로 보기엔... 괜찮았.. 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닫힌 게 당연하겠지..? 서율이 옆에서 눈치 겁나 봐요)
 
권서율:(가만히 잠긴 문고리 잡은 채로 메뉴판 쳐다보다가... 제 눈치를 살피는 천가람을 바라봅니다. 그 모습에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질려고 해 입을 꾹 다물어봐요.) ...어찌보면 이게 당연한 거긴 하죠.
 
컵볶이 500원, 슬러시 500원, 붕어빵 4개에 1000원…
 
어쩐지 그리운 메뉴들과 가격입니다.
 
기억해보면 사탕도 팔았던 거 같은데… 착각일까요?
 
천가람:그렇긴... 한데..,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 여기까지 먼 길 왔는데 정말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까? 물론 부른 이유야 따로 있긴 하지만...)
 
가람의 얼굴은 이 동네와 다르게 시간이 스치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때 그 모습으로,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권서율 관찰 판정
 
권서율: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파스스, 어디선가 빛가루가 퍼지듯 파편이 흩날려요.
 
가람은 당신을 힐끔 쳐다보더니, 급히 손을 뒤로 숨깁니다.
 
권서율:(...?) 선배?
 
천가람:응? 왜? (웃는 얼굴)
 
권서율:(뭔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은데. 뒤로 숨긴 손이 있을 법한 쪽을 바라봅니다.) ..뭐 있어요?
 
천가람:아니, 아무것도 없는데.. 왜? 뭐 봤어? (서율의 앞의 제 손을 드러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멀쩡한 손을요)
 
권서율:(착각인 걸까요. 미심쩍다는 듯 천가람의 손을 빤히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고쳐쥡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기 문방구도 닫혀있을까요? (그리 말하며 문방구 쪽으로 가봅니다.)
 
편의점이나 마트를 두고도 학생들이 자주 이용했던 문방구입니다.
 
이유는 무엇이었죠?
 
가격이 저렴하기도 했고, 아주머니가 친절하시기도 했고….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빈 진열대와 계산대가 보입니다.
 
천가람:여긴 안 닫혔네. (잡은 손을 슬쩍 내려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곤) 와, 저거 있네. 기억나? (다른 손으로 가리킨다)
 
권서율:뭐가요? (천가람이 가리킨 쪽에 저도 같이 시선을 옮겨봅니다.)
 
유일하게 남은 뽑기 기계가 보입니다.
 
동전을 넣고 돌리면 플라스틱의 캡슐이 나오는 형식이었죠.
 
모두가 떠난 마을에 버려져 가게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은 가람은 당신을 향해 손을 내밉니다.
 
그러니까… 한 번에 오백 원이던가요?
 
권서율:(내가 동전을 가지고 왔었나)
 
권서율 재력 판정
 
권서율:
재력
기준치: 30/15/6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주머니나 지갑 속을 뒤져 보아도 동전은 없습니다.
 
권서율:(그럴리 없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권서율:(요즘은 삼#페이라고)
 
가람은 한참을 둘러보더니
 
천가람:여기 있었네.
 
작은 소리를 내며 뽑기 기계 아래 동전 두 개를 찾아냅니다.
 
천가람:(삼성페이. 아 미쳤나봐)
 
동전을 넣은 가람은 달그락, 손잡이를 돌려 캡슐 하나를 뽑습니다.
 
이어 나머지 동전을 넣더니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천가람:이번엔 네가 해볼래?
 
권서율:(기어코 동전을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 거겠죠. 저라면 금방 포기하고 돌아설텐데. 못말린다는 듯 작게 헛웃음 짓고는 저도 같이 천가람 옆에 쪼그려 앉아봅니다.) ...요즘은 카드를 주로 쓰다보니 동전을 만질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가볍게 중얼거리고는 저도 같이 손잡이를 돌려봅니다.)
 
손잡이에 손을 올리면 아까 가람이 잡았던 탓인지 미약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오랜 시간 돌아가지 않았던 손잡이는 조금 뻑뻑합니다.
 
녹이 슨 거 같기도 하고.
 
힘을 주어 돌리면 달그락, 가람의 것과 같은 작은 플라스틱 캡슐이 나옵니다.
 
천가람: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엄청 옛날 사람 같잖아. ..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권서율:(천가람 보고 한 말 아닌데. 내가 요즘 그렇다는 거였는데.) .....선배 보고 한 말 아니에요. (조금 머쓱하게 답하며 뽑기 기계에서 나온 캡슐을 만지작거립니다. 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천가람:그래? (단순하게 금세 안색이 편해져서는 꼬리를 살랑 흔듭니다) 일단 이거 열어보자. (자기몫의 캡슐을 들더니 손으로 비틀어 삐걱, 하고 뚜껑을 연다)
 
열어보면 두 개 다 유치한 구슬 팔찌예요.
 
고등학생 때도 이런 건 하지 않았지만… 천가람은 마음에 드는지 한쪽 팔목에 벌써 끼고 있어요.
 
권서율:(우와, 저걸 하고 다니는 사람이 실제로 있긴 하구나.)
 
천가람:(쪼끔 상처)
 
권서율:(..제 손에 들린 구슬 팔찌를 내려다보다가... 왼쪽 팔목에 껴봅니다. 정말 유치하네요. 천가람이 아니었으면 이런 거 해볼 생각 하지도 않았겠죠.)
 
천가람:(서율이 팔찌를 끼자 활짝 웃습니다. 커플 팔찌네요. 속으로는 좋아하지만 겉으로는 그리 티를 내지 않습니다. 7년이나 감춰 온 짝사랑이잖아요. 죽었지만... 굳이 말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자신을 못 잊을 게 뻔하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고작 3개월의 추억으로 7년이나 살아온 이인데) 이제 다른 데 가자.
 
두 곳을 모두 둘러보면 철컹, 그리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저 먼 곳에서요.
 
철거가 시작된 거 같습니다.
 
가람은 소리가 나는 방향 쪽을 한 번 돌아보더니, 예전에 자주 가던 놀이터라도 둘러보자고 합니다.
 
권서율:(시간이 많진 않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다가오는 게 느껴지니 기분이 묘하네요. 왜 좋은 시간은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놀이터는 멀쩡히 있길 바라야겠네요.)
 
기억을 따라 걸어가면 그림자는 점점 길어지고 있어요.
 
장면전환
 
작은 꼬마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늦은 시간 그네를 타며 떠들던 학생들도 많았던 놀이터입니다.
 
돌이켜 보면, 당신과 가람 역시 늦은 시간까지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들어가곤 했었죠.
 
미끄럼틀과 시소는 부서져 있습니다.
 
그네의 쇠줄은 녹슬어 본래의 색을 잃었습니다.
 
지금 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거 같아요.
 
그나마 멀쩡한 벤치에 가람은 털썩 주저앉습니다.
 
천가람:(옆에 앉으라는 듯 익숙하게 빈자리를 톡톡 친다)
 
권서율:(아무 생각 없이 저도 따라서 옆에 앉고는 주변을 둘러봐요.)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네요. 시간이 정말, 많이 흐르긴 했나봐요. (무언가 생각하는 듯 검지로 벤치를 톡, 톡 두들겨봅니다.) ...선배, 선배가 언제부터 다시 이렇게 있을 수 있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천가람:시간... 많이 흐르긴 했지. (하늘을 올려가 보다가 서율을 힐끗 보더니) ... 음, 얼마 안 돼.
 
이후로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그 침묵으로 수놓는 시간도 잠시.
 
사르륵, 바람에 신록을 닮은 나뭇잎 무리들이 춤을 추듯 흔들립니다.
 
하늘을 보면 햇빛과는 다른 빛이 반짝이며 흩날리고 있어요.
 
슬며시 당신의 손 위로 가람의 손이 올려집니다.
 
권서율:(제 손 위에 올라오는 천가람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얼마 안 되었으면, 그동안은 어떻게 지냈어요? 여기 동네에서 계속 있었어요? (그렇다면 조금 슬플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은 졸업하자마자 이곳을 떠나 타지로 나갔는데, 천가람은 곧 철거될 동네에 계속 남아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제 교실은 어떻게 안 거예요? 조금 신기하죠. 선배랑 같은 교실이잖아요. 저는 교실 배정받고 꽤 신기했었는데.
 
천가람:여기에 계속 있었다고 하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니 같이 운명을 달리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 줄곧 이 자리에 있었다. 물론 그런 이유만 있는 게 아니지만) 맞아, 그렇더라. 나도 그럴 줄 몰랐는데. (3학년이 되어서도 내 교실이 어딘지 잊지 않고 있었구나. 이건 조금 감동인데. 평소 같았으면 가볍게 장난치고도 남았겠지만 천가람은 오늘따라 조용하기만 하다)
 
권서율:여기에 계속 있었다면, (저가 무어라 말 할게 있을까요. 당신이 동네를 떠나는 사람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말문이 막혀옵니다. 그 중에 나도 있었을테니까.) ...글쎄요. (네가 외롭진 않았을까, 날 보고 싶어하진 않았을까. 이 동네를 떠나는 날 보고 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처음에는 무척 기분이 이상했었는데, 지내다보니... 나쁘지 않더라고요. (온통 어딜봐도 네 생각이 나서 기분이 싱숭했었지. 좋은 뜻으로도, 나쁜 뜻으로도. 그리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어찌 그리 뇌리에 박혔었는지, 지금와서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해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요.)
 
천가람:설마 영화도 아니고 계속 있었을리가. (자신이 먼저 던진 화제지만 장난이었다는 듯 웃으며 넘깁니다. 천가람은 항상 이런 사람이었잖아요) 거기 제법 좋은 자리니까. 햇빛도 잘 들어오고. (그래서 날이 좋은 봄엔 창가에서 자주 잠들었던 것 같은데. 아마 서율이를 만나기 전까진 그랬던 것 같다)
 
권서율:(저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해보다 이어오는 말에 시선을 올려봅니다. 이번에도 그냥 해본 말인 걸까요? 미심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떠보다가... 실없이 웃어넘겨주기로합니다.) 그럴수도 있죠. 그래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솔직히 이처럼 영화같은 일도 없을 텐데. 누가 죽은 사람을 두 번이나 다시 재회하겠어요. 차라리 영화인 편이 더 낫지 않나? 그렇다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와도 미련없이 자리를 뜰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햇볕이 들어올 때면 나름 노곤해지던데, 천가람이라면 가끔 졸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더랬죠.)
 
천가람:음, (서율의 질문에 다른 곳을 보며 고민합니다. 생전에도 곧잘 이러곤 했죠. 알려줄 거면서 일부러 장난을 친다던가... 전부 시덥지 않은 이유였던 것 같네요. 하지만 지금은 진심인 듯 살짝 그늘진 옆모습이 퍽 진지합니다) 나중에.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다시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돌아오더니 고개를 돌립니다)
 
권서율:(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저 말의 뜻이 무엇인 걸까요. 넌 이번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게 분명 우연일리는 없을테니, 부디 이번 방법은 천가람에게 상냥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적어도.. 헤어지기 전에는 들었으면 좋겠네요. 저, 해가 지면 나가야한단 말이에요. (퍽 투덜거리는 투로 나름의 불만을 표해봅니다. 그래봤자 웃고 있는 얼굴로 말하고 있지만요.) 그러면 선배가 말해줄 수 있는 다른 건 없어요? 아니면 제게 듣고 싶은 거라던가요.
 
천가람:아, 그렇지. 참. (공사중이었다는 걸 이제야 자각한 모양입니다. 아까부터 시끄러웠는데 그런 소리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죠. 해가 지기 전에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마침 오늘이 하지네요.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있을까요.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해 지기 전에는 얘기해줄게. (투덜거리는 어투에 피식 웃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변함 없는 모습이라서, 꼭 학생 때의 언젠가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거... 글쎄? 아마 없지 않을까. 왜,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하잖아. (훠이~ 손을 늘어뜨리며 장난을 치다가 머쓱하게 내립니다) 듣고 싶은 거야 많지.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는 어디로 갔는지... 그런 것들. (이후 짧게 침묵하더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네가 안 올까 봐 걱정했어.
 
권서율:(하늘을 보는 것에 저도 슬쩍 고개들어 하늘을 보다가... 다시 천가람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마주보고 있음에도 왜 이리 신기루 같은 지 모르겠어요.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건가. 해 지기 전에는 말해준다는 답에 고개만 느리게 끄덕여봅니다. 무슨 답이든 자신은 들어줄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계속 말해줘야겠네요. 어쩔 수 없죠. 선배 말처럼,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하니까요. (헛웃음 짓듯 숨을 내뱉습니다. 저걸 장난이라고 치는 걸까요. 정말로 그 말이 맞다고 하기엔,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은 말이 많지 않냐는 생각은 꾹 삼켜봅니다.) 저는 나름 잘 지냈죠. 원했던 대학에도 붙었고, 타지로 나가면서 전에 지내던 친구들과 만나는 게 조금 힘들게 되었지만... 그만큼 다른 친구도 생겼으니까요. 연락도 계속 하는 중이고. (하나 둘 늘여트리듯 답을 해주다가, 잠시 입을 다물어봅니다. 당연하다는 듯 그렸던 미래였건만, 그 미래에 당연하게 넣어뒀던 것이 빠져있으니까요.) ...얼마큼 걱정했어요? 제가 어떻게 안 올 수 있어요. 선배가 부르는데.
 
천가람:나 말주변 없어서 그런 거 설명하라고 하면 잘 못하는데? (서율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다가 문득 던져지는 질문에 웃으며 벤치에 몸을 기댑니다. 걱정, 하긴 했는데. 얼마나 했다고 해야 할까요. 어느 정도가 적정선일까요. 우리 사이에) 음... 만약 내가 살아 있었다면, 잠을 제대로 못 잤을 정도? 그쯤이라고 해둘까! (애매한 답을 낸 주제에 웃으며 서율을 바라봅니다. 뭘 잘했다고 웃는지 모르겠네요. 자꾸 자신이 죽었다는 것만 상대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지 않나요. 천가람도 그렇게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나 봅니다) 하긴, 내가 부르면 잘 들어줬었지. 너만큼 날 믿어준 사람도 없을걸. (그래서 더 곁에 있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두 번이나 마주할 정도로 한이 되었던가요)
 
권서율:(허, 어이없다는 듯 천가람을 바라봅니다. 문득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오르네요. 곧 죽을 사람이 꿈에 나와서는 정이라도 떼려는 듯 못된 말만 했다는 거요. 지금 이 순간도 그것의 일환인 걸까요? 일부러 자신이 살아있었다면, 난 죽었으니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더라. 이런 식으로 제가 죽었음을 상기 시키는 것들이? 그때도 그랬으면서, 어쩜 지금도 한결같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천가람은 방법을 잘못 선택한 거겠죠. 이런 걸로 뗄 수 있는 정이었다면, 지금까지 그리워하지 않았겠지.) 그거 아쉽네요. 지금은 잘 필요가 없나봐요? (저 표현도 늘상 부풀려 말하던 것일 겁니다. 천가람은 늘 그랬으니까요.) 저만큼 선배를 믿어준 사람이 없다는 건 조금 안타까운데요. 저야 선배에게 그만큼 좋은 후배로 보인 것 같아 좋지만요.
 
천가람:아, 들켰다. (제 입으로 말했으면서 들켰다고 말하는 모습이 꽤 장난스럽습니다. 태연한 건지도 모르고요. 일부러 못된 말을 골라 하려던 건 아닌데, 왜 자꾸 자신이 죽었다는 말만 하게 되는지. 예나 지금이나 진심을 전하는 건 어렵네요. 웃는 모습이 조금 씁쓸해 보입니다) 좋은 후배이기만 한 게 아니니까 불렀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입을 닫아 버립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아요)
 
조곤조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겹쳐 잡은 손에는 여전히 온기가 느껴져 어쩐지 안심이 되어요.
 
여름인데도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눈앞의 상대는 여름과 퍽 어울리고요.
 
천가람:그거 알아? ... 아까부터 아닌 척 하긴 했지만. 나는 늘 이곳에 있었어.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꿈뻑, 천천히 눈꺼풀이 무거워집니다.
 
햇살이 쏟아지는 벤치.
 
수마가 몰려오는 이유는 다정한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인가요, 아님 손을 토닥이는 다정한 누군가의 손길 때문인가요.
 
가람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집니다.
 
다시 깨어나면 사라질 거 같은데, 애써 눈을 뜨려 해도 자꾸만 몸의 힘이 빠집니다.
 
동시에 애써 뜨고 있던 눈이 스르르 감겨요.
 
…아직 해야 할 말이 많은데, 이 쏟아지는 졸음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들리는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기만 합니다.
 
천가람: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미안해. 네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그 이유가 되는 것도 싫고... .....
잘 자, 좋은 꿈 꿔.
 
툭, 그 말을 끝으로 당신의 머리가 가람의 어깨로 떨어집니다.
 
의식도 다시 꿈속으로 떨어져요.
 
당신은 아까 전의 낮잠보다 조금 더 긴 잠에 빠지게 됩니다.
 
아주 상냥한 손길과 함께요.
 
장면전환
 
권서율 듣기 판정
 
권서율: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다음에는 뭘 쓰지. 벌금 같은 거?”
 
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정신을 차리면 당신은 자신이 아까 그 놀이터가 아닌 어느 골목길에 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권서율 이성 판정
 
권서율: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변화 없음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 또 천천히 숨을 내쉬고….
 
골목의 담벼락은 뒤덮는 담쟁이 넝쿨 하나 없이 깔끔합니다.
 
교복을 입은 가람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손에는 돌을 들고 벽에 무언가를 새기고 있어요.
 
당신 역시 교복을 입고 있고요.
 
손을 쥐었다 피면 감각이 없습니다.
 
아, 또 과거에 머무른 그 꿈일까요.
 
권서율:.... (아까 분명 천가람이랑 놀이터 벤치에 있었는데.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더니...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가볍게 살핍니다. 저도 교복을 입고 있네요. 이건 꿈인 건가.)
(이런. 요 며칠 제가 무리를 했었나 잠시 떠올려보고는 천가람이 벽에 무얼 새기고 있나 봅니다. 이렇게 졸고 있을 때가 아닌데. 그 와중에 꾸는 꿈에도 천가람이 있네요.)
 
천가람:벌금... 얼마가 좋지. 100만원은 너무 큰가? (서율의 상태는 모른 채 즐거운 듯 떠들어 댑니다)
 
가람의 얼굴은 벤치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어느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담벼락에 돌로 무언가를 새기고 있어요.
 
장난스러운 그 표정에 잠시 이곳이 꿈이라는 걸 잊게 됩니다.
 
아니, 오늘 자신이 겪은 일은 사실 모든 게 꿈일까요?
 
죽은 이에게서 온 편지와 다시 만난 천가람까지.
 
자꾸만 이상하게 흘러가는 오늘 하루…
 
권서율:(100만원... 아, 그때구나. 졸업 후에 찾아오지 않으면 받을 벌칙을 정하자고 했던 때요. 시답잖은 벌칙만 오가다가.. 결국엔 약속을 어긴거니 벌금을 내자고 했던가요? 돈이라도 걸려있다면, 싫어도 오게 될테니까.) ....크면 클 수록 좋죠. 선배가 말해놓고 어기진 않을 거잖아요. 설마, 뒤늦게 후회하는 건 아니죠?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밀어넣고는 천가람 옆에 조금 더 다가가 한창 글자를 새기던 벽을 봅니다. 검지로 톡, 건드리며 마저 말을 이어요.) 지장을 찍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천가람:(너무 본격적이지 않아? 조금 오싹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지장이라니) 후회는 안 하는데..., 후배님.. 좀 무섭다?
 
권서율:(어깨 으쓱. 어차피 법적 효력도 없지 않나.)
제가 무서우면 그만큼 약속을 더 지킬테니.. 정정은 안 할게요.
 
천가람:(우와..........)
원래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권서율:(모르는 척)
 
천가람:혹시 어디 아파? 막.. 다른 사람이라거나?
 
권서율:(갑자기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천가람을 봅니다.) ....아프진 않는데, ....
설마, 선배. 자신 없으신 거예요?
 
천가람:...... 아니?
 
권서율:그렇다면 된 거 아닌가요? 저 벌써부터 선배에게 100만원을 받아야하나 고민되기 시작해요.
 
천가람:왜 내가 어긴다는 전제야, 벌써부터?
 
권서율:그야 당연히-... (담벼락 봄. 떡하니 적혀가고 있는 약속 가리킴.) 이건 선배의 약속이니까요.
저는 여기에 해당사항이 없잖아요?
 
천가람:......
안 어길 수도 있는 거잖아..?
 
권서율:(안 어길 사람이 벌써부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나?)
그러면 더더욱 상관 없잖아요. 적어요. 100만원이라고.
 
천가람:(훌찌....)
 
‘졸업 후에도, 천가람은 후배님을 보러 학교에 자주 온다! 어길 시 벌금 100만 원.’
 
골목에서 보았던 낙서입니다.
 
함께 새겼었던 그 낙서, 지금은 그때의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권서율:(그때 당시엔 저 낙서를 보며 무척 만족했었던 것 같았는데. 어디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까요. 말로는 어긴다면, 이라고 했지만 자신은 믿고 있었죠. 그 천가람이 이 약속을 어길리 없을 거라고. 그리 생각했었죠.)
 
글을 모두 새긴 가람은 당신에게 걱정하는 낯으로 다가옵니다.
 
천가람:오늘은 바로 집에 갈래? 날이 너무 덥다.
 
미래를 모르는 이의 말은 막연하고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권서율:(집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어색하게 멈춥니다. 조금 아쉬운데. ..아니, 사실은 조금이 아니지만. 그래도. 살짝 미련있다는 듯 담벼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낙서만 보고 있습니다.)
 
천가람:..? 서율아? (낙서만 보고 있는 널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권서율:..아, 그쵸. 집에 가야겠네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천가람을 봅니다. 이렇게 미련이 많아서야. 부러 발을 떼 담벼락에서 멀어져보네요.) 날이 조금만 덜 더웠다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천가람:그러게. 점점 날이 더워지는 것 같지. 나는 더위를 잘 안 타서 괜찮지만. (괜히 서율을 힐끔 봐요) 더위 탄다고 했었나?
 
권서율:(평소의 자신이었다면 분명 더위를 타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꿈이라서 그런가, 모든게 모호합니다. 괜스레 제 손을 다시 보네요. 겨우 한 박자 늦게 답합니다.) 조금 타긴 해요. 덥고, 습하기까지 하니까... 찝찝하잖아요.
 
천가람:역시 그렇지? (여름에는 밖에 오래 있지 말아야 겠다며, 서율 몰래 속으로 다짐합니다) 내년 여름엔 덜 했으면 좋겠네~
 
권서율:..그래도 지금은 더워도 괜찮아요. 아예 사람이 살아가지 못할 날씨는 아니잖아요. (평소라면 실내에 있는 걸 선호했겠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 하늘이 그리 잘 어울리는 사람을 알아버려서 그런가, 그 모습을 보고 있다보면 나름 괜찮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생각만이지만요.)
 
천가람:그 정도가 되면 국가적 재난 아닐까?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더위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걸요. 일부러 몸서리를 칩니다) 아, 맞다.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권서율:(국가적 재난.) 보여주고 싶은 곳이요?
 
천가람:응, 근데 지금은 날이 너무 더우니까! (괜히 딴소리) 방학식 전날에 가자.
 
권서율:(방학식이 시작될 즈음이면 더 더워지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뭐, 좋아요. 그동안 기대하고 있어야겠네요.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날 둘은 해가 지기 전 집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었죠.
 
어른까지 앞으로 한걸음.
 
자신보다 먼저 앞서가는 가람의 시간을 가늠해봅니다.
 
같이 졸업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해요.
 
그리고 6월, 녹음이 짙을 때.
 
방학이 오기도 전에,
 
천가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사진 속의 얼굴은 낯설기만 했어요.
 
그 앞에서 몇 번이고 무너졌던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물론, 여긴 꿈속이니 쌓여있던 말을 잔뜩 해도 괜찮을 거 같아요.
 
꿈속의 가람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지만.
 
권서율:(그걸 지금와서 말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정작 제 앞에 있던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도 전하지 못한 건데. 꿈이라고 별반 다르진 못할 겁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봤자잖아요. 그저 까마득한 독을 들여다볼 뿐이에요.)
 
권서율 관찰 판정
 
권서율: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머리 위 햇빛이 강렬합니다.
 
뒤를 돌아선 환하게 웃는 가람의 모습이 안개가 낀 듯 경계가 모호해져요.
 
권서율:...선배.
 
천가람:응?
 
권서율:(햇빛에 눈이라도 부신 건지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엽니다.) ...아니에요. 더워서 그랬어요. 방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천가람:(더워서 불렀다는 말에 의아하단 표정을 짓다가 픽 웃습니다) 그러게. 방학 되면 뭐할 거야?
 
권서율:(그러게. 방학이 되면 뭘 해야할까. 잠시 고민해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어봅니다.) 글쎄요.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네요. 방학이어도 크게 지금과 달라질 것 같진 않아서요.
...그래도 방학인데, 평소에는 쉽게 못하는 걸 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게 뭐가 있을까요? (당일치기로 놀러가기라도 해야하나.)
 
천가람:(방금 되게 모범생 같았다고 말하려다가) 음.., 그런 거라면 보통 여행이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놀러가거나... 여름이니까 바다 보러 가는 것도 괜찮겠네!
 
권서율:(바다.) 선배는 바다 좋아해요? (해수욕장에서 서핑해보겠다고 뛰어다니는 천가람 생각해봄)
(....재밌겠다.)
 
천가람:가본 적은 없지만 좋아해. (어떻다더라는 얘기만 들어봤지만.. 말로 들어도 예쁜 곳이니까요)
 
권서율:...그러면, 이번 여름에 가봐요 우리. (이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이루지 못했지만.) 아침 일찍 기차타고 가서, 밤 늦게 돌아오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천가람:(귀 쫑긋. 꼬리 팔락) 그럴까? 난 좋아! (매년 돌아오는 게 여름이고 방학인데 올해는 유난히 기대가 되네요)
 
권서율:(저리 좋을까. ...당일치기로 잡았으니 꼭 방학이 아니었어도 되었을텐데. 이렇게 또 미련이 남아버리네요. 손을 들어 약속이라도 하자는 듯 새끼손가락을 펴 내밀어봅니다.) 잊어버리면 안 돼요. 방학이 되면 바다에 가는 거.
 
천가람:응! (앞에 내밀어진 손가락에 덥썩 제 손가락도 걸어 버립니다. 사실 바다 때문이 아니라 방학에도 서율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거지만)
 
분명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은데.
 
시야가 흔들리고, 또 흐릿해집니다.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해요.
 
마지막으로 본 가람은 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7년 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요.
 
당신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립니다.
 
여전히 다정하고, 오늘 하루 계속 듣고 들었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집니다.
 
이제 그만 깊은 잠에서 깨어날까요.
 
어디론가 떨어졌던 정신이 차차 돌아오는 거 같습니다.
 
권서율:(조금은 느릿한 손길로 제 눈가를 꾹꾹 누르며 잠을 떨쳐봅니다. 이렇게 피곤하게 있을 때가 아닌데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네요. 얼마큼 시간이 지나버린 거지?)
 
천가람:잘 잤어?
 
다시 깜빡, 눈을 뜨면 벤치 앞, 쪼그려 마주 앉은 가람이 보입니다.
 
비몽사몽한 정신과 돌아오지 않는 현실감.
 
꿈에서 깬 걸까요?
 
여긴 정말 현실이고, 방금은 꿈이고…
 
그 얇은 경계선에 자신은 길을 잃은 거 같습니다.
 
어느덧 하늘은 붉어져있네요.
 
노을이 지고 붉은빛이 상처마냥 하늘을 물들입니다.
 
손을 괜히 쥐었다 피면 있는 그대로 압박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옷도 교복이 아닌 처음 입고 온 그대로예요.
 
확실하게 꿈은 아닌 거 같습니다.
 
권서율:(나른한 눈으로 천가람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렸다가, 다시 내려 주먹쥡니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고 있었어요? 깨워주지,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떡해요. (꿈과 현실 그 모든 곳에서 천가람을 보고 있자니 할 말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아요. 이러다 제가 말실수라도 하게 될까 싶고,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던 말을 할까 생각도 들고. .....헤어짐이 한 층 다가온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밉게 보입니다.)
 
천가람:조금 오래 잤을 걸? (그 사이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으니까. 성큼 다가온 이별이 아쉬워 뒷말을 삼킨다. 평소만치 웃더니) 너무 깊게 자고 있어서 못 깨웠어. 많이 피곤한가 봐? 고등학생일 땐 이런 적 없었는데. 역시 대학은 조금 다른가?
 
권서율:...아무래도 조금, 그렇더라고요. 배워야할 것도 많고, 챙겨야할 것도 많고... (제 입을 가려 작게 하품하고는 기지개도 켜봅니다.) 선배는 왜 그러고 있어요? (제가 졸기 전에는 분명 같이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어느새 눈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것이 의아하다는 듯 물어봅니다.)
 
천가람:음, 자는 모습 좀 구경할까 해서.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어두고 턱을 괸 채) 많이 힘들겠네... 대학생은... (원하는 곳에 갔다고 했으니... 의대려나.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일어나자. 곧 있으면 해가 질 거야.
 
가람은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하지만…
 
가람의 손 절반이 흰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권서율:... (잠시 그런 손을 내려다보다.. 조금 급하게 잡아봅니다. 역시 아까의 그건 착각이 아니었던 건가요?)
 
손이 닿자, 오늘 몇 번이고 본 빛처럼 부서져 가람의 손이 부서져 흩어집니다.
 
권서율 이성 판정
 
권서율: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화 없음
 
따스하지만 그 흰 부분은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가람을 집어먹을 거처럼, 이 빛처럼 가람도 부서질 듯이.
 
빛은 벌레가 잎을 먹듯 조금씩 가람을 좀먹고 있어요.
 
권서율:(흩어지는 모양새에 제가 더 놀라 그대로 손을 멈춰버리네요. 이건, 그러니까... 뜻 모를 표정으로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 하지 못합니다.)
 
천가람:(모른 척 고개를 기울입니다) 왜 그래?
 
권서율:(이게 괜찮은 거야? 이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냐고 물어보기엔, 그런 걸 물어봤자 돌아오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묻지 못하겠네요. 천가람이라면 분명 괜찮다고 하겠죠. 지금처럼. 겨우 손에서 시선을 떼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봅니다. 이제 손은 못 잡겠구나.) 이제 어디로 데려가줄 거예요?
 
천가람:비밀이야. (부러 장난스러운 어조로 얘기하더니 손을 내립니다. 이걸 손이라고 불러도 될 지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가자.
 
어째서 사람은 예정된 이별을 느낄 수 있는 건가요.
 
마지막.
 
그 익숙해질 수 없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고 어지럽게 합니다.
 
이번에도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지겠죠.
 
시야가 흐려지는 이유는 여름의 눅진한 습도 때문일 겁니다.
 
가람은 익숙하게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깁니다.
 
권서율:(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거. 그때 했던 수많은 약속들 중 하나인 걸까요? 방학식 전날에 보여준다던, 결국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거요. 7년 만인가. 이제서야 볼 수 있는 건가. ...이걸 보고나면 우리는 이제 영영 이별을 해야하는 건가.)
 
어느새 그림자는 우리들의 키보다 조금 더 커져 뒤를 따라오고 있어요.
 
철컹, 그리고 와르르.
 
또 먼 곳에서 어느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골목을 지나, 위로 향하는 돌계단을 지나, 오솔길과 처음 보는 건물을 지나…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는 가람의 뒤를 따라가면 처음 보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권서율:(좀처럼 보기 힘든 걸 이런 식으로 비슷하게 보고 싶진 않은데)
 
옆에는 저수지가 있으며, 언덕 아래로는 마을 풍경이 전부 보이는 높은 이곳은 마치 전망대 같습니다.
 
길게 늘어진 검은 전깃줄이 오선지의 악보마냥 이어지고, 그 아래 펼쳐진 모든 건물은 울긋불긋한 노을을 머금는 중입니다.
 
노을 탓에 마을 전체가 불이 난 듯 붉게 물들고 화사해집니다.
 
문득 본 가람의 몸은 발목까지, 그리고 손은 또 완전히 빛이 되어 반짝…
 
흩어지고 있습니다.
 
사라지고 있어요.
 
물어볼 게 많습니다.
 
속에 꾹 담아둔 말들도 많아요.
 
천가람:어때? 예쁘지? (뒤를 돌아 서율을 보더니 감상이 궁금하다는 듯 웃으며 묻습니다) 여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거든.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그리고... 늦었지만, 졸업 축하해. 서율아.
 
노을을 지고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은, 역광이 진 그 얼굴은 왜 마냥 슬프게 느껴지나요?
 
권서율:...그러게요. (주변이 눈에 들어왔었나? 모르겠습니다. 제 눈엔 노을 속 사라져가는 천가람밖에 보이질 않는데. 반사적으로 답하고 나서야 겨우 주변을 둘러봅니다. 하늘이 붉네요. 분명 눈이 시리도록 푸르기만 했던 하늘이 타오르고 있어요. 그래서 눈물이 나오는 걸지도 몰라요. 눈을 뜨고 바라보기엔 너무나도 붉은 걸요.)
이걸 지금까지 아껴둔 거예요? (부러 눈을 깜빡여봅니다. 지금은 아니야.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저 말을 듣고도 어떻게 환히 웃을 수 있을까요.)
 
천가람:... 응. (이렇게나 오래 묵혀둘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죠. 예정대로라면 방학식 전날이나... 늦어도 서율이 졸업하는 날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고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7년이나 흘렀어요. 그 사이 서율은 졸업했고 자신은 이곳에서 미련을 안은 채 남아 있었죠) 7년 동안 비밀로 한 것 치고는... 생각보다 너무 별거 아닌가?
 
권서율:...그럴리가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더 좋아요. 이제는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요. (그래서 인거야. 스스로 생각하며 다시 노을에 삼켜지고 있는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그런 마을마저 천가람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저도, 선배를 만나서 반가웠어요. 정말로요. 이만큼 반가울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또 뭐라고 해야 제가 느낀 걸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천가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시 볼 수 없는 쪽이 마을이 아니라 서율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말 못 하는 건 여전하네. 원래 이렇게 용기가 없었던가. 아니면... 두려운 건가. 씁쓸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마음이 공허해진다. 작게 숨을 삼키더니 말갛게 웃는다) 왠지 모르겠는데, 그때 이후로도 난 여기 계속 남아있더라고. 아마 뭔가 아쉬웠던 모양이야. 그래서 이곳을 떠날 수 없었어. (마음 같아서는 여길 벗어나 서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영혼으로나마 멀리서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 ...그런 간절함이 전해진 걸까. 이번에도 기회가 주어진 걸 보면) 7년이나 여기 있어서 마을이랑 완전히 동화되었지만... 철거 될 예정이잖아. 이제. 그래서, 동네가 부서지면 나도 같이 사라질 거야. 오늘이 마지막이겠네.
 
권서율:(결국엔 확답을 들어버렸어요. 연신 물어는 봤지만, 막상 듣기에는 두려웠던 그 답을요. 넌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죽어서도 이런 일을 겪는 걸까. 죽기 전에도 남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일을 겪고, 죽고 나서도 혼자 7년을 이 동네에 묶여 끝을 함께 하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고작 19살. 지금의 자신보다 어린 나이. 한창 피어올라야 했던 청춘을 너는 무엇때문에 그리 허무하게 놔버려야만 했을까.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다 맙니다. 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쉬워서 어떡해요. 하고 싶었던 게 많았을 텐데. (바다도 가자고 약속했는데. 졸업하고서도 학교에 놀러왔어야 했는데. 천가람이라면 졸업하자마자 면허를 따놓고 전국을 놀러갈 수도 있었을텐데. 교복을 입은 모습 말고도, 다른 복장의, 다른 장소의, 다른 계절의 너를 보고 싶었는데. 마치 자신이 한 여름 내리쬐는 태양인 것 마냥 스러지려하는 걸 붙잡으려다, 더 빠르게 흩어져버릴라 제 손만 세게 그러쥡니다.)
 
천가람:... 괜찮아. 이젠 제법... 포기한 지 꽤 됐거든. (아쉬운 건 이어져야 했던 삶의 나날이 아니라, 더 이상 너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것 하나로 7년을 묶여있던 거니까.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기회 아닌 기회를 준 목소리가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름다운 마지막을 보여 달라고 했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알겠네. 근데, 이게 아름다운 건가? 벌써 두 번째 맞는 이별이라 어느 게 맞고 틀린지 쉽게 구분할 수가 없다. 그저... 예정대로 헤어지고 제 갈 길을 가는 것 뿐. 담담해져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 해가 지면 나는 완전히 사라지겠지. 이젠 잘 버틸 수 있지? (지금까지도 잘 버텨온 너지만. 반년도 안 되는 추억에 기대어 7년이나 살아왔으니까. 이제 그걸 그만둘 때도 되었잖아)
 
행복하고, 밥은 잘 챙겨 먹고.
 
좋은 사람과 좋은 일만…
 
잔소리처럼 가람은 줄줄 말을 내뱉습니다.
 
7년 동안 쌓이고 쌓여, 묵어버린 그 말들을요.
 
헤어짐은 예정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천가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요.
 
헤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연하지만…
 
무릎까지, 이젠 머리카락의 끝부분도.
 
부서지는 가람의 몸은 노을보다 더 밝게 빛납니다.
 
빛무리들이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노을이 지기 전 하고 싶은 말을 합시다.
 
중간중간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해가 짐에 따라 그 소리도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합니다.
 
이젠 정말 헤어질 때가 온 걸까요.
 
우리의 여름은 유독 시리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서율:(점점 떨어지는 고개에 문득 제 손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얼마나 힘을 주고 주먹을 쥐었던 건지, 손바닥에 초승달 모양으로 손톱자국이 여럿 나있어요. 잠시 그걸 보며 손에 힘을 빼 쥐었다 피는 것을 반복하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봅니다.) 미안해요. 선배는 저와 다시 만나기 위해 편지도 보내줬는데, 저는 선배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네요. ...당연하죠. 지금껏 잘 지내왔잖아요. 가끔, 아니. 사실은 자주 선배가 보고 싶었지만...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그래도 전 잘 지낼 거예요. (천가람의 옆 얼굴을 쓸어보듯 손을 들어 주변만 배회합니다. 너무 소중하고 연약하고... 차마 건들일 수 없는 것이라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겠네요.)
 
가람은 오랜 시간 당신을 응시하곤 천천히, 아주 느리게 입을 뗍니다.
 
천가람:.. 응. 굳이 뭐 안 해줘도 돼. 그렇게 생각만 해줘도 충분히 고마우니까. (나도 계속 보고 싶을 거야. 차마 내뱉지 못할 말을 속으로 곱씹는다. 그리워하는 건 나 하나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 사실,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어.
... .... 날, 잊어줄래?
 
…그렇게 말하는 가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나요?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와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눈.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애원하듯, 목소리가 잘게 떨립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이별에는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영 잊는 건 또 다른 의미죠.
 
목이 메이는 듯한 기분에 숨이 턱 막합니다.
 
마지막 부탁이 이렇게 잔인할 필요까지 있나요?
 
권서율:....마지막으로 한다는 부탁, 이라기엔 조금 너무한데요? 선배는 정말.... (저런 얼굴로 그런 말이나 하고. 차라리 웃고 있던가. 그 말을 하는 당사자가 저리 괴로워하면 어떡하자는 걸까요.)
제가, 선배가 했던 말을 대부분 순순히 들어주긴 했지만... 이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어쩌죠. 정말로, 정말 제가 선배를 잊길 원해요? 그래서 절 부른 거예요? (뒤로 갈 수록 울컥하는 마음에 목소리가 떨립니다. 하지만 그걸 고치기엔 이미 터져나왔는걸요.)
차라리 정을 떼라고 직접 말해요.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볼게요. 계속 여지를 주면서, 그러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힘들어요.
 
천가람:..... 하지만, (너를 위해서 그런 거라 말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어요.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위치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결국 선후배일 뿐이지 않나. 그 누구도 먼저 고백하거나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건 당연하죠. 그래서...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합니다) .... 난 그냥.. 네가 행복하길 바랐어.
 
다정하게 뺨을 쓰다듬는 손은 이제 형체가 없습니다.
 
그저 따스한 빛만이 당신을 감싸고 있을 뿐.
 
가람의 눈에서 떨어지는 건 그 수많은 파편 중 하나겠죠.
 
미처 삼키지 못한 눈물은 아닐 겁니다.
 
행복하길 바란다고 합니다.
 
당신이 더 이상 슬퍼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 말들에 새겨진 진심은 깊어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7년의 기다림, 그리고 마지막 부탁이 망각이라면 우린 너무 슬픈 이별을 맞이하는 게 아닌가요?
 
마지막 안녕 역시 잊히고 말 것입니다.
 
가람의 이름 한 획부터, 다정한 목소리까지도.
 
눈앞의 상대는 한 줌의 빛이 되어 바스러질 거 같습니다.
 
애원하는 목소리의 끝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어, 애절하기 까지 합니다.
 
세 번째 이별을 앞둔 사람의 표정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권서율:...제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 전부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해줘요. 잊으라는 말 말고, 그저 다시 언젠가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해줘. 부탁이야, 천가람....
 
천천히 기울어진 해는 누군가가 없는 내일을 향해 떨어집니다.
 
천가람:... 그게 네 선택이라면. 알겠어.
 
가람은 바스러지는 팔로 눈가를 벅벅 닦더니,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어 보입니다.
 
잊혀진다는 것을 어느 누가 반가워 하겠나요.
 
내색하진 않아도 가람은 두려워했을 겁니다.
 
정말, 자신의 존재가 소중한 이에게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
 
노을이 산 뒤로 완전히 넘어갑니다.
 
희미한 빛만이 남은 가람은 당신을 그러안습니다.
 
그 빛은, 그 온도는 한없이 다정하고 따스해 마음이 녹아버릴 거만 같아요.
 
고마워, 잘 지내, 그리고…
 
쏟아지는 말들이 점점 작아집니다.
 
당신이 품에 안고 있던 상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지탱하던 무게가 사라지자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입니다.
 
눈물이 고여 흐릿한 앞을 보면 완전한 어둠 속 넓게, 하늘로, 또 하늘로 시린 겨울바람을 따라 흩어지는 빛의 파편들이 보입니다.
 
손이 닿자 으스러지는 그 연약한 빛이요.
 
가람이 있던 자리에는 무언가가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뽑았던 팔찌, 그리고 저건…
 
꽃다발입니다.
 
권서율:(후두둑, 떨어지는 눈물 사이로 보이는 꽃다발에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숙여 주워봅니다.)
 
히아신스네요.
 
여름에 피는 꽃이 아니건만,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꽃말이 겸손한 사랑이라고 했던가요.
 
가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못다 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그 상대가요.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것도 없는 이 언덕이 괜히 더 넓어 보입니다.
 
이제 나가야겠죠.
 
동네가 곧 완전히 닫힐 겁니다.
 
여름, 우리가 다시 헤어진 계절.
 
영원하기만을 기다리는 그 계절은 유독 무덥습니다.
 
가람이 남기고 간 꽃다발을 가만히 쳐다보면, 낡고 바랜 갈색 카드 한 장이 꽂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손끝을 간질이는 꽃들 사이 그 카드를 꺼내어 읽읍시다.
 
눈물이 나는 것은 소중한 이의 익숙한 부재 때문이겠죠.
 
카드에 적힌 그 내용은…
 
END 2. 너의 졸업식을 축하해.
 
KPC: 로스트, PC: 생존
 
이성치 1d3 회복
 
PC는 매일 밤마다 KPC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됩니다. 반복되는 헤어짐의 꿈. 그건 악몽일까요?
 
권서율:
rolling 1d3
 
(
3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