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시나리오 카드(@Gigagenie_commi님 커미션 작업물)

Scenario Writer : 영광(@_756765_)

 

2021. 02. 26

유시현 현채이

KP : 곰탱

PL : 레시 펜들턴

 

 
세션카드
 
작고의 실재
 
Written By. 영광(@_756765_)
 
※본 플레이는 원문 시나리오에서 약간의 개변을 거쳤습니다.
 
2021. 02. 26
 
14:11
 
KPC. 현채이
 
PC. 유시현
 
START
 
깜빡,
 
눈부신 빛에 한 차례 시야가 점멸됩니다.
 
물 속에 잠긴 듯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은 먹먹합니다.
 
상하좌우를 구분할 수 없는 하얀색의 공간.
 
중심을 잡기 위해 팔이 움직이고 반동으로 다리를 뻗으면, 벽과 바닥이 있어야 할 곳에는 짚이는 것이 없습니다.
 
끝없는 부유감에 턱하니 생각이 멈춥니다.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
 
천천히 초점이 복귀됩니다.
 
온 몸을 감싸고 돌던 부유감이 사라짐과 동시에 피어오르는 연기가 코앞까지 매캐한 내음을 풍기고 멀어집니다.
 
딱딱한 바닥이 발에 닿자 느리게 자세에 힘이 들어갑니다.
 
원근을 분간할 수 없던 곳은 새하얀 천장과 새하얀 벽으로 들어찼습니다.
 
온통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당신의 주위에서 바삐 움직입니다.
 
여기는 어디...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당신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검게 뻥 뚫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처음부터 이목구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을 낼 때마다 얼굴의 공간이 옴작댑니다.
 
발목에 올라오는 소름돋는 감각.
 
얇은 머리카락 같은 실들이 살결을 간지럽히고, 흰색의 공간 구석구석을 스치는 자잘한 소음이 들립니다.
 
개미 떼, 거미, 지네 등 여타 벌레들이 당신의 발과 발목 언저리를 타고 기어갑니다.
 
우글거리는 벌레들은 그들의 얼굴 자체입니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낯이 전부 벌레로 뒤덮여 있습니다.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화 없음
 
문득, 손 안의 촉감이 그릇된 기시감을 자아냅니다.
 
유시현:(주변을 보며 경악하던 눈은 손 안의 기시감을 향한다) ...
 
한 송이의 국화입니다.
 
흰색 꽃잎 위에는 응결된 물방울이 있고, 줄기에는 이파리가 두어 개 달려 있습니다.
 
생기를 머금었으나 얼음처럼 차갑습니다.
 
점차 명확해지는 의식의 흐름보다 앞선 것은 강하게 풍겨오는 맵고 싸한 연기입니다.
 
찡하게 밀려오는 두통에 반응할 새도 없이 다시, 시야가 점멸합니다.
 
고개를 들면, 아까까지 저 멀리 있던 원목 단상이 당신의 바로 몇 걸음 앞에 있습니다.
 
유시현:내가..꿈을 꾸는 건가? (계속되는 환영같은 상황들에 혼잣말을 자아내며 단상으로 다가갔다.)
 
당신이 든 것과는 확연히 다른 시든 국화들이 단상 위에 가득히 놓여 있습니다.
 
거멓게 눌러붙은 갈색 잎들이 짓눌려 볼품없이 떨어져 주위를 어지럽혔습니다.
 
가운데에 놓인 영정사진 앞,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은 꽃병을 제외하고서요.
 
유시현:(단상을 손으로 한번 쓸어보며 영정사진을 바라본다)
 
상중을 의미하는 검은 띠가 둘러져 있습니다.
 
한쪽 띠가 볼품없이 흘러내린 것이 한참인데, 그 누구도 띠를 제자리로 해주지 않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은 가득하나 사진을 관리해주는 이는 없습니다.
 
인물이 위치할 가운데에는 어디서 기어나온지 모를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유시현:...(벌레들을 피해 손을 뻗어 흘러내린 띠를 제자리에 올렸다.)
 
당신의 손길이 닿자, 벌레들이 기척을 느꼈는지 빠르게 흩어집니다.
 
수천 개의 작달만한 다리들이 당신을 중심으로 움직여 사라지면, 그제서야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사진이 있어야 할 곳은 텅 비어 있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대신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유시현:(쓰여진 글귀를 눈으로 훑듯이 읽어내리고는) 무슨 뜻이지..
성경에나 나올 것 같은 말이네. (액자에서 눈을 떼고는 꽃병을 바라본다)
 
군데군데 금이 간 검은색의 빈 꽃병입니다.
 
금방이라도 손을 대면 깨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 꽃병을 들거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유시현:(고개를 숙여 꽃병 안쪽을 들여다본다)
 
당신은 꽃병의 안쪽에 푸른 하늘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저 그림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며 하늘을 흘러갑니다.
 
날아가는 새나 비행기도 보입니다.
 
사진과 꽃병을 다 보고 나면, 비로소 당신은 눈치챕니다.
 
손에 든 국화, 흩뿌려지는 향,
 
이곳은 장례식장입니다.
 
......누구의?
 
의문에 대답해 줄 이가 없습니다.
 
유시현:사진도 없고.. 누구지..?
 
일순 무언가 끊기듯 주위의 소음이 멎습니다.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만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추고 당신을 주시합니다.
 
툭, 툭. 바닥으로 나방 여러 마리가 떨어집니다.
 
날카로운 시선이 뒷목을 파고듭니다.
 
명확한 오감이 되살아났으나 치기어린 공포감이 들어차는 속도는 그보다 빠릅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고개를 치듭니다.
 
이 곳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어떻게...
 
유시현:... (순간 쏟아지는 오싹한 시선들에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꿈이 원래 이렇게 실감났던가.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국화가 떠올라 사진이 있어야할 자리를 한번, 꽃병을 한번 보고는 느린 손짓으로 국화를 병에 꽂았다.)
 
꽃병에 국화를 넣으면,
 
주위에 이상한 평온감이 깃드나 싶더니, 이윽고 당신이 선 자리를 기점으로 바닥과 벽에 거대한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다 시들어가는 국화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예요.
 
온통 희기만 했던 천장이 무너집니다.
 
떨어지는 기물에 의한 고통은, 전혀요.
 
눈부신 균열 너머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우주의 하늘이 당신의 머리 위에 펼쳐집니다.
 
국화를 꽂은 꽃병의 안쪽에서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솟아납니다.
 
시야가 점멸하고,
 
새로이 모든 훤소가 먹힙니다.
 
지독한 권태의 부유, 스스로가 한없이 추락할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질 때,
 
아득한 당신의 시야 끝, 소실점에 자리한 이가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부서지는 웃음.
 
무너지는 세계의 틈에서, 채이가 국화를 들고 있습니다.
 
유시현 듣기 판정
 
유시현: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몸이 흐려집니다.
 
새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공간에 온전히 채이가 녹아듭니다.
 
아주 상냥하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현채이:고마워.
 
이윽고, 까무룩 정신이 멀어집니다.
 
장면전환
 
사락, 바람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이마를 스칩니다.
 
근육 사이사이를 헤집고 뼛속 깊숙히 오한이 파고듭니다.
 
반사적으로 터진 숨이 차게 허공을 때리면, 몽롱한 정신과 암전된 시야에 서서히 빛이 들어찹니다.
 
눈꺼풀을 투과한 푸른 빛이 한 차례 크게 일렁입니다.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옅게 깔린 익숙한 향과 촉감에 눈을 뜹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유려히 흔들리는 새하얀 커튼자락 너머로는 삼십 개 남짓 되는 책상과 의자들이 열을 맞추어 있습니다.
 
옅게 내려앉은 먼지 내음, 시계의 초침 소리.
 
당신은 이곳이 교실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야 지금까지 질리도록 봐 온 장소인걸요.
 
다들 어디로 갔는지, 교실은 조용합니다.
 
유시현:뭐지.. 내가 잠들었었나?
 
쨍그랑!
 
......정신을 찌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허공을 찢고, 몽롱한 정신을 완전히 수마 위로 끌어올립니다.
 
유시현:?!
 
유리로 된 무언가가 바로 당신의 귀 옆에 내던져진 것처럼 생생한 파장이 이어집니다.
 
파도처럼 어지럼증이 거세게 밀려오고 물러갑니다.
 
유시현:뭐지..?(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을 이끌었다)
 
크고 작은 유리조각들이 거슬리는 소리를 냅니다.
 
당신의 발치부터 시작해서 드문드문 붉은 자국들이 교실 바닥에 눌러붙어 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액자 하나가 엎어져 있습니다.
 
유시현:(갑자기 혼자 떨어진건가? 이 자국들은 또 뭐고? 주변을 둘러보며 누가 있는지 살펴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유시현:(액자를 주우려 허리를 숙였고 바닥에 있는 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보니 교실의 세세한 풍경이 당신의 교실과는 사뭇 다릅니다.
 
남의 반인가...?
 
여러 겹의 얇은 유리로 이루어진 액자입니다.
 
끔찍한 파열음의 원인이겠죠.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금이 갔고 군데군데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액자의 옆에는 마구잡이로 찢기고 헤집어진 검은 띠가 너덜하게 떨어져 있고, 띠의 밑에서는 무언가가 울룩불룩하게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액자를 들어올리면 날카롭고 작은 유리조각들이 아래로 흩뿌려집니다.
 
사진을 보호했어야 할 유리는 총알이라도 박힌 것마냥 산산조각나 그 안의 인물을 알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러나 어떻게 당신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수 있겠어요.
 
이런 사진에 있기에는 그다지도 어린 나잇대.
 
깨진 유리의 굴절로 끝도 없이 추해 보이는 인물에게 당신은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짙은 순정과 우울감을 느낍니다.
 
당신이 그토록이나 소망하고 애정하는 존재입니다.
 
불과 며칠 전 그의 장례식에 갔었잖아요.
 
바닥에 있는 자국을 확인하면,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잘 모르겠네요.
 
보고 있으려니 괜시리 기분이 나빠집니다.
 
묘하게 이상한 냄새가 풍기는 것도 같고...
 
유시현:... (사진을 가만히 보고있으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후회와 슬픔, 약간의 애증. 결국 그렇게 내 짝사랑은 끝을 내야했다. 아마 이제 당신은 영원히 모르겠지만. 문뜩 사진 옆에 있는 검은 띠를 보고는 조심스레 밑을 확인해본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희고 둥그런 이 움직입니다.
 
무언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안쪽의 무언가가 떨립니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어옵니다.
 
?: 조심해.
 
꿈틀거리던 알 위로 검은색 단화가 불쑥 들어옵니다.
 
무언가 터지고 짓밟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낮게 깔립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지금까지 당신이 들어왔던 것들 중 가장 정확하고 선명합니다.
 
유시현:?....
 
망설임 없는 행동.
 
그가 근처에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내려놓고, 한 손으로 당신의 팔목을 감싸쥐어 일으킵니다.
 
다소 흐린 눈빛이 일렁이다, 초점을 당신에게로 잡습니다.
 
?: 깨진 유리는 위험하니까, 잘못하면 손을 다칠 거야.
 
그가 말합니다.
 
이상하리만치 여상하고 잔잔한 어조로.
 
그의 부고를 전해듣기 전까지는 죽음이 아주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죠.
 
순애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당신의 심장에 불을 당기는 단 하나뿐인 존재,
 
현채이입니다.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선...배...?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이성 -1d4
 
유시현:
Rolling 1D4
굴림: 2
 
이성 -2
 
경각 잡혔던 팔목이 얼음을 댄 듯 서늘합니다.
 
현채이:묻고 싶은 게 많겠지.
 
그가 중얼거리더니 다른 한 손으로 태연히 액자를 쓸어잡아 당신의 손으로부터 빼내어 근처의 책상에 내려놓고,
 
뒤에 놓인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 띠를 포함한 잔해들을 쓸어 치우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다시 불어오는 바람에 교복 자락과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휘날립니다.
 
그의 교복 셔츠 주머니에는 당신이 꽃병에 넣었던 국화가 들어있습니다.
 
유시현:선배가 어떻게 여기있어요..? 분명...선배는..(죽었는데. 뒷말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입으로 뱉기에는 아직 용기가 없었다)
 
현채이:.. 갑자기 죽어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인사를 못한 게 떠올랐는데, 그 순간 우연히 마주친 신과 계약을 해서 이 자리를 빌렸어. 이야기라도 좀 하고 가려고. 오늘이 마지막이야. (시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그래서 널 만나기 위해 왔어.
 
유시현:... 인사요... (신의 계약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믿어도 되는 건가. 이것도 그저 내가 가진 미련 때문에 꾸고있는 허상이 아닐까. 그렇잖아. 당신이 날 찾아올리가 없는데.) 그래도 어떻게 절 떠올리셨다니 의외네요..
 
현채이:떠올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채이는 죽기 직전, 어쩌면 그 이전에 시현에 대한 감정을 보다 구체적인 이름으로 명명한지 오래였기에 내뱉는 말에 거리낌이 없었으나 여지를 남기진 않았다. 결국 채이는 죽은 사람이니까)
 
유시현:그만큼 제가 너무 귀찮게 굴었나요?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 역시 말을 거름 없이 내뱉었다. 당신이 내가 보고싶진 않았을거잖아. 그저 후배니까 떠오른거겠지.)
 
현채이:(헛웃음을 지으며 툭, 말을 던지는 시현과 달리 채이는 여전히 평소와 같이 차분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너 그렇게 귀찮지도 않았어. (아까의 파편을 치우느라 먼지가 묻은 손을 탁탁 털어낸다) 그냥... 미련이라고 생각해. (채 말도 하기 전에 끝맺은 결말로 인한 미련이라고. 속에 담긴 의미를 감춰둔 채 희끄무레하게 웃는다)
 
유시현:저한테 미련 가지실게 뭐가 있어서요. (선후배 사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떠나버린건 당신이었잖아. 당신이 내게 관심을 가질리도 없잖아. 허무하게 끝나버린 짝사랑은 억울함과 후회의 감정을 키워 울컥 치밀어오르게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걸 표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그저 평소처럼 평이한 얼굴로 그 미소를 바라볼 뿐이었다.)
 
현채이:너는 모르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죽은 마당에 이제 와서 밝히고 싶진 않고.. (시현의 말이 맞았다. 시현과 채이는 겉으로 보면 미련 가지는 게 이상한 관계였다. 아무도 특별하다 의심하지 않았고, 그저 사이좋아 보이는 선후배일 뿐이었으니까. 그건 현채이, 본인도 잘 알 터였다. 허나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감춰둔 마음이 하나 있었다. 자신은 지금 그것에 기인한 미련을 채 떨쳐내지 못한 채 시현을 마주했다. 죽었으니 괜찮을 거라 여겼던 마음은 시현을 보는 순간 다시금 파동이 일었다. 나는 너를 죽어서도 떨쳐내지 못하는구나)
 
유시현:... (그럼 차라리 보지 말고 그대로 가지 그랬냐, 이미 사라진 마당에 다시 봐서 뭘 어쩌려고, 같은 말들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목구멍을 맴돌았다. 당신에게 그런 모진 말들을 하기엔 아직 너무 사랑하나봐, 짜증이 날 만큼.) ... 그래서 그냥 인사하러 오신거라고요..
 
현채이:.. 뭐, 그렇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미소지었다. 시현의 속을 모르니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그렇다고 채이의 속도 마냥 평안하진 않았다. 외려 까맣게 타서 문드러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져 찢겨나간 심정이었다. 그 상태임에도 지금처럼 웃을 수 있는 건 현채이 특유의 뻔뻔함과 거짓부렁 덕이었다)
 
유시현:... 그럼 다 끝나면 선배는 어떻게 되는데요.. (당신이 말한 신과의 계약,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미 다시는 볼 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물어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현채이:비로소 끝을 맞이하는 거겠지. 천국이든 지옥이든...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든.., 어디로든 가지 않을까. (죽음을 말하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초연한 어조였다. 마치 이미 죽었으니 상관없다는 것처럼)
 
유시현:...그래요..(당신이 죽었다는걸 한 번 더 실감하게 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근히 잔인하네.)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현채이:오늘이 끝나기 전까지니까.. 아직 많이 남았어. 서두르지 않아도 돼.
 
유시현 의료 판정
 
유시현:
의료
기준치: 71/35/14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채이의 근처에서 작은 거미가 기어나옵니다.
 
장례식장에서 본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이윽고 채이는 옷매무새를 추스릅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학교를 조금 둘러보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흘금,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합니다.
 
잔잔히 쏟아져 들어오던 햇빛이 정통으로 들어오는 것이, 시간이 지났음을 알립니다.
 
이상하게 햇볕이 뜨겁지 않고 하늘이 이다지도 푸른 이유는, 여기가 꿈 속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가 쓰레받기에 담긴 잔해들을 우르르 쓰레기통으로 쏟아버리곤 청소도구들을 다시 제자리에 둡니다.
 
그리고 가볍게 가슴팍에 달린 국화를 매만집니다.
 
현채이: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와. 도서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짧은 통보 후, 먼저 몸을 돌려 나갑니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교실 밖으로 향하는 채이의 발걸음이 다소 조급합니다.
 
손으로는 목 언저리를 누르고 있습니다.
 
유시현:시간 많다더니.. (작게 중얼거리며 익숙한듯 낯선 교실을 빠져나왔다)
 
당신은 교실을 나와 직선으로 길게 뻗은 복도에 섭니다.
 
키의 반절을 훌쩍 넘는 창문들은 하나같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힙니다.
 
환영을 표하듯 바람이 불어오는 경로마다 커튼이 망토처럼 불룩하게 휘날렸다가 수그러듭니다.
 
창밖으로는 한 점의 구름조차 없는 푸른 하늘이 죽 깔려 있습니다.
 
명암의 경계를 선명하게 만드는 햇빛이 들어차, 커튼에 투과되어 적당히 밝은 시야를 만듭니다.
 
복도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는, 커튼은 일전에 누군가 커튼 고리를 하나 놓치고 매달았던 건지 움직일 때마다 작게 달칵이는 일상적인 소리를 동반합니다.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의 추억과 시간이 깃든 학교입니다.
 
물론...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8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주위가 온통 하얀색으로 들어차 있다는 점과, 당신을 제외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두 가지를 제외하면요.
 
벽과 바닥, 천장이나 갖은 시설들 모두가 흰색 페인트를 쏟아부은 것처럼 새하얗습니다.
 
그리고 그 백색 공간 안에서, 당신의 숨소리와 발소리를 제외하고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 창밖을 볼 수 있습니다.
 
유시현:온통 새하얗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건가..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아래는 평범한 운동장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없습니다.
 
푸르른 초목들이 바람에 따라 흔들립니다.
 
밖에는 이렇게나 색채가 가득한데, 이 곳만 온통 무색의 공간입니다.
 
뭐랄까, 마치, 채이처럼요.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위아래 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복도의 오른쪽 끝에 보입니다.
 
당신이 현재 위치한 곳은 본관, 3학년 전체가 사용하는 4층입니다.
 
도서실은 어디에 있었더라.......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분명 별관 1층이었죠.
 
1층에 나 있는 후문을 통해서 나가면 가깝습니다.
 
유시현:(복도에 난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 1층의 후문으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가면, 당신을 기점으로 왼쪽에는 보건실, 오른쪽에는 별관이 마련된 곳으로 나갈 수 있는 후문이 눈에 띕니다.
 
유시현:(왼쪽에 있는 보건실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직 시간 많다고 했지..(후문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보건실의 문을 열었다)
 
평범한 보건실입니다.
 
새하얀 공간, 마찬가지로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 근처에는 방문 시간대와 병명을 기재하는 클립보드가 놓인 간이 책상이 있고,
 
벽의 한 켠에는 아픈 학생들이 누워 몸을 쉴 수 있도록 마련한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창문이 위치한 가운데에는 밴드와 소독약 등을 보관하는 서랍장이,
 
서랍장 옆에는 보건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진찰하시고 업무를 보시는 용도의 책상과 의자가 있습니다.
 
유시현:여기도 아무도 없네, (진짜 병원처럼 하얀 보건실을 둘러보며 문 앞에 놓인 클립보드를 들었다)
 
간단히 세 칸짜리 표를 인쇄한 A4용지를 열 장 남짓 끼워둔 하늘색의 클립보드입니다.
 
학생들의 이름과 병명 등이 적혀 있군요.
 
비고 란에는 종종 조퇴나 외출증을 써둔 흔적도 보입니다.
 
유시현:(종이를 한장씩 넘겨본다)
 
각기 다른 병명과 필체가 존재하던 기록란에 세 장째부터 같은 이름이 드문드문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현채이.
 
이후 몇 장을 더 넘겨보면 빈도는 점차 늘어나, 두어 장을 더 넘겨 보면 기록란에는 온통 채이의 이름만이 가득합니다.
 
구토, 발작, 환각, 복통, 경련......
 
...당신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이렇게 아팠던 거죠?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원래...이렇게 자주 아팠나..?
SAN Roll
기준치: 67/33/13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날짜는 일 년 전부터 최근까지 다양합니다.
 
심지어 죽기 바로 전 날까지도.
 
유시현:(여기가 진짜 학교가 아니라면.. 이것도 확실할 때까지는 믿을 것이 못된다 여기며 클립보드를 내려놓았다. 더 안으로 들어와 보건실에 놓인 침대로 향했다.)
 
침대로 가려 하면, 자잘한 종이들이 밟힙니다.
 
온통 결과 허가증이나 조퇴증들입니다.
 
적힌 것은 아니나다를까 채이의 이름입니다.
 
몇 개는 잡다가 힘을 주거나 땅에 떨어뜨렸는지 더러운 먼지가 묻어 있고, 몇 개에는 땀이나 눈물 등이 얼룩져 있습니다.
 
다른 몇 개에는 끈적하고 반투명한 연회색의 액체가 묻어 있습니다.
 
유시현:이게 전부...(손을 아래로 뻗어 종이를 주워들었다)
 
당신은 개중에 그나마 깨끗한 종이를 주워듭니다.
 
보건 선생님이 적어준 것인지 필체는 채이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유시현:... 아닐거야.. 사고라고 했잖아.. (눈 앞에 놓인 것들을 부정하며 침대로 향하던 걸음을 마저 옮겼다)
 
침대는 총 두 개입니다.
 
왼쪽 침대는 정갈히 모아 묶은 커튼을 옆에 두고 깔끔히 정돈되어 있는데, 오른쪽 침대는 커튼에 가려져 있습니다.
 
유시현:(왼쪽 침대를 먼저 살펴본다.)
 
일반 학교의 침대치고는 시트도, 베개도 비교적 푹신한 편입니다.
 
보건실의 상징처럼 더럽혀지지 않은 하얀색이 특징적이었던 것 같은데, 흰색이 점령한 학교에서는 그저 삭막할 뿐입니다.
 
침대 옆에는 사용하지 않은 일회용 체온계가 놓여 있습니다.
 
유시현:체온계가 왜 여기있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다 오른쪽에 있는 침대로 향했다)
 
침대를 가린 커튼은 제법 야무지게 닫혀 있습니다.
 
커튼 자락에는 종이 한 장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테이프로 아슬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유시현:..?(매달려 있는 종이를 떼어내 확인한다)
 
학생들이 사용할 법한 책이나 줄노트 등에서 찢어낸 듯한 종이입니다.
 
검은색 볼펜이 마구잡이로 칠해져 있어, 본래 있던 내용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본래 종이에 있던 것이 거미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기분이 따라붙습니다.
 
유시현:왜 이런 그림이 여기 있는거야? (아까부터 계속 벌레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니 찜찜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곤 그림이 매달려 있었던 커튼을 옆으로 열었다)
 
커튼을 열면 보이는 것은 보건실의 그것이 아닌 분명한 색채를 띤 일반 가정집에 있을 법한 침대입니다.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어오는 침대에는 구김살이 진 시트와 이불이 아무렇게나 헤집어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깃구깃한 베개는 무언가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머리맡 근처에는 수납장이 있고, 그 옆에는 쓰레기통이 놓여 있습니다.
 
유시현:(왼쪽과는 상반된 모습에 의문은 더욱 커져갔다. 침대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구겨진 시트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방금까지 누워있었던 것처럼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있습니다.
 
왼쪽 침대와 다르게 이 시트와 이불은 눅진하네요.
 
한데 뭉쳐진 이불의 아래에 무언가 있는지 살짝 불룩하게 솟아 있습니다.
 
유시현:..?(이불을 걷어낸다)
 
확인해보면, 축축한 체온계입니다.
 
떨어뜨려 고장이라도 난 건지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습니다.
 
체온을 나타내는 작은 화면에는 노이즈가 끼어있습니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알아보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들였을까요.
 
화면이 몇 차례 깜빡거리더니, 이내 핏 꺼져버립니다.
 
유시현:꺼져버렸네..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문득 당신은 깨닫습니다.
 
이 촉감, 이 색깔.
 
묘한 기시감의 정체.
 
침대는 채이의 것입니다.
 
그가 잠을 자고 생활하던 삶의 일부... 어떻게 깜빡할 수 있죠?
 
그토록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여 떠올리던 상대인데.
 
이불을 만질 때마다 어느 여름날 맡았던 것과 꼭 같은 그의 체향이 올라옵니다.
 
유시현:선배 침대가 왜 여기 있는건데... (자꾸 알 수 없는 일들과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보여지자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침대를 눈으로 훑어보다 시트 위에 마찬가지로 구깃해져 있는 베개로 시선이 돌아갔다)
 
눅눅하지만 미지근한 온기라도 감돌던 시트나 이불과는 다르게 베개는 잔뜩 젖은 액체로 인해 섬뜩하게 차갑습니다.
 
유시현:(뭐에 젖은 건지 베개를 만져본다)
 
베개는 여러 체액으로 범벅되어 있습니다.
 
유시현:...(차가운 베개에서 손을 떼어내고 그대로 옆에 있는 수납장을 열어본다)
 
수납장 또한 마찬가지로 흰색의 공간에 대비되는 유색입니다.
 
장소가 보건실일 뿐, 수납장이나 침대 등과 같은 기물은 모두 방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두 칸 짜리 서랍이 달려 있습니다.
 
서랍을 열면, 덜컹,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서랍이 열리지 않습니다.
 
유시현:..? 잠겨있나? (서랍의 틈새를 들여다 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기계 같은 것이 걸린 것 같습니다.
 
유시현:뭐가 걸린 것 같은데..(있는 힘껏 서랍을 잡아 연다)
 
유시현 근력 판정
 
유시현:
근력
기준치: 60/30/12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잘 열리지 않습니다.
 
걸려도 단단히 걸렸나 봐요.
 
유시현:하...(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한번 힘껏 당긴다)
 
유시현 근력 강행 판정
 
유시현:
근력
기준치: 60/30/12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걸린 것이 뚝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서랍 속 내용물들이 덜그럭거리는 소음을 자아내며 열립니다.
 
유시현:(열린 서랍 안을 들여다본다) 뭐가 걸린거지?
 
입에 물었다 뺀 것을 닦지 않고 넣었는지 간간이 부패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일회용 체온계가 안에 가득합니다.
 
지나치게 많이 집어넣은 채 정돈하지 않고 닫아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겠죠.
 
유시현:이렇게 많이..(살짝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체온계 하나를 들어 숫자가 떠있는지 살펴봤다)
 
측정된 체온은 하나같이 38도 이상입니다.
 
전부 채이의 것인가요?
 
대충 가늠해도 마흔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데요.
 
유시현:이 정도면 거의...(독감 정도의 고열인데 정말 이걸 몰랐다고.. 정말 이게 전부 당신의 것이 맞다면 난 왜 그동안 몰랐을까. 작은 회의감이 움트며 두번째 서랍을 열었다)
 
넓은 수납공간 속에는 아주 낡은 책과, 찢어진 종이 한 장이 함께 있습니다.
 
책의 표지에는 라틴어로 제목이 쓰여 있고, 어딘가에서 뜯어온 듯한 종이에는 붉은 펜으로 휘갈기듯 급히 쓴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힘을 주고 빠르게 쓴 탓에 종이에 잡다한 자국과 찢어진 흔적이 보입니다.
 
유시현:(책의 표지를 읽어본다) (라틴어 판정합니다)
 
유시현 라틴어 판정
 
유시현:
라틴어 Roll
기준치: 51/25/10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낡은 책의 내용을 대충 넘기듯 빠르게 읽습니다.
 
▶: 오컬트 기능치에 +2 해주세요.
 
유시현:(책을 내려두고 옆에 종이에 적힌 글을 읽는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글씨는 채이의 필체가 아닙니다.
 
유시현:비슷한 글이 있지 않았나...(흐릿한 환영 속에서 봤던 액자속의 글귀를 떠올렸다. 그럼에도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없으니 그대로 서랍속에 넣어두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이 적힌 종이를 서랍에 다시 넣어두었습니다.
 
유시현:(서랍장에서 떨어져 옆에 있는 쓰레기 통을 들여다 본다)
 
쓰레기통 안은 다 젖어버린 수건이나 찢어진 옷, 색을 가늠할 수 없는 점액질, 끈적한 핏덩이로 가득합니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점액들의 사이사이에 어그러져 있는 벌레의 사체를 발견합니다.
 
유시현: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던 거야...(쓰레기 통 안에 담긴 처참한 것들은 더욱 더 회의감을 키우게 만들었다. 결국 그것들에서 시선을 돌려버리고 보건실을 빠져나왔다)
 
보건실을 나오면 여전히 새하얀 빛의 한적하고 조용한 복도가 당신을 반깁니다.
 
유시현:(방금까지 자신 봤던 것들과는 반대되는 광경에 저절로 위화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역겨울 만큼.. 어느새 주먹 쥔 손에서 힘을 빼며 별관으로 향할 후문으로 걸어갔다)
 
별관으로 갈 수 있게 마련된 후문입니다.
 
양 옆으로 철제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밖으로는 건너가기에 용이하도록 계단 대신 구름다리가 짧게 이어져 있습니다.
 
본관인 이곳과 별관은 온통 하얀색인데, 그 둘을 이어주는 바깥에는 눈부신 푸른 하늘과 황금빛 햇살이 깔려 있습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신록은 또 어떻고요.
 
평화 그 자체의 세상입니다.
 
다리 너머의 별관 1층, 커튼이 반쯤 드리워진 창가의 안쪽에는 언뜻 채이의 모습이 비친 것 같습니다.
 
도서실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더니, 저곳인가 보네요.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책장 근처에 서 있던 채이가 빠르게 허리를 숙입니다.
 
당신을 눈치챈 것 같지는 않은데, 어째선지 다급한 몸짓입니다.
 
유시현:...? 뭐하는 거지..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가 눈 앞에 있는 다리를 천천히 건너갔다)
 
다리 위로 걸음을 옮깁니다.
 
등시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합니다.
 
핑 하는 감각과 더불어 다리가 휘청이나 싶더니, 누군가 떠미는 듯 몸이 앞으로 고꾸라집니다.
 
시야가 새까맣게 변합니다.
 
유시현:?!..
 
언젠가부터 막혀버린 호흡은 뜀박질 따위를 한 것마냥 턱끝까지 힘겹게 차올라 역겹습니다.
 
야금야금 어디서 나타난지 모를 온갖 벌레들이 당신의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옵니다.
 
이명과 폭발음, 아까는 공간이 하얗게 부서지면서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거멓게 주위가 무너집니다.
 
이 곳에는 '당신'과 '채이'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을 텐데, 타인들의 비명이 고막에 날카롭게 꽂힙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 구름다리의 난간 너머로 중심이 쏠립니다.
 
유시현 정신력 판정
 
유시현: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가까스로 난간을 붙잡습니다.
 
다리 너머로 떨어지려는 몸을 지탱합니다.
 
몸은 멈췄지만 눈앞에는 형언할 수 없는 원색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여,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을 볼 수 없습니다.
 
경황없이 마구 차오른 숨이 자리를 되찾을 틈도 없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어깨를 뒤에서 단단히 감싸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깁니다.
 
현채이:괜찮아?
 
아, 채이입니다.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을 목격하고 뛰어온 모양이죠.
 
유시현:... 선배..?
 
머리를 댄 흰 셔츠 아래에서 열기가 피어 올라옵니다.
 
무어라 답을 하거나 둘러볼 새도 없이 그가 다소 조급하게 당신의 양 뺨에 손을 올리더니, 이마를 맞붙입니다.
 
그대로 손을 뒤로 감싸올리곤, 손가락으로 당신의 머리칼을 느즈막이 헤집습니다.
 
옅게 터져나오는 호흡에는 열이 올랐습니다.
 
현채이:눈 감아.
 
누가 말하는 것인지도 모를 악의 가득한 모독적인 속삭임과 타기어린 시선들 사이로 선명하게 그의 음성이 스며듭니다.
 
이지러지는 시야가 한 차례 가다듬어져 제대로 눈에 초점이 잡히면, 숨이 적나라하게 닿아올 거리에 채이가 있는 탓에 주위 풍경이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유시현:네..?
 
그과 당신과 시선을 마주한 채로 조곤조곤하게 속삭입니다.
 
현채이:손 잡아줄 테니까 넘어질 걱정은 안 해도 돼.
 
...희미하지만 분명한 혈향이 풍겨옵니다.
 
현채이:도서실로 가자, 시현아.
 
유시현 심리학 판정
 
유시현:
심리학
기준치: 45/22/9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러 왔다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었어요.
 
가까이 마주한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입니다.
 
▶: 눈을 감을지, 감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시현:(방금 자신이 겪은 일들과 멀리서 밀려오는 피 냄새, 갑자기 눈을 감으라는 말이 혼란스러워서 멍하니 당신을 바라봤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데. 이 생각 말고는 그 명석한 머리가 굴러가질 않았다. 결국 그 말대로 눈을 감고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상황에 대한 의구와 호기심이 빗발치지만 단순한 생각으로 성급하게 굴었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겠죠.
 
이렇게나 이상한 소리들이 신경을 어지럽히는데요.
 
아니... 어쩌면 당신은 이성적인 판단을 잠시 미루어두고 자신의 애정의 근간이 되는 현채이 자체를 믿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떠한 생각으로든 당신이 그의 요구대로 눈을 감으면,
 
가만히 침묵을 유지하던 채이는 작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받쳤던 손을 풀어, 부드럽게 당신의 손을 감싸잡습니다.
 
현채이:도착하면 다 왔다고 말할게.
 
여상한 어조가 귓가를 간지럽힙니다.
 
알 수 없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소음들도 채이에게 집중하고 있자면 어느 정도 사그라듭니다.
 
장면전환
 
현채이:다 왔어. (시현과 얽힌 손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손을 놓아준다)
 
채이가 이끄는 대로 별관 안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소음들이 멎기 시작하더니, 몇 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고요함만이 감돕니다.
 
현채이:이제 눈 떠도 돼.
 
라고 말하며 그가 줄곧 잡고 있던 당신의 손을 놓습니다.
 
유시현:...(천천히 눈을 뜨고는 잡았던 손을 놓았다.) 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도서실로 들어갈 수 있는 미닫이문입니다.
 
채이가 도서실의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섭니다.
 
잠시 당신을 돌아보고 어름어름 시선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살피면 이내 홀연히 책장들의 사이로 들어갑니다.
 
유시현 듣기 판정
 
유시현: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누군가가 당신의 귀에 은밀하게 속삭입니다.
 
유시현:..?(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봐도 허공 뿐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이곳엔 당신과 채이뿐인걸요.
 
별관의 내부와 도서실 안은 본관처럼 사방이 시리도록 하얗습니다.
 
유시현:잘못...들었나..
 
햇빛이 들이치나 뜨겁지 않고, 바람만이 금방이라도 마비될 것 같은 오감을 자극합니다.
 
훌쩍 열린 창 바깥으로 보이는 풍광은 언제 괴이하게 변했냐는 양 원래대로 되돌아왔습니다.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몇 점의 구름들, 흔들리는 나무와 져가는 화단의 봄꽃, 피어나는 여름꽃들.
 
잠잠히 부드러운 날입니다.
 
채이는 책을 읽고 있는지, 사이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옵니다.
 
유시현:(도서관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둘러본다)
 
도서실 안에는 책장이 즐비하고, 한 켠에는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푹신한 소파테이블이 있습니다.
 
활짝 열린 두어 개의 창문에서 들이친 햇살이 도서실 불을 켜지 않았어도 그 안을 환하게 밝힙니다.
 
유시현:(학교 생활하면서 자주 오던 곳이라 익숙한 곳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책장들을 훑어본다)
 
문학 전집, 자기계발서, 외국어 원서, 외부 신청 도서...
 
한켠에는 만화책까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쭉 훑어보기라도 해 볼까요, 채이는 생명과학 계열의 책장에서 한 권 책을 뽑아들어 읽고 있습니다.
 
나른한 눈이네요.
 
유시현:(항상 읽던 곳과는 다른.. 문학계열의 책장으로 다가가 책들이 줄지어선 칸들을 둘러보았다)
 
유시현 자료조사 판정
 
유시현: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평범한 내용의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책들 사이, 눈길을 이끄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부활록].
 
유시현:이런 책도 있었나..?(책장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이런 내용은 본 적이 없었는데...
(내용을 되짚어보며 책을 다시 꽂아두고는 도서관 한켠에 있는 소파로 걸음을 돌렸다)
 
푹신한 재질의 일인용 소파입니다.
 
소파 시트에는 온기와 앉았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소파의 높이가 유달리 낮아 여기 앉으면 밖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까 채이가 급작스레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는 여기 앉았기 때문일까요.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팔걸이에 남은 부자연스러운 자국을 발견합니다.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의 희미한 자국이지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교실에서 본 것과 같은 종류의 액체.
 
유시현:...?
 
혈액입니다.
 
누군가 급하게 닦아낸 듯 한쪽 방향으로만 자국이 흐립니다.
 
유시현:피...?
(급하게 닦아낸 흔적을 보고는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로 눈을 돌렸다.) 설마...
 
채이는 여전히 차분한 기세로 책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당신의 시선을 느낀 건지 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현채이:?.. 왜?
 
유시현:... 선배.. 여기 앉았었어요?
 
현채이:(시현이 팔걸이에 묻은 피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건지 눈을 깜빡이더니) 응.
 
유시현:... ... (그 짧은 대답에 보건실에서 봤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당신의 앞으로 걸어가선 망설임 없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현채이:...? 유시현..? 너 뭐 해?
 
손바닥에 닿는 체온은 교실에서 있을 때보다 훨씬 뜨겁습니다만...
 
당신과 비슷한 온도입니다.
 
유시현:... (그리 심하지 않은 체온이 손으로 전해지자 그제서야 손을 내리고는) ...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채이:(시현을 빤히 보다가 이내 눈길을 돌린다) ... 근데 좀, 너무 가깝지 않냐. (미미하게 오른 열 때문인지, 더운 여름 한낮의 햇빛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가까워진 시현의 거리 때문인지... 양 뺨이 홧홧하게 물들었다)
 
유시현:... 아...(순간의 생각으로 저지른 행동이라 평소보다 가까이 붙었다는걸 당신이 말한 후에야 인지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갑자기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현채이:.. 괜찮아. 그렇게 놀라지도 않았으니까. (큼,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물러나는 만큼 멀어지는 온기에 시현을 힐끔 보더니)
 
유시현:(주변이 조용한 만큼 어색해진 분위기와 남아있는 감정들 탓에 자칫하면 심장 소리가 들릴까 조마조마했다. 결국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채이:(주체할 수 없이 커지는 심장 소리와 방금 시현의 행동으로 인해 집중이 되지 않아 결국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시선은 시현과 엇갈린 채 창밖으로 향한다) 매번 시끄럽기만 했는데, 조용하니까 적응 안 되지 않아? (기억 속, 활기차고 시끄러웠던 학교의 정경을 떠올리며)
 
유시현:좀.. 이상하긴 하네요. 어색하고.. (아무도 없는 도서관은 둘의 대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질 않아서 더욱 감정을 긴장되게 만들었다. 어차피 숨겨야 할 감정이지만.)
 
현채이:(시현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짧게 웃는다) 다시 돌아가면 많이 생각날 거야. 지금이. (중의적 의미가 다분한 말이었다. 시끄러운 곳으로 돌아가면 조용한 분위기가 당연히 생각날 테고, 시현이라면 가끔 자신을 생각해줄 것 또한 당연했으니까. 시현의 마음을 모르지만,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자만이었다. 친한 선배니까 아무렇지 않게 기억해줄 것이라면서)
 
유시현:... 그럴지도 모르죠... (아마도 예견하건대 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현실과는 다른 조용한 학교라서? 아니, 당신과 단 둘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겠지. 아마 당신은 그저 좋은 후배 그 적정선이었겠지만. 이제와서 그 의미를 더해봐야 소용없잖아) 조금은 후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다른 곳에 두었던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현채이:... 후회할 게 있었나, 네가. (시선을 창가에서 거두고 시현에게로 옮겼다. 고양이 같은 눈매와 달리 시현을 향하는 눈빛엔 걱정이 담겨 있었다. 항상 속내를 죄 털어놓지 않는 시현이었으니까. 말 못 한 고민이 있을 거라 생각한 듯 싶었다)
 
유시현:있어요. 이미 털어놓기에는 늦었지만요. (당신이 죽었으니까. 지금 눈 앞에 있다고 해서 죽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난 이 감정을 앞으로도 계속 숨겨두고 당신에게 드러낼 일은 없을거야)
 
현채이:그러면 어쩔 수 없네. (명확하게 선을 그어버리는 시현의 태도에 한발 뒤로 물러나는 현채이다. 의외로 고집은 또 만만치 않아서 회유해도 들어주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들고 있던 책을 힐끔, 보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현이나 자신이나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서)
 
이윽고 채이는 책장 사이로 몸을 숨깁니다.
 
유시현:...(책장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흘끗 보다가 마음에 걸렸던 소파로 눈을 돌리니 옆에 있는 테이블이 보였다)
 
소파 바로 옆에 놓인 원형 테이블입니다.
 
레이스가 장식되어 있는 식탁보가 곱게 덮여 있고, 위에는 책을 읽으며 곁들일 간단한 간식거리들꽃병이 놓여있습니다.
 
유시현:(테이블 위에 올려진 꽃병을 들여다 본다)
 
평범한 꽃병입니다.
 
안에는 생화 대신 조악한 국화 모형이 꽂혀 있습니다.
 
줄기 부분에는 정성스레 코팅한 책갈피가 달랑거리고 있습니다.
 
문구가 쓰여 있는 것 같은데, 도서실이니만큼 도서에 나온 실제 구절을 차용하여 만든 것 같네요.
 
유시현:(책갈피를 잡고 글귀를 읽어본다)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1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유시현:자신의 행복과 불행...(글귀 중 일부를 중얼거리며 당신이 사라진 책장사이를 돌아봤다.) 행복이자 불행이지..
 
책장 사이에 있는 채이를 보면 아까와는 다른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제 속도 모르고 아주 태연하네요.
 
유시현:... 아마 계속 모르는게 좋을거야.. 이제와서 뭘 어쩌겠어.. (이미 이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죽어서 알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 차라리 모르고 편하게 떠나가는게 당신에게 더 좋은 길이겠지. 손을 놓듯이 책갈피를 손에서 놓았다)
(씁쓸하고 먹먹하기만 한 감정을 잠재우려 옆에 있던 간식거리를 하나 집어들었다)
 
당신은 낱개로 포장된 비스킷을 하나 집어듭니다.
 
유시현:(무심하게 포장을 뜯어 입에 넣었다)
 
달달한 맛이 혀끝에서부터 천천히 퍼집니다.
 
▶: 이성을 1D2만큼 회복합니다.
 
유시현:
Rolling 1D2
굴림: 1
 
이성 +1
 
유시현:(입안에 든 비스킷을 천천히 우물거리며 소파 옆에 있는 창문을 바라본다)
 
큰 창문들은 벽 한 면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누가 저렇게 열어 둔 건지, 본관에서처럼 하나같이 창문들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당신이 서 있는 창가 위에는 시계가 시간을 가리키고 있고, 열린 창문 밖으로는 찬란한 여름날의 풍경이 보입니다.
 
유시현:(창가 위에 걸린 시계를 보며) 여기도 시간이 흘러가긴 하는건가..
 
시계는 오후 12시 30분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루 중 해가 남중하는 시각이죠.
 
도서실 안이 더욱 환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보통 이 때쯤이면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탓에 금세 더워져 옷을 갈아입거나 세수를 하고, 때때로는 손선풍기를 쐬곤 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고장난 에어컨에 불평을 뱉기도 했고요.
 
이 공간에서는 불필요한 찝찝함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유시현:그만큼 이상하지. (인기척이 전혀 없는 하얀 공간은 보고만 있어도 위화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당신이 있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건 없었어. 그런 생각에 잠겨 창 밖에 풍경을 바라본다)
 
몸의 떨림이 잦아든 지는 한참이지만 아직까지 빨라진 심박수는 안정화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꿈 속의 꿈이었던 걸까요?
 
훼손된 공간, 타락한 생물들.
 
그의 손을 잡고 이곳으로 오자, 금방이라도 당신을 잡아먹을 듯 파멸적이던 것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눈을 감으라던 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돕니다.
 
갑자기 원상태를 찾은 밖이 이질적인 것은 고사하고, 이 새하얀 곳들과 저 너머가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쉽게 떨칠 수 없습니다.
 
......채이는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다 말고 당신의 바로 옆 창문 앞 벽에 느슨히 팔짱을 끼고 몸을 기대어 바깥 풍경을 응망하고 있습니다.
 
테이블에는 읽다 만 책이 엎어져 있네요.
 
교실에서는 채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러 왔다더니, 얼마간의 시간이 남지 않은 사람치고는 꽤 여유로운 태도입니다.
 
당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나른히 눈을 뜨고 농후하게 시선을 얽습니다.
 
가늘게 뜨인 채이의 눈동자에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열기가 치고 오릅니다.
 
유달리 남들보다 길게 뻗어있어 중간에 톡, 튀어나온 마디가 유난히 강조되어 보이는 손가락이 창틀을 더듬어 내려갑니다.
 
여전히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는 당신의 국화가 들어있습니다.
 
생과 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듯 생기를 머금고 있는,
 
어쩌면 채이에게 직접적으로 주기에는 부끄러운 당신의 총체적인 마음의 집합.
 
현채이:저거, 어떤 꽃인지 알아?
 
유시현:?...
 
그의 질문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창 밖의 화단에 자그맣게 물결을 일으키는 꽃의 무리가 보입니다.
 
하얀색, 보라색, 분홍색 등 색깔은 다양하지만 촘촘한 잎들이 퍼진 모양새가 동일한 것이 저것들이 같은 종류의 꽃임을 알려줍니다.
 
유시현 지능 어려움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언젠가 책에서 저런 생김새를 지닌 꽃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레국화였던가요.
 
유시현:(화단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수레국화... 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현채이:.. 그렇구나. (힐끔, 널 보더니 이윽고 눈을 감는다) 너라면 알 것 같았어.
 
당신이 어떠한 말을 하고 어떠한 태도를 취하든, 채이는 얌전히 눈을 감더니 불어오는 바람을 맞습니다.
 
나부끼는 백색의 반투명한 커튼 뒤로 채이의 모습이 비칩니다.
 
한없이 평온한 순간인데, 어째선지 기분은 역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커튼이 그의 몸을 가릴 때마다 채이가 영영 닿지 않을 곳으로 떠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부아가 치미는 것 같다가도 차갑게 식고, 그러다가도 싱숭생숭한 것이......
 
수차례 정면으로 들이치던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한쪽으로 쏠리자, 애매하게 공기 중에 감돌던 혈향이 일순 강하게 풍깁니다.
 
──아.
 
유시현:?...
 
그의 목에 가로로 긴 자상이 나 있습니다.
 
현채이:언제 우연히 들은 적이 있는데, 수레국화의 꽃말은 행복이래.
 
여상스런 어조입니다.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되는 길이의 상처는 그 깊이가 옅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주위 살갗은 새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셔츠 칼라 안쪽에는 드문드문 마르지도 않은 붉은 피가 점철되어 있습니다.
 
창틀을 내리 더듬었던 손이 밑으로 힘없이 추락합니다.
 
희미한 웃음이 그의 얼굴에 떠오릅니다.
 
유시현:...(자상을 본 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저게 언제부터 있었지?)
 
꼴사납게 나부끼는 커튼 사이로 그가 휩쓸려 도망갈 것 같습니다.
 
줄곧 감았던 눈이 뜨이면, 선연히 이 오른 눈빛으로.
 
현채이:... 시현아.
 
그가 당신을 호명합니다.
 
현채이:내가 사라지면 네가 행복할까?
 
유시현:... (한걸음씩 당신에게 다가가며) 그걸 왜 물어보는 거에요..
 
현채이:.. 그냥. 궁금해서. (얼핏 미소지으며)
 
유시현:... ... 제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아요..(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졌다.)
 
현채이:(가까워지는 거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시현에게 고정한 채) 난 모르지. 그러니까 물어본 거야. 네가 어떨지 모르니까.
 
유시현:... 행복하진 않던데요. (당신에게까지 한발자국이 남았을 때 걸음이 멈췄다. 아마 당신은 모를거야.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걸.)
 
현채이:.. 그랬구나. (시선을 비스듬히 바닥으로 내리더니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작게 기침한다) ... 미안해. (우연한 사고였음에도 왠지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 것만 같아 날카로운 기침 사이로 짧은 어절을 내뱉었다)
 
유시현:... 선배가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저 혼자서 멋대로 그런거니까. (멋대로 좋아하고 실망하고 후회하고 지금은 걱정이나 하고 있지. 결국 다시 당신에게 가까워져 목에 난 자상을 보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현채이:멋대로 그러다니 뭘? (시현의 말에 고양이처럼 날카로웠던 눈매가 동그래진다. 멋대로 뭘 그랬다는 거야?)
 
손에 닿은 채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습니다.
 
유시현:선배.. 열이..(방금보다 더욱 뜨거워진 온도에 놀라 눈이 슬 커졌다.) 목은 또 왜 그런거에요?
 
현채이:...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다시금 날카롭게 기침하더니) .... (시현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아직은 말 할 생각이 없다는 듯 가로로 굳게 닫힌 입은 열릴 생각을 않는다)
 
대화를 나누던 그가 문득 말을 멈추고 시계를 올려다봅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두 시 삼십분을 막 넘기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남중했던 해가 점차 기울어질 때가 되었는데도 쾌청의 여름 낮은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까보다는 그 대비의 정도가 부드럽지만 명암의 경계는 아직까지 선명하기만 합니다.
 
한참 당신을 바라보던 채이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입을 엽니다.
 
현채이:이제... ...
 
창틀에 기대어 지탱하던 육신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열꽃이 선연히 피어난 목을 짚더니, 곧내 채이가 바닥으로 고꾸라져 쓰러집니다.
 
유시현:선배?!
 
다리를 건너기 전 당신이 언뜻 본 바와 같은 모습으로.
 
콜록, 그가 해수하자 죽 그어진 목덜미의 자상으로부터 새끼 거미 두어 마리가 신체 조직 사이에서부터 상처를 벌리고 기어나옵니다.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
SAN Roll
기준치: 67/33/13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성 변화 없음
 
결점 없는 새하얀 바닥에 목에서 흐른 핏방울과 방울지는 낙루가 떨어져 얼룩을 만듭니다.
 
이 여름은 전혀 뜨겁지 않은데, 그만이 여름의 열기를 전부 빼다박은 것마냥......
 
유시현:이게... 무슨..(기이한 상황에 놀라 입이 벌어진 채 말이 나오질 않았다. 쓰러진 당신을 서둘러 감싸 안았다.) 선배! 어떻게 되고 있는거에요. 분명 무슨 일이 있는거죠??
 
채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팔을 붙잡고 무어라 속삭입니다.
 
수분기 없는 입을 벌리면, 혀까지도 열 탓에 바싹 말라 있는 것이 언뜻 보입니다.
 
유시현 듣기 판정
 
유시현: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현채이:나도, 이렇게 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다 스러져가는 음성이지만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팔을 안간힘으로 잡았던 손이 무력하게 풀리고, 힘없이 떨어진 고개가 당신의 품으로 스러집니다.
 
더 이상 미동하지 않는 채이의 몸이 축 늘어집니다.
 
몸을 뚫고 나온 불결한 벌레들은 꾸준히 바닥을 기어 책장 틈새로 자취를 감춥니다.
 
그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유시현:선배!! (감싸안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일전의 질문이 귓가를 맴돕니다.
 
내가 죽으면, 네가 행복할까?
 
그가 죽으면......
 
...
 
어떻게 해야 하죠?
 
유시현:이미 죽었으면서...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중얼거렸고 그 바람에 피가 새어나왔다. 쓰러진 당신을 안아들고는 두 다리로 뛰어 보건실로 향했다)
 
갑작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사는 인생은 온갖 모순들로 가득합니다.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가 하면,
 
이것들은 절대 옆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오랜 존속을 유지하기도 하죠.
 
유시현, 당신의 삶도 그렇습니다.
 
지각을 예감하고 뛰어왔거나 또는 여유로운 등교를 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일 때, 또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을 때만 비가 올 때.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완벽한 계획이 틀어졌을 때.
 
...그리고 미시적으로 보면 현채이까지도요.
 
그는 당신의 모순을 투영하는 존재 자체입니다.
 
사랑과 애달픔, 그리고 그 언저리에 눅진히 곰팡이 핀 미움의 감정 등......
 
굳이 이렇게 나열하지 않아도 당신만이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겠죠.
 
어느 때 지독히 끔찍했고, 증오스러웠으며, 또 어느 때 그와의 시간이 안락했는지.
 
그가 죽은 장례식장에 '다시 한 번' 섰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런 말을 내뱉기엔 이미 늦었지만, 경건하고 티 없는 일상의 붕괴입니다.
 
맥없이 당신에게 안긴 몸이 뜨겁습니다.
 
이곳의 여름은 전혀 뜨겁지 않은데, 마치, 그만이 당신이 겪었어야 했을 열기마저 다 가져간 것처럼.
 
보건실에 가기 위해 구름다리를 건너는 와중에도 주위 풍경은 멀쩡하기 그지없습니다.
 
푸른 하늘과 꽃, 나무 등... 모든 것이 평온하고 잔잔한 일상 그 자체예요.
 
길고도 짧았던 다리를 건너 1층 복도로 들어선 당신은 망설임 없이 보건실 문을 열어 젖힙니다.
 
유시현:(보건실에서 보았던 당신의 침대로 다가갔지만 베개가 축축히 젖어있었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조심히 눕혀주고는 옆 침대에 있던 베개로 바꿔주었다.)
 
침대에 채이를 눕히면, 옅은 신음을 흘린 그가 한껏 몸을 웅크립니다.
 
단말적인 떨림에 더불어 목의 상처는 아물지 않아 크게 숨을 쉴 적마다 벌어집니다.
 
간혹 죽을 듯 호흡이 잦아들다가도 금세 다시 기침을 하는 등, 불규칙한 상태가 지속됩니다.
 
손을 대 보면, 작게 몸이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기록되었던 병명들을 본 기억이 스칩니다.
 
구토, 발작, 환각, 복통...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증상들에 동반되는 것은 이지 않나요?
 
책이나 매체를 통해 학습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지나친 고열은 여러 타 증상들을 동반한다고......
 
사용하지 않은 체온계가 떠오릅니다.
 
유시현:...(옆 침대에서 체온계를 가져와 당신의 입에 조심히 물렸다)
 
지속해서 올라가는 전자 판넬 속의 수치,
 
숫자가 움직이는 것을 멈추면, 채이의 체온이 무려 40도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의 모습이 다시금 눈에 들어옵니다.
 
식은땀에 젖어 덜덜 떨리는 몸, 바싹 마른 입술. 손끝까지 피가 돌아 붉어진 피부.
 
유시현 지능 판정
 
유시현: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필연적인 위화감을 느낍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니던가요?
 
왜 이렇게 아파하는 걸까요. 채이는.
 
...... 어느새 땀이 스며들어 반투명히 몸을 드문드문 비치는 교복 셔츠의 허리 부근, 찝찔한 체액과 더불어 묻어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쇠 냄새를 풍기므로 '죽음'을 예견케 합니다.
 
유시현:(또 한번 비릿한 냄새가 나자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 선배, 잠시만 실례할게요.. (그리곤 그 냄새의 원인을 찾아 셔츠 자락을 들춰올렸다.)
 
무엇인가 들여다보면, 입니다.
 
적은 양이지만 영속될 기세로 그의 셔츠에 얼룩을 남기고, 땀과 섞여 몸선을 타고 흘러내리다 멎습니다.
 
상처가 제대로 들여다보이지도 않는데 목을 자를 듯 길게 났던 자상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미묘한 혈향의 원천을 이해합니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몸의 곳곳에는 상처가 가득합니다.
 
칼로 베어낸 것마냥 단면이 깔끔한 자국부터, 찢은 것처럼 울퉁불퉁한 상흔까지.
 
예전에 다쳤다 아물었는지 부자연스럽게 흉터가 진 곳들도 보입니다.
 
막 생긴 것 같은 크고 작은 상처들은 채이가 숨을 쉬고 내쉴 때마다 뻐끔거립니다.
 
각각이 살아있는 것처럼요.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
SAN Roll
기준치: 67/33/13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화 없음
 
아마 그가 자주 뒤척이는 이유는 열 때문도 있겠지만, 이 상처들이 거슬리는 탓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쉽사리 깨어날 것 같지 않은데, 간호라도 해 줘야 할까요?
 
유시현:(수많은 상처들을 본 후에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의문들과 죽었음에도 이렇게 아파하는 당신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단서가 잡히는 것이 없었기에 감히 추리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 (단 3초 만에 내린 생각은, 당신의 상태만.. 그것만 보자. 지금 할 수 있는걸 하는거야. 침대에서 나와 보건실에 있을 약품 상자를 찾았다.)
 
약품 상자에는 해열제와 소독약, 연고가 있습니다.
 
약품 상자가 놓인 선반에는 밴드와 거즈가 있고, 그 옆에는 의료용 아이스박스도 있습니다.
 
유시현:(소독약과 연고, 밴드, 거즈를 챙기고 옆에 있는 아이스박스를 열어본다)
 
아이스박스 안에는 해열시트와 얼음, 아이스팩이 들어있습니다.
 
유시현:(해열시트와 아이스팩도 함께 챙겨 침대로 돌아왔다. 침착하게 당신의 이마에 시트를 붙여주고는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냈다. 뻐끔히 벌어져 있는 상처들에 일일히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올려 위에 밴드로 고정하는 손길이 능숙했다.) 하...이 정도면 됐나.. (아이스팩을 팔 사이에 조심히 끼워 열이 조금이나마 빨리 내려가길 바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채이의 숨소리가 한결 일정해지고 가벼워집니다.
 
아까는 잠에 빠져들어도 자는 것 같지 않았는데, 이제야 조금 편해진 것 같네요.
 
그를 돌보느라 무던히 애를 썼으니 당신도 조금 쉬어보도록 할까요.
 
유시현:다행이다.. (열을 재보려 뺨에 손을 올려두었다가 숨이 편해진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열려있는 창문 너머로 하늘은 선명한 푸른색을 띠고 있습니다.
 
쨍하니 내리쬐던 햇빛이 아까보다는 조금 더 약해져 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드리운 그늘은 가히 유혹적이기까지 합니다.
 
나른한 오후입니다.
 
적어도 당신에게는 평화롭기 그지없고요.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안락과 고요.
 
그 어떤 것도 바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당신조차도.
 
채이만이 잔뜩 기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
 
무언가 채이의 침대 옆으로 떨어집니다.
 
유시현:?...
 
탁상 달력입니다.
 
아니, 모양이 그것과 비슷하다 뿐 이것도 전부 새하얀 색이어서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유시현:원래 이런게 있었나? (갸웃거리며 달력을 주워들었다)
 
주위가 온통 하얀색이라 눈치채지 못했나 봅니다.
 
유시현:(새하얀 달력을 하나씩 넘긴다)
 
유시현 자료조사 판정
 
유시현: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달력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가득합니다.
 
구부러진 것 같다가도 선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가 하면, 의미모를 숫자가 적혀 있기도 합니다.
 
장을 넘기다 보면 채이의 동급생인지,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아이들의 이름만 덩그러니 적힌 부분도 있습니다.
 
좀체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온통 당신이 살던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괜히 머리가 아파옵니다.
 
유시현:...(달력을 서랍 위에 올려놓고는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모르겠다... 전부..
 
그 순간,
 
─똑똑,
 
문 밖에서 누가 두드린 건지 모를 노크 소리가 납니다.
 
유시현 듣기 판정
 
유시현:...?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립니다.
 
불투명한 보건실의 창문 너머로 인영이 일렁입니다.
 
잔잔히 불었던 바람이 아까보다 조금 거칠어집니다.
 
나뭇가지가 결을 따라 스칩니다.
 
노크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고 있자면, 머리카락과 셔츠가 앞쪽으로 흔들립니다.
 
똑똑, 다시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제법 분명하게 안쪽까지 들려오는데도, 지금껏 피곤했는지 채이는 깊은 수마에 빠져 있습니다.
 
...
 
문을 열까요?
 
유시현:....(분명히 둘 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도대체 누가... 다시금 혼란스럽게 머리속을 덮쳐오는 오싹함을 겨우 걷어내고 문 앞으로 향했다. )
...누구세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노크 소리만 명료하게 울려 퍼집니다.
 
유시현:... (마른 침을 삼키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경첩이 뒤틀리는 소리가 나며 미닫이문이 열리면, 즉시 정확히 한 사람분의 체중이 당신의 몸에 실립니다.
 
아니, 정확히 한 '사람'분의 체중이 몸에 실립니다.
 
흐드러지는 갈색의 머리카락.
 
소름돋게 똑같은 피부의 촉감이, 움찔거리는 몸의 높낮이가, 호흡하는 기색이, 음병하는 목소리가......
 
당신은 직감합니다.
 
이 사람은 곧 자기 자신이라고.
 
당신이 입은 것과 같은 교복을 입은 '당신'이, 금이 간 양손을 뻗어 억세게 어깨를 거머쥡니다.
 
무언가 둥그런 것이 굴러떨어져 발치에 닿습니다.
 
거멓게 신경이 죽어 얄팍하게 뒤엉킨 안구, 눈동자는 당신의 색입니다.
 
유시현:..?!! 뭐...뭐야..?
 
고개를 치든 그가 다 터진 실핏줄로 붉고 푸른 잔멍으로 물든 남은 눈을 깜빡일 때, 구내에서는 살과 피가 섞여 입밖으로 흐릅니다.
 
엇박을 타듯 어깨가 떨립니다.
 
떨리는 것이 당신의 어깨인지, 아니면 또 다른 '당신'의 어깨인지 변별하기 힘듭니다.
 
알 수 없는 새까만 잔해마냥 뭉친 분비물과 체액이 새하얀 바닥에 떨어지면, 역겨운 냄새가 피어오릅니다.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
SAN Roll
기준치: 67/33/13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당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말을 해도, 고개를 푹 숙인 그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간간이 떨려오는 몸을 붙잡거나 쓸면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 말들을 중얼거립니다.
 
몇 분 동안을 끊지 아니하고 부식되어가는 몸으로 '나'를 붙잡던 '나'는, 작고 분명하게 속삭입니다.
 
유시현 듣기 판정
 
유시현: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피하지 마. 분명......"
 
"너만이... ..."
 
퍼뜩 정신을 차리면 당신의 앞에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시현:...(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자면, 아까와는 사뭇 다른 복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결과 정갈을 나타내던 순백은 사라졌고, 구석진 곳이라면 빠짐없이 곰팡이가 피거나 녹이 슬어 있습니다.
 
창문 밖의 찬란한 풍광에는 꾸물렁거리며 몸통에 입을 달고 무언가를 씹어먹는 모독적인 '것'들이 기어다닙니다.
 
금이 간 천장은 신음하듯 옅게 떨리면서 구정물을 찔끔찔끔 토해냅니다.
 
계단이 있는 곳의 반대편 너머는 복도의 끝 대신 형용할 수 없는 □색의 드넓은 공간이 자리합니다.
 
아... 푸른 하늘이 내려앉을 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채이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건가요?
 
유시현:...(힘이 풀려 덜덜 떨리는 다리를 힘겹게 일어나 당신이 누워있을 침대로 몸을 돌렸다)
 
현채이:
(To GM)rolling 1d100
 
(
27
 
)
 
 
=
27
 
당신이 채이가 누워 잠들었던 침대로 돌아오면, 채이는 언제부터 의식을 회복했는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있습니다.
 
현채이:.. 나 옷 좀 갈아입고 올게. 땀 때문에 너무 젖었네.
 
한껏 수척해진 얼굴로 채이가 말합니다.
 
버석해진 손가락으로 이불을 걷어내고 희미하게 웃습니다.
 
유시현:(깨어난 당신을 보곤 그래도 안심한 기색이 드러났다.) 언제 일어나신거에요..
 
현채이:조금 전에. ..아까, 갑자기 놀라게 해서 미안해.
 
유시현:괜찮아요.. (다시 손을 뻗어 이마에 열을 재보며) 깨어나셨으니까 됐어요.
 
현채이:(눈 깜빡이며 시현을 바라보더니) 걱정했나 보네. (옅게 웃고선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시현:...그럼 어떻게 걱정을 안해요. (손을 거두고는 당신을 바라보며)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깬지 얼마 안됐는데..
 
현채이:(걱정하는 이유가 단지 친한 지인이라서일까. 가라앉은 채 시현을 향하던 눈은 느리게 아래로 떨어졌다. 걱정 어린 물음에 천천히 머리를 주억인다) 괜찮아.
 
유시현:... 다녀오세요..
 
신열을 그득히 품은 채이가 단숨에 보건실의 문을 밀어젖힙니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메스꺼운 연기에 수 초를 함묵하고, 그대로 상체만을 움직여 당신을 돌아봅니다.
 
참혹한 광경의 강제적인 관람자가 되었음에도 당황한 기색이라곤 손톱만치도 없습니다.
 
다만 일종의 결여와 체념이 뒤바뀐 표정이 스칩니다.
 
거칠게 둘을 밀어붙이던 바람은 아가리를 닫은 지 오래입니다.
 
조금 머뭇거리듯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다, 채이가 까딱 눈짓합니다.
 
현채이:...간호해줘서 고마워. 금방 다시 올게.
때가 멀지 않았어.
 
문이 소리없이 닫힙니다.
 
당신의 등으로 들이치는 것은 난연한 일광.
 
멀지 않았다고요?
 
저 말 한마디에 뜨겁고 불쾌했던 여름을 상기하는 것은 운명인가요, 왜곡인가요.
 
당신의 여름 곳곳에는 채이가 존재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어떻게든.
 
갑작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사는 인생은 온갖 모순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유시현, 당신의 삶도 그렇습니다.
 
지각을 예감하고 뛰어왔거나, 여유로운 등교를 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일 때, 또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을 때만 비가 올 때.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완벽한 계획이 틀어졌을 때.
 
그리고 미시적으로, 또는 당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통틀어, 당신의 감정을 통틀어 보면 현채이가요.
 
그는 당신의 모순 그 자체입니다.
 
살아있을 적에도, 죽고 난 후에도.
 
그리고 허상의 존재가 된 지금조차.
 
유시현:...(다시 조용해진 보건실에 혼자 남겨져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당신이 누워있던 침대에 털썩 앉았다.) 정말... 하나도 모르겠네...
 
...새파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그것들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소리없이 얼룩이 번집니다.
 
소나기도 여우비도 아닌 것이 후두둑 울음을 우는데, 아직도 날이 화창합니다.
 
유시현 듣기 판정
 
유시현: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동시에, 위층에서 정각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가 울립니다.
 
기묘하게 멜로디가 반복되고 끊기는 것이 귀에 거슬립니다.
 
보건실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창문의 창틀 사이로 빠르게 어둠이 기어옵니다.
 
보건실 바깥의 일이었던 끔찍한 풍광이 순식간에 내부로 침입합니다.
 
검은색의 덩어리가 천장 틈새에서 조각나 떨어지고, 점액질 덩어리의 내부에서는 붉은 표피 조직의 단면이 꿈틀거립니다.
 
어디선가 비명이 들린 것도 같고, 갑자기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뚝 끊기기도 합니다.
 
타기 섞인 속삭임이 분명히 전합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무질서하고 무자비하게 보건실의 구석이 무너집니다.
 
학교가 크게 흔들립니다.
 
유시현:..!!
 
유시현 민첩 판정
 
유시현:
민첩
기준치: 60/30/12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잠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던 사이 당신의 발밑에 있던 바닥이 큰 소리를 내며 꺼집니다.
 
몸이 중심을 잃는 와중, 창문 바깥에 머무르던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비계 같은 몸을 보건실의 안으로 내던집니다.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급히 몸을 움직인 탓에 보건실의 문에 등을 세게 부딪힙니다.
 
체력 -1
 
유시현:큭..!
 
이 층 전체가 내려앉고 있는 모양입니다
 
왜?
 
원천에 대한 의구를 가질 새는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여기를 벗어나야 해요.
 
유시현:하... 정말이지...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이었기에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아 짜증이 났다. 일순간 신경질적인 소리를 질렀던 것 같기도 해. 그냥 이대로...끝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가면서도 그저 당신이 생각나서..겨우 몸을 일으키며 보건실의 문을 열었다.) 짜증나네... 전부...
 
문에 가까이 서니 종소리가 한층 가깝게 들립니다.
 
위치, 갈피를 잡기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정확해요.
 
채이의 교실입니다.
 
방대한 검은색의 공간이 복도를 계단의 반대편에서부터 좀먹어갑니다.
 
이명이 길게 이어집니다.
 
채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하지만 그를 찾기에 당신은 모르는 것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바닥을 조금씩밖에 적시지 못하는 건조한 비만큼이나.
 
때가 멀지 않았다고 했으니, 알기 위해서라도 도피해야죠.
 
유시현:(무거운 다리를 오기로 이끌고 계단을 올라 4층에 있는 당신의 교실로 향했다.)
 
교실이 있는 층에 발을 디디면, 맥동하는 소음이나 음습한 기운들은 아직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1층보다는 안전하겠군요.
 
옷을 갈아입겠다더니 어디로 간 건지, 이 층에도 채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종소리는 다른 곳에서는 나지 않고, 채이의 교실이 있는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시현:하...(힘겹게 계단을 올라온 탓게 조금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 안으로 당신이 발을 딛으면, 언제 시끄럽게 나왔냐는 듯 스피커에서 소리가 뚝 끊기고 평온한 빗소리만이 감돕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지만, 무인의 교실은 수 년을 학교에서 보낸 당신에게도 퍽 새삼스럽습니다.
 
활기를 감한 날, 조용한 오후에는 칠판을 가득 메운 필기도,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전부 푸른 하늘과 당신의 호흡에 먹혔습니다.
 
텅 빈 칠판의 위로는 시계가 놓여 있고, 칠판 옆의 게시판에는 학교 소식등을 붙여놓는 종이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칠판의 정가운데 앞에는 교탁이 있고 교실의 뒷편에는 스피커사물함이 있습니다.
 
채이가 어딘가의 책상에 올려두었던 영정사진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
 
유시현:(멍한 눈으로 교실을 둘러보던 시선은 자연스레 시계에서 멈춰섰다)
 
칠판 위에 비스듬히 얹은 원형의 시계입니다.
 
막 오후 네 시를 넘긴 시각이네요.
 
어째선지 시간이 더디게 가는 기분입니다.
 
다행일까요?
 
채이와 조금 더 오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요.
 
물론 체감일 뿐이지 실제로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잖아요.
 
기분이라는 게... 원치 않아도 들어오고 물러가죠.
 
유시현:... ... (교실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와 교탁에 기대듯이 앉아선 칠판 옆에 게시판을 올려다본다)
 
한참 철이 지났는데도 붙어있는 학교 소식지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날짜를 단 공지사항까지 다양합니다.
 
정리만 정갈히 되었다 뿐 자세히 보면 뒤죽박죽이네요.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학교, 교실, 학생 등... 일상의 언어들이 적힌 소식들 중 눈에 띄는 종이를 한 장 발견합니다.
 
종이는 꽤나 낡아있네요.
 
잉크 펜으로 쓰인 글자는 흐리지만 알아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종이에는 [기억해야 할 것]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 보르의 성호 주문을 습득합니다.
 
유시현:(게시판에서 거둬진 시선은 힘없이 허공을 맴돌다 자신이 기대어있는 교탁으로 향했다.)
 
많은 책상과 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묻은 손때들이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쳤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위에는 덩그러니 출석부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유시현:(너무 지쳐있던 탓에 반응 속도가 느려져 가만히 출석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걸 왜 보고 있었지라는 생각을 한 후에야 겨우 출석부의 표지를 넘겼다)
 
학생들의 출석과 결석, 학사일정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책갈피처럼 사용되는 끈에는 교실의 열쇠도 달렸군요.
 
내지를 보던 중, 당신은 학급 아이들 전부의 이름과 사진, 출석번호를 한 군데 정리해둔 마지막 장에서 멈춥니다.
 
종이가 몇 초 전 새롭게 프린트된 것처럼 뜨겁습니다.
 
그것 외에는 글쎄요.
 
가볍게 훑어보기에는 출석부가 이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모양만 이상했을 뿐 출석부라기엔 이질감이 들었으니까, 또는 언제 기이한 것들에 학교가 뒤덮일지 모르는데 자신은 한가하게 이걸 들여다보고만 있으니까,
 
또는......
 
유시현 자료조사 판정
 
유시현: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이들 전부, 라고 하기에는 몇 명이 빠져있으니까요.
 
그러니까…
 
항상 채이와 같이 다녀서 낯이 익던 선배 무리나, 같은 동아리 선배, 복도에서 스쳤던 사이의 누군가들이요.
 
분명 뒷장에 끼워져 있는 예전 종이에는 학급 인원 전원?이 있는데 말이에요.
 
어딘가 이상합니다.
 
이러면 꼭......
 
유시현:왜... 빠져있지..? (불쑥 든 의문에 흐릿해지던 머리속을 채웠다)
 
유시현 관찰 판정
 
유시현: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래로 내몰린 빈칸 몇 개에 걸쳐 얇은 심의 샤프로 내려적었을 정갈한 손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채이의 필체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야 모를 리가 없죠, 눅진한 여름을 다 담아놓은 나의 애정과 슬픔.
 
뒷부분은 흐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유시현:(출석부를 뒤지며 당신의 사진이나 이름을 찾았다)
 
그 어디에서도 채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
SAN Roll
기준치: 66/33/13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유시현:분명 뭔가 잘못된거야.. 무슨 일이 있던거야.. (자신의 감정과 기억이 잘못되었을리는 없으니 이 일의 원인을 찾아야겠다. 교실을 다시금 둘러보며 사물함으로 다가갔다)
 
교탁과 마찬가지로 손때나 흠집 등이 자잘히 묻은 사물함입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것부터 학급 공동 사물함, 주인이 없는 빈 칸까지 다양하지만, 이제 확인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채이의 것이겠죠.
 
유시현:(당신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을 찾아 열어본다)
 
원래 넣어져 있어야 할 교과서나 물품들은 없고 아주 기묘한 생김새의 탁한 유리구슬만이 놓인 것을 발견합니다.
 
오래 된 것처럼 보이지만, 금가거나 깨진 곳은 없으며 탁빛 사이로도 종종 광이 납니다.
 
당신은 처음 보는 물건이네요.
 
아니, 시중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이라고 하는 것이 알맞겠습니다.
 
유시현:(구슬을 조심히 꺼내들고는) 왜 이런게..
 
구슬을 꺼내들면 사물함의 안쪽에 붙은 쪽지가 눈에 띕니다.
 
유시현:...?(사물함 안에 들어있는 쪽지를 꺼내든다)
 
뿐만 아니라 하늘색의 얇은 수첩 한 권이 덜렁 안에 놓여 있습니다.
 
겉면에는 채이의 이름이 적혀 있네요.
 
수첩을 열어볼 수 없게 할 요량으로 굳게 닫혔어야 할 자물쇠의 옆에는 보란 듯이 열쇠가 놓여 있습니다.
 
유시현:(구슬을 챙겨두고 수첩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선배 죄송합니다.. 잠깐만이에요. (수첩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
 
잠금 장치를 풀고 내용을 읽으면, 날짜를 특정짓지 않은 메모들이 수첩을 드문드문 채우고 있습니다.
 
수첩:아무도 열병의 이유를 모른다.
나가서 체온계를 사 올 여유가 없어서 몇 개를 쌓아두기로 했다. 요즘에는 무언가가 몸 안을 기어다니는 것 같다. 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의 얼굴과 몸이 전부 벌레로 뒤덮여 있어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왜일까? 주위 사람들은 이곳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선생님도, 고모도, 친구도. 그렇지만 여기는 어딘가 잘못되었다. 무엇가 잘못되었어. 나도.
불운이 중첩되면 괴로움이 배가 된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살아가면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죽음이 이렇게 가까울 줄 알았더라면......
▒▒▒는 불가항력의 존재라고 했다. 그가 전해주었다. 나는 분명히 죽었다. 그리고 세계도. 직접 보았으니 부정할 수 없다.
그 애가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이유를 전해들었다. 가장 직결적인 감정의 대상. 더불어 나의 여름. 그 애도 알고 있을까? 본래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들 하지만.
 
수첩:곧 시현이가 온다. 이걸 적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만들어진 공간은 불완전해서,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전해들었다.
직면하는 과정은 충분했다. 그러나 죽음을 두 번 겪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현채이:.. 시현아,
 
드르륵, 교실의 문이 열립니다.
 
아까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왔다면, 이번에는 당신을 찾기 위해 온 거겠죠.
 
어디로부터?
 
그러나 그것은 이제 와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한껏 허기진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찬찬히 숨을 고릅니다.
 
현채이:여기 있었구나. 지금까지 찾고 있었어.
 
유시현:...(다 읽은 수첩을 덮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숨과 목소리가 반반씩 섞인 음성이 공기 중에 웃돕니다.
 
현채이:보여줄 게 있어. .. 따라올래?
 
군데군데 더러워지고 피가 묻었던 상의는 갈아입었는지 멀끔해졌습니다.
 
창밖으로 쏟아지던 빗줄기가 조금씩 잦아듭니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한 상대로는 그와 자신이면 충분할지 모릅니다.
 
이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서 사계를 겪을 수 있겠죠.
 
그러나 소소하게 만족하고 눈을 감기에, 우리는...
 
유시현:... 선배... 보여주려는 그게 절 여기로 부른 이유에요?
 
현채이:연관이 없진 않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유시현:그럼 뭐 때문인데요. 인사하려고 부른거.. 아니잖아요.
 
현채이:... 이따 다 설명할게. 지금은.., 일단 같이 가자.
 
유시현:...(수첩을 사물함에 넣어두고는 당신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말없이 당신과 교실을 나섭니다.
 
퇴락한 주위에는 넌덜머리가 난 눈빛입니다.
 
여러 번 '그것'들을 마주했음에도 아직까지 당신은 영 적응하기 어려운데 말이에요.
 
키틴질의 벌레들이 나타나는 빈도는 이제 상시처럼 되었습니다.
 
난잡한 곬을 만들어 바닥을 기는 벌레들은 미물에 불과한데도 더듬이를 치들어 당신이 가는 길에 뻗습니다.
 
채이가 깔끔히 갈아입은 흰색의 셔츠가 어째선지 수의처럼 보입니다.
 
어째선지...
 
검은 하의와 대비되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그는 전혀 차갑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덩이같이 뜨겁기만 하지.
 
길게 뻗은 복도를 잰걸음으로 걸어, 그가 계단의 난간에 손을 얹고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현채이:얼마 안 남았어.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한 칸을 내려가고, 또 반 칸을 내려서고.
 
복도를 걸을 때보다는 느려졌다만 여전히 서두른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둘은 멈추지 않고 밑으로 내려갑니다.
 
학교에 이렇게 계단이 많았던가요?
 
어쩐지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깊이 내려설수록 띄엄띄엄 지저귀던 새소리가 들끓어 사라지면 남는 것은 정적입니다.
 
그의 숨이 기침을 동반하여 잘게 떨리고, 시선이 마주칩니다.
 
채이가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지는 한참입니다.
 
다문 입술에서는 어떤 말도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유시현:...어디로 가는거예요..
 
현채이:... 지하실.
 
유시현:지하실이요..?
 
현채이:..응, (짧은 대답 뒤로 거친 기침 소리가 따라붙는다)
 
유시현:... 아직도 많이 아파요?
 
현채이:(시현의 물음에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응. 아마 나을 일은 없을 거니까.
 
유시현:무슨 뜻이에요..?
 
현채이:수첩.. 봐서 알겠지만, 아픈지는 오래됐어. 원인도 알 수 없고. (난간을 짚은 손에 살짝 힘을 주더니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힘이 느슨해진다) ...그래서 추측만 할 뿐이야. 나을 일은 없겠구나, 하고.
 
유시현:죽...었는데도요..?(그 사실을 물어보는 것조차 힘겨워 겨우 입을 떼었다. 도대체 뭐 때문이었을까. 당신이 이렇게나 아프게 된 이유는..)
 
현채이:... 죽었지, 맞아. (어쩐지 입 밖으로 내는 문장이 과거형이었다. 곧 시현에게 설명해야 할 때지만, 그게 당장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채이는 질문의 깊이가 깊어지자 입을 다물었다)
 
유시현:... ...(아무리 의문이 가득해도 함부로 물어볼수가 없었기에 둘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청춘의 일광도 깊은 땅 속까지를 헤집어 내려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검은 안개처럼 주변에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하고, 시야가 다가오는 암흑에 적응할 때 쯤, 당신과 채이는 문 앞에 다다릅니다.
 
불온의 검은빛을 점철한 철제와 다 녹슬어 비린내를 풍기는 손잡이.
 
벽에는 스멀스멀 당신이 목도했던 벌레들이 서로 엉겨붙어 기어다닙니다.
 
조금 전의 대담을 마지막으로 묵묵히 계단을 내려가던 채이가 문에 손을 올립니다.
 
현채이:준비됐어?
 
그가 묻습니다.
 
당신은 압니다.
 
이건 형식적인 물음에 불과합니다.
 
이미 그의 손은 손잡이를 천천히 그러쥐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무엇과 누구에 대해? 어떤 진실에 대해?
 
불공평한 평온입니다.
 
일순 흐릿해졌던 시야가 번쩍입니다.
 
유시현, 그와 지내왔던 나날을 상기하세요.
 
당신은 그 어떤 것도 겪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유시현:... ...(모든 것이 의문으로 가득하고 풀리는게 없었다면 저 너머에 답이 있는 거겠지. 당신에 관한 것도.. 그렇다면 난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당신의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채이:.. 걱정하지 마.
 
여전히 손잡이를 잡은 채로 채이가 몸을 돌립니다.
 
둥그런 뺨을 기준으로 반측면에 그림자가 집니다.
 
현채이:너만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들었으니까.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선,
 
몸을 수그립니다.
 
수그린 채이의 몸 너머에는 혐오스러운 곤충류와 갑각류가 우글거립니다.
 
검은 벽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은 어떤 거대한 생물의 둥지입니다.
 
그의 등을 뚫고 나온 것이 덩달아 피를 터뜨립니다.
 
말끔히 갈아입었던 흰색의 셔츠가 검붉게 변합니다.
 
뒤통수의 머리카락 사이로는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뻐끔거립니다.
 
삐져나온 다리에는 관절 수십 개가 달려 있습니다.
 
혈관에 서리는 것은 분명한 공포감.
 
유시현 이성 판정
 
유시현: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이성 -1d5
 
유시현:
Rolling 1D5
굴림: 1
 
이성 -1
 
사람의 팔다리가 사라지고 둥그런 몸통이 남습니다.
 
신경 다발을 아무렇게나 휘젓던 여덟 개의 다리로 채이가 섭니다.
 
아니,
 
아닙니다.
 
'무언가'가......
 
???: 곧 마지막이야.
 
그리고 새하얗게 공간이 부서집니다.
 
장면전환
 
사락,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이마를 스칩니다.
 
등시 암막이 내리앉았던 정신이 복귀됩니다.
 
흐린 시선이 초점을 잡기도 전에 청청한 여름의 하늘이 들어찹니다.
 
비가 완전히 멈춘 모양이죠.
 
잔잔하게 바람이 불어오지만 머리카락을 온전히 흩뜨릴 정도는 아닙니다.
 
... 누군가의 손길이 다시 닿아오고, 헝클어졌던 머리칼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기댄 곳이 푹신합니다.
 
뺨에 서느런 옷자락이 닿고, 가까운 곳에서 숨소리가 들립니다.
 
현채이:일어났어?
 
유시현:... ...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올리면, 채이입니다.
 
그가 자신의 다리에 당신을 눕힌 모양이죠.
 
머리에 드문드문 닿는 손길이 따뜻합니다.
 
탁 트인 공간과 없는 천장.
 
당신은 이곳이 옥상임을 압니다.
 
바로 아래까지 끈적이고 새까만 것들이 학교를 좀먹었습니다.
 
멀쩡히 남아있는 공간은 옥상뿐입니다.
 
그가 자신의 교복 주머니에 들어있던 국화를 당신의 손에 쥐여줍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국화는 싱그럽기만 합니다.
 
현채이:네가 줬던 거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는데, 막상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부드럽게 내려다보는 눈길이 맞닿습니다.
 
다시 한 번 그가 당신의 머리칼을 건드립니다.
 
한 올 한 올 정리해주듯.
 
현채이:전부 설명해 줄게. 이제 그럴 수 있으니까.
 
흐르는 언사는 초연한 어조입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초연했지만요.
 
지금은 더욱이요.
 
현채이:묻고 싶은 게 많을 거야.
 
이번만큼은 그가 중얼이지 않습니다.
 
때가 머지않았다고 했었죠,
 
실감합니다.
 
지금이 그 '때'라고.
 
유시현:... 그러니까...(한손을 올려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방금 자신은 무엇을 본거지..)
 
현채이:... (여즉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듯한 시현을 내려보다가) 네가 아까 본 건 이 세계를 멸망시킨 존재야. 나는 그 괴물을 죽기 전에 봤었어.
 
유시현:멸망...진짜로 세상이 끝났다고요...
 
현채이:.. 끝났지. 정확히 말하면 멸망하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고개를 들어 청명하게 맑은 하늘을 눈에 담는다) 이건 단순한 추측이지만, 아마 그 괴물이 아니었어도 나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뜨고) 우리가 있던 곳마다 나왔던 벌레, 기억하지?
 
유시현:...(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디서 나왔는지도 생생하게 보았는걸..)
 
현채이:.. 내 몸에서 나온 거야. (시현이 일전에 본 적이 있다는 걸 모르는 채이로선 한참을 망설이다 사실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마른 입술을 축이고선 말없이 벙긋거리다 문장을 이었다) 전부터 꾸준히 겪어왔던 증상이야. 몸 곳곳에 상처가 있던 것도 그 때문이고.
 
유시현:... 전부터... (왜 자신은 알지 못했을까 가장 가까워지고 싶던 사람이었는데. 처음부터 알아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그 모든 고통들을 혼자 겪어야했을 당신을 향한 감정들에 결국 몸을 일으켜 당신을 등지고 앉았다.) 그래서... 결국 이 공간에 절 부른건 뭐 때문이에요..?
 
현채이:(멀어지는 온기와 몸을 일으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도로 내리며 시현의 등을 바라보았다.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멀어진 것만 같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못다 한 얘기를 하려고 공간을 빌렸다는 건, 눈치챘겠지만 거짓말이었어. 그래도 신적인 존재와의 접촉이 있던 건 사실이야. (차마 손을 뻗을 수도 없어 애꿎은 손가락을 굽혀 주먹을 쥐었다) 그는 이 세계가 허무하게 끝나는 걸 안타까워했어. 그래서 이미 죽은 나를 세계를 되돌릴 수 있는 매개로 삼았고 너를.. 세계를 되돌릴 주체로 선정했어.
 
유시현:...왜요? 왜 하필 저예요..?(여전히 당신을 등진채 물음을 던졌다)
 
현채이:너는 기억 못하지만.. 이미 너는 세계의 멸망을 봤거든.
 
유시현:...가장 직결적인 감정의 대상이라는 건 무슨 말이에요... (수첩에서 본 글귀를 그대로 말하며 되물었다.)
 
현채이:.. 말 그대로야. 네가 내 존재에 대해 가장 직결된 감정을 가진 사람이거든. (힘이 빠진 웃음 소리가 허공을 따라 흩어진다) 시간을 돌려 잠시 되살아났지만 난 결국 필멸할 거야. 이대로 시간이 흘러도 결국 죽게 되겠지. 너는 죽지 않은 채 이곳으로 불려왔으니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시현에게서 눈을 떼어낸다. 죽어서도 버리지 못한 미련이지만 슬슬 버릴 때가 되었으니까)
 
유시현:...(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내가 그런걸 걱정할까. 사실 본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큰 감정이 없었다. 그러면 그런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그렇게 어차피 꼭두각시 같은 인생이라서.. 그럼에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던 이유는 당신 때문이었는데 자신이 죽을까봐 걱정이라니.) 선배... 제가 최근에 가장 두려웠던게 뭔지 아세요..
 
현채이:(작게 터지는 웃음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허공을 응시한다. 시현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정작 채이는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시현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뭔데..?
 
유시현:... 선배가 사라지고.. 앞으로 남은 나날들을 살아야한다는게 가장 두려웠어요. 아, 이거 평생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한탄하는 목소리였지만 부분부분 농조가 서려있었다. 하지만 두려웠던 것은 진심이었다. 정말 두려웠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하면 돼요? 선배가 편해질 수 있는 방법...알려주세요. (이제 당신을 놓아줘야겠지)
 
현채이:... 비밀로 하기엔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나도 너한테 내 비밀 다 알려줬으니까 쌤쌤 치자. (가라앉은 시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선지 덩달아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왜 두려운지 이유는 구태여 묻지 말기로 하자. 죽어가는 마당에 그거까지 알면 내 처지를 진심으로 한탄할 것 같으니까) ... 노을이 지기 전에 나를 죽이면 돼.
 
유시현:그래요. (당신을 향해 돌아본 얼굴에는 조금은 편안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 진짜 이 짝사랑에 이별을 고할 때가 된거야. 이만하면 됐어.. 당신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게요.
 
더 이상 말하면 진부할까 싶지만, 우리가 사는 인생은 온갖 모순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유시현, 당신의 삶도 그렇습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틈, 결과가 반대로 나올 때,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완벽한 계획이 틀어졌을 때.
 
물론 미시적으로 보면...... …
 
가장 직결된 감정이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언제나 채이는 당신의 모순을 투영하는 존재 자체입니다.
 
사랑과 친애, 그리고 그 언저리에 눅진히 곰팡이 핀 미움의 감정 등...
 
굳이 이렇게 나열하지 않아도 그 이상을요.
 
그러나 완벽하게 일상에는 균열이 갑니다.
 
세계의 멸망이라느니, 저 애를 죽여야 한다느니, 전부 바보같은 소리입니다.
 
어째서 채이는 저렇게 담담한 건가요?
 
현채이:(저를 향한 시선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온전히 시현만을 담은 갈색 눈은 여느때처럼 올곧은 눈빛이었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가 일순 부드럽게 휘어진다) 고마워. 괜찮다면 네가 그 꽃을 간직해줬으면 좋겠어. 살아있는 건 나보단 네게 더 잘 어울리거든.
 
잠시 후 채이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섭니다.
 
턱을 치켜들어 올려보는 하늘을 따라 바라보면, 쾌청한 하늘의 가장자리에 얄팍하지만 분명한 붉은 기운이 돋아옵니다.
 
그가 말없이 옥상의 끝으로 다가가, 허리보다 조금 낮은 높이의 난간을 붙잡곤 그대로 뒤돕니다.
 
그리고 당신과 시선을 맞추곤 웃습니다.
 
어째선지 '정말' 채이가 죽어버릴 것 같아요.
 
한 번 그의 장례를 목도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듯한, 영영 사라지고 증발해, 다시는 당신의 손에 잡히지 못할....
 
현채이:내 몸은 완전히 노을이 지면 버티지 못해.
 
아무리 극심한 모순이라도 종국에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옵니다.
 
현채이:오늘이 하지여서 다행이다. 너와 비교적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세계를 이루는 법칙은 언제나 동일하죠.
 
현채이:.. 시현아, 나는, 이제 아픈 건 지쳤어.
 
그렇다면 이제는 산란함에 대한 해답에 마주할 수 있습니다.
 
현채이:차라리 죽음을 두 번 겪어야 한다면...
 
당신은 비로소 ─를 마주합니다.
 
현채이:... 나를 이대로 밀어 떨어뜨려줘.
 
미움과 사랑은 본질을 같이 합니다, 유시현.
 
유시현:...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지금까지 한번도 하지 못했던 것을.. 당신을 살며시 안아주었다. 고생했다고, 자신의 애정의 상대가 당신이라서 좋았다고,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함축적인 의미들이 모여 따스한 온기가 되었다.)
 
현채이:(한 번도 닿은 적 없던 시현의 온기가 닿자 모든 걸 체념한 것처럼 흐렸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채이가 놀란 눈을 느리게 두어 번 깜박였다. 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시현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야, 몸을 끌어안은 온기가 시리도록 다정했으니까. 입꼬리를 올려 작게 웃으며 손바닥으로 시현의 등을 느리게 토닥였다) ... 지금까지 미안했어. 갑자기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한 것도, 가끔 차갑게 굴었던 것도. (문득 채이는 지금이 아니면 더는 자신의 마음을 알릴 수 없으리란 걸 직감한다. 당연하겠지. 죽은 사람은 다신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걸 앎에도 자신과 다르게 앞으로 생을 이어나갈 시현에게 괜히 짐을 얹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음에 애꿎은 입술만 달싹였다. 어떻게 해야 최선의 선택일까. 정답이랄 게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채이는 마지막이나마 해답을 찾고 싶었다)
 
유시현:차갑게 굴었던 건 알고 계시네요. (키득 웃으며 등을 토닥였고, 이미 지난 것들은 추억이 된 것처럼 농조를 담았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것도 다시는 당신을 보지 못할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미 한번 경험한 이별이었으니. 그러니...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당신에게 해도 괜찮은 걸까. 분명 시원히 당신을 보내주려 다짐했건만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았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거기서 다시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비록 이어지진 못하더라도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만들어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선배.. 지금까지.. 좋아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현채이:이 상황에서도 한마디도 안 지는구나, 너. 이럴 땐 그냥 아니었다고 예의상 부정하는 거야. (귓가에 울리는 시현의 웃음소리에 아무리 각오했다지만, 다시금 맞이할 죽음의 앞에서 본능적으로 굳어졌던 몸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차츰 가벼워지며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시현은 저가 없어도 잘 살 테니까. 삶의 이유를 언젠가 꼭 찾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토닥이던 손길을 멈추고 시현을 끌어안았다 놓아... ... 주려고 했는데, 한참 후에 들리는 말에 그대로 얼어붙는다) .... ... 응? (시현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한 터라 동그래진 눈을 깜빡이는 태가 퍽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나마도 이윽고 정신을 차린 채이가 얼굴에서 그런 모습을 전부 걷는 바람에 얼마 가지 못했지만) ... 진작 말하지 그랬어. (지금껏 시현에겐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던 사무치게 다정한 언사가 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안고 있던 팔을 천천히 풀어내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 마주 볼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선다. 입가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너도, 내가 지금까지 좋아하게 해줘서 고마워. 좋아하게 된 사람이 너라서 다행인 것 같아. 너처럼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은 처음 봤거든. 그게 다 꾸며진 거라 해도. 그래도 좋았어. (곧 눈을 천천히 깜박인다) ... 하지만, 시현아. 가끔 나쁘게 굴어도 괜찮아. 너무 착해지려고 할 필요 없어.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거니까. 너무 착한 모습에 강박을 가지지 않아도 돼. .. 전부터 이 말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네. 마지막인데 너무 잔소리만 하나. (머쓱한 웃음을 띠며 목덜미를 문지르더니 곧 결연에 찬 얼굴로 시현을 본다) 잘 있어.
 
유시현:(자신의 말을 다 하고서야 후련해진 얼굴로 널 놓아주려는 순간에... 마찬가지로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에, 움직임이 멈췄다. 같은 마음이었구나. 그런데 생각보다 먹먹하고 슬프기 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지막에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당신도 날 좋아해주고 있었구나. 지금까지 혼자 앓고 자책해오던 것들이 헛짓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로 마주 본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가 그려졌다. 착한사람인척 다정한 사람인척 하는 그런게 아닌 정말 당신에게 지어보이고 싶은 얼굴이었다.) 선배도 저한테는 너무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저한테 그런 말 해준건 선배가 처음이에요. 다음에 인연이 있다면... 그땐 조금 더 일찍 말해드릴게요. (자신의 작은 다짐을 말하고는 결연에 찬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며 이별을 받아들였다.) 잘 가요. 현채이 선배.
 
당신은 채이의 바람을 이루어주기로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에게 끝을 맺어주나요?
 
떨칠 수 없는 미움? 스며드는 애정?
 
모든 선택은 당신이 하였으므로, 끝을 맺는 것도 당신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예기치 못할 일들로 가득하지만, 인과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당신의 손에 채이가 닿습니다.
 
이 선연한 열기, 이다지도 뜨거울 수는 없어요.
 
그가 당신의 여름을 전부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운명을.
 
찬찬히 그가 흐린 웃음을 자아냅니다.
 
미세히 상기된 뺨으로,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현채이:사랑했어, 잘 지내.
 
상냥한 속삭임은 작고의 실재입니다.
 
학교 바로 아래까지를 좀먹은 어둠이 채이를 통째로 집어삼킵니다.
 
노을이 섞인 초여름의 하늘이 당신의 머리 위로 쏟아집니다.
 
천지가 요동하고 정신과 육체의 경계가 휘말립니다.
 
마지막으로 목도한 채이의 끝은 어땠나요, 손 안에 든 국화는 시리도록 차갑고 이렇게나 서럽습니다.
 
시리도록...
 
장면전환
 
눈을 감았다 뜨면, 그곳은 열熱의 여름.
 
유인有人의 공간.
 
교실입니다.
 
일상의 소음이 귓전을 간지럽힙니다.
 
운동장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뒤틀리지 않은 종.
 
몸을 감싸고 도는 눅진하고 습한 초여름의, 하지.
 
당신의 손에 가느다란 꽃줄기가 잡힙니다.
 
국화입니다.
 
... 다들 청춘이 한 번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빨갛게 물들어 지나갈 여름 이래 다시 만날 날까지 부디 행복하길 바라요.
 
재회할 청명을 앞둘 때가 도래하면 당신과 나의 혼란스러움에도 감히 이름이 명명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유시현:...(손에 들린 국화를 보며 피식 웃음이 그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END A. 당신에게 정애를 고합니다.
 
세계의 구제.
 
PC 생환, KPC 로스트.
 
엔딩 보상: 세계의 부활로 인한 이성 1D6 회복, PC가 시나리오 내에서 획득한 아티팩트나 주술
 
그리고...
 
유시현:
Rolling 1D6
굴림: 1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듣기
기준치: 65/32/13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라틴어 Roll
기준치: 51/25/10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행운
기준치: 55/27/11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유시현:
Rolling 1D10
굴림: 3
Rolling 1D10
굴림: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