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ario writer : 수연

 

2022. 01. 10

Demian X Bel Denisa

KP : 곰탱

PL : 레시 펜들턴

 

 
세션카드
 
새로운 포도주
 
Written By. 수연
 
KPC 벨 데니사
 
PC 데미안
 
2022. 01. 10
 
14:50
 
START
 
“......님.”
 
“용사님! 눈을 뜨세요, 본분을 다하셔야죠!”
 
요란스럽게 구는 목소리가 성가시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의 숨소리는 고르고 잠은 깊디 깊습니다.
 
흔들리지 마세요.
 
이 목소리의 정체와 목적, 결과마저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잠자리에 들었던 당신은 원하는 순간에 눈을 뜹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평온하고 평화로운 방의 모습입니다.
 
당신은 아침을 맞습니다.
 
머리맡의 창에는 바깥 풍경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궤도만 보입니다.
 
그러니 바깥의 일 같은 건 신경 쓰지 말아요.
 
데미안:... ... (조용히 혼자만 남은 공간에서 눈을 뜨며 팔을 눈 위로 올려둔다)
 
이제 막 아침이 밝았는지 하늘이 희끄무레합니다.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는 사이 성가신 목소리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내내 세상을 구하라고 떠들어대던 그 목소리는 낙원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술이나 잠에 취해 당신의 정신이 허물어졌을 때 가까스로 틈타는 게 고작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듣지 않고자 하면 언제든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꿈자리는 뒤숭숭했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어라, 무슨 꿈을 꿨더라?
 
데미안 지능 판정
 
데미안: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긴 의자에 벨이 누워있었습니다.
 
회칠한 것처럼 파리한 얼굴은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섬뜩한 기분과 함께 잠에서 깨어납니다.
 
나쁜 꿈을 꾼,
 
데미안 이성 판정
 
데미안: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화 없음
 
데미안:...이젠 꿈까지 지랄이네... (이불을 끌어오며 몸을 묻어버린다.)
 
당신이 이불을 끌어오던 그때,
 
익숙한 노크소리가 들립니다.
 
데미안:... ... (누가 노크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지.)... 들어와..
 
벨 데니사:(빼꼼) 좋은 아침~?
 
데미안:... 좋은 아침..
 
벨 데니사:오늘도 꿈 꿨어? 표정이 안 좋아 보이네~
 
데미안:(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냥 항상 비슷하지 뭐.
 
벨 데니사:으음, 매번 내용이 똑같은가 보네.
 
데미안:그랬나... (멍하니 이불을 바라보다 협착에 놓인 안대로 손을 뻗어)
 
벨 데니사:(멍한 모습에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상하게 여기 들어 온 뒤로 꿈을 꾸더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데미안:... ... 어쩌겠어...자업자득이지. (가져온 안대를 차며 이미 텅 비어버린 눈 위를 쓸어낸다.)
 
낙원에 들어온 지도 벌써 사흘째, 두 사람은 매일 꿈을 꾸고 있습니다.
 
벨의 꿈은 늘 내용이 달라지는 데 반해, 당신은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벨 데니사:얘기가 그렇게 되나...~
오늘은 꿈이 어땠는지 안 물어 봐?
 
데미안:아, 그렇지.. 오늘은 어땠는데?
 
벨 데니사:음, (눈동자를 도륵 굴리며 지난 밤을 회상하더니) 이번엔 바닷가에 서서 석양을 바라보는 꿈이었어! 근데 어느 순간 그게 로 변해버린 거 있지..~
 
벨의 꿈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첫날에는 어두운 밤중을 헤매다가 쏟아지는 빛을 맞으며 깼고, 이튿날에는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의 뒤집히는 바람에 깼으며,
 
오늘은 바닷가를 헤매다가 피를 보고 깬 거죠.
 
아주 좋은 꿈도 무척 나쁜 꿈도 아닙니다.
 
어딘가를 헤매는 꿈은 어느새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데미안:그래? 오늘도 비슷하네.
 
벨 데니사:... 뭐.. 그렇지.
 
당신의 꿈은 똑같습니다.
 
내내 잠들어있는 벨을 보는 겁니다. (죽은 건지 잠든 건지 모르겠지만요)
 
확실한 건 그 얼굴이 지금의 벨보다…… 과거에 알던 벨과 닮았다는 걸까요.
 
꿈을 꿀 때마다 실감합니다.
 
눈앞의 벨은 벨이지만 벨이 아니라고.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똑같이 만들었는데도 어딘가 달라요.
 
웃는 입꼬리가,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뺨에 닿은 손가락이.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한데……
 
어째서일까요?
 
데미안 관찰 판정
 
데미안: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때, 따뜻하고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아침 식사가 준비된 모양입니다.
 
데미안:아침 다 되서 부르러 온거야?
 
벨 데니사:그렇지~ 매번 이 시간대였잖아.
이제 일어날 생각이 조금 생겼어?
 
데미안:그래, 가야지-.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를 짧게 쓰다듬고 일어섭니다.) 고마워.
 
그래요.
 
밤은 끝났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언제까지고 꿈과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식사나 할까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 걸요.
 
먹지 않는다고 딱히 죽지도 않겠지만요.
 
장면전환
 
식당까지 짧은 복도를 걷는 내내 좋은 냄새가 납니다.
 
오늘의 아침은 그라탱입니다.
 
부드러운 생선살과 새우, 달걀, 채소를 넣고 푹 구워낸 그라탱입니다.
 
그릇을 뒤적거리면 치즈가 쭈욱 늘어납니다.
 
곁들이는 흰 빵과 몇 종류의 버터, 오렌지 주스도 보입니다.
 
낙원은 정말 편리한 구조입니다.
 
당신이 생각만 하거나 바라기만 해도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무슨 소리냐면 이 메뉴는 어젯밤 당신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잠들었던 바로 그것이란 뜻입니다.
 
데미안:(식탁의 의자를 빼주고는 반대편에 앉는다.)
 
벨 데니사:고마워~ (식탁 앞에 앉아 커틀러리를 든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설거지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알아서 깨끗해지고 제자리에 돌아가거든요.
 
마법처럼.
 
낙원은 겉보기엔 평범한 저택처럼 보입니다.
 
단출한 1층 건물로 거실, 당신의 방, 벨의 방, 식당, 서재, 드레스룸, 실내 온실 등이 딸려 있습니다.
 
데미안:(식사를 마치고 평소처럼 거실로 나온다.)
 
높은 천장, 탁 트인 거실.
 
부드러운 양탄자와 푹신한 소파가 있습니다.
 
TV는 하릴없이 켜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데미안 행운 판정
 
데미안:
기준치: 50/25/10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프로그램의 제목은 ‘비타민’.
 
건강에 좋은 발효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자와 의사, 발효주 제조사가 나와서 발효주를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발효주론 보리를 발효시킨 맥주, 포도를 발효시킨 와인, 쌀을 발효시킨 막걸리 등이 있으며
 
천연 재료의 항산화 성분이 노화를 막아준다거나, 칼슘, 인, 철 같은 유익 성분이 들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의사: 적당히 마시는 술은 약 기운을 잘 퍼지게 해 온갖 사기와 독기를 없애며 혈액을 잘 통하게 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면서…….
 
술이 몸에 좋을 수도 있나?
 
별일이네요.
 
데미안:...지루하네.. (가만히 티비를 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벨 데니사:(나만 조금 섬뜩한가..? 짐짓 어두워진 표정으로 제 팔을 쓸어내린다)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역시 조금 재미없다. 그치?
 
데미안:뭐, 상술 같은 뻔한 이야기니까. (심드렁한 표정으로 채널을 바꾼다)
 
그때,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불이 꺼집니다.
 
데미안:..?
 
형광등이 나간 듯 검게 변합니다.
 
블랙아웃.
 
암전이 시야를 가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전까지 곁에 있던 벨도 보이지 않습니다.
 
스위치를 눌러도 불은 켜질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데미안:...벨..?
 
데미안 듣기 판정
 
데미안: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익숙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이후 서로의 손끝이 닿습니다.
 
데미안:.... ...닥쳐... (작게 읆조리다 손끝에 닿는 감각에 그대로 손을 잡고 끌어당깁니다.)
 
벨 데니사:... 데미안?
 
데미안:....응..
 
벨 데니사:.... .... 나만 들려, 이 소리?
자꾸 뭔가 달그락 거려.
 
데미안:달그락...거린다고?
 
벨 데니사:(보일 리도 없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어둡고 제대로 들리는 게 없어서 무서운데 자꾸만 귓가에서 뭔가 달그락대. 이상해, 무서워...
 
데미안:... (손끝에 잡히는 널 끌어안으며) 괜찮아. 아무일도 없을거야...
 
벨 데니사:.... (팔에 힘을 주어 널 꾹 끌어안는다)
 
전원 관찰 판정
 
벨 데니사: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데미안: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이 켜집니다.
 
스위치를 누를 때는 꼼짝도 하지 않았던 어둠이 물러갑니다.
 
벨 데니사:.... ......
 
데미안:... (불이 켜지자 당신을 살펴보며) 괜찮아?
 
벨 데니사:(생각해 보면, 데미안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을 원하는 거잖아. 찾고 있는 사람도 그일 것이고.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사실이 다시금 폭풍처럼 밀려든다. 팔을 늘어뜨리고 한발짝 물러난다) ......
 
데미안:...벨...?
 
벨 데니사:.... ....... 아무도 없어.
 
데미안:무슨 소리야... 나 여기 있잖아.
 
벨 데니사:.. ... 너도 결국 그 사람 찾는 거잖아. 내가 아니라. 진정으로 날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데미안:...! 아니야, 벨. 이러지마. (설마 또인가요. 또 다시 망가지고 부서져서 내 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걸까요. 그건 안됩니다. 싫어. 그만....멀어진 네 팔을 붙잡아)
 
벨 데니사:.... 정말 아니야? .. 나 너무 외로워.... 같이 있는데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자꾸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러잖아. 나는 나인데..! (붙잡은 손을 떨쳐내진 못하고 울음기 가득한 얼굴로 외칩니다. 제발 그냥 봐주면 안 돼? 투영해서 보지 마. 나는 네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있는 대로 바라보면 안 되는 거야?)
 
데미안:.... 내가... 내가 미안해... (또다시 혼자는 싫습니다. 그 영겁의 시간 속에 혼자...아니 신이 되지 않았어도 혼자였죠. 아무도 자신의 옆에 있지 않았어요. 아무도... 하지만 무서워요. 또 다시 나 때문에 당신이 죽어버리면 어떡하죠? 사라지면? 그럼 다시 만들면 그땐?) 안그럴게. 내가 잘못했어...
 
벨 데니사:........ ... (간곡한 목소리에 사무치던 외로움과 슬픔이 조금 무뎌지고 누그러드는 착각이 듭니다.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여기 있고, 우리는 이 작디 작은 세계를 본딴 것에서 살고 있어요.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요. 우리가 있잖아요. 데미안이 있으니까. 네가 있으니까... 왠지 그거 하나로 전부 다 충족되는 기분입니다) ... 응.
 
다시 모든 것이 잠잠해졌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던 벨도 원래대로 돌아왔고요.
 
데미안:... ...
 
벨 데니사:..... (내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서 기분이 안 좋아진 걸까? 걱정하는 낯이 조금 어두워집니다) ... 데미안?
 
데미안:미안... 미안해... (마치 속죄하는 듯한 말을 되풀이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애초에 자신이 신인 이 세계부터가 잘못된게 아닐까요? 애초부터 자신이 없었더라면 그사람도 당신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요. 전부 나 때문에, 나 때문입니다.)
 
벨 데니사:...... 괜찮아. 나 이젠 괜찮으니까... (이렇게라도 하면 당신이 조금 나아질까. 심란해 보이는 당신이 염려되어 제 손으로 둥근 뺨을 쓰다듬어 내립니다. 그 사람도 이전엔 이런 식으로 위로를 해주었을까요? 자신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르잖아요. 둘은 엄연히 다르니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의 곁에 있어주면 되는 일이죠)
 
데미안:... ... (말 없이 뺨에 스치는 온기에 얼굴을 묻습니다. 지금 이 온기는 여전히 자신의 옆에 있습니다. 언제까지 일지는 알 수가 없죠. 되도록이면 오래...아니면 영원히...자신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당신은 내 옆에 있으면 안되는데... 원하는 것과 이성이 상충되니 머리속이 복잡하기만 합니다.)
 
벨 데니사:... 조금 쉬는 게 어때? (자신의 손바닥에 말 없이 얼굴을 기대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오릅니다. 그래요. 결국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건 나예요. 그 사람이 아니라. 어차피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지 않나요? 없어서 날 만든 거잖아. 그러니까 만들어진, 비로소 완성되어 당신의 곁에 있어주는 나만을 봐주면 되는 일이에요)
 
데미안:... 그래야겠네... (하지만 그 온기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오랜시간 너무 외로웠던건 자신도 마찬가지니까요.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기에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벨 데니사:방까지 데려다줄게.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듯 손을 뻗어 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는 손을 잡고 네 방문 앞까지 걸어간다. 이런 상황에도 들여주지 않는 건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벨은 당신을 문 앞까지 데려다 줍니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까와 다를 것 없는 방의 풍경이 당신을 반겨주겠죠.
 
벨의 말대로 당신은 지금 휴식이 조금 필요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혼자서 조용히 쉬다 오는 건 어떤가요?
 
벨은 잠깐 동안 혼자 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테니까요.
 
데미안:...고마워... (활짝 열린 문 앞에 서서 손을 놓기 싫은 사람처럼 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쩌겠어요. 너무 깊어져버리면 당신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느리게 손을 놓아주며 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당신은 혼자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당신의 방은 어떻게 생겼나요?
 
있어야 할 것은 온전히 있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적당히 방을 둘러보며 생각해봅시다.
 
데미안:(아침에 일어났던 침대에 앉아 주변을 천천히 둘러봅니다. 더블베드 옆에 있는 협탁과 방 한 구석에 있을 옷장, 그리고 몇권의 책이 꽂혀있는 책장이 전부겠죠.)
 
여느 방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 공간의 주인이 신이라는 것 정도겠죠.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하잘 것 없는 일상 속 한 장면일 뿐이에요.
 
조금 안정을 취하니 기분이 제법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정전이 되어 놀란 것은 벨도 마찬가지일 텐데, 너무 자신만 생각한 건 아닐지.
 
때늦은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그때였습니다.
 
쿵, 쿵, 쿵.
 
데미안:...?
 
머리 위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린 것은.
 
천둥 번개 같기도 하고 공사 소리 같기도 합니다.
 
어딘가 익숙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면, 천장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때 이런 소리가 났었죠.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천장의 틈바구니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큰 소리와 함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립니다.
 
데미안:뭐....뭐야?
 
멈출 줄 모르는 커다란 비가 바닥으로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적시는 걸로 모자라 옷을 흠뻑 젖게 만들고, 무서운 속도로 내부에 차오릅니다.
 
물살이 거세게 경고합니다.
 
이대로라면 익사할 거라고.
 
물론 당신은 전지전능한 신이니 그럴 일은 없지만요.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요?
 
아무리 신이라 한들 물에 담궈지면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데미안:(갑자기 들어찬 물줄기에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천장에 뚫린 구멍을 막아봅니다.)
 
데미안 손놀림 판정
 
데미안:
손놀림
기준치: 20/10/4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삐끗, 거세게 넘치는 물살에 젖은 손이 구멍의 근처도 가지 못하고 미끄러집니다.
 
하지만 흘러내리는 물의 태도가 아까보단 친절해지지 않았나요?
 
다시 한번 해봅시다.
 
데미안:콜록... 젠장할...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일이 가득이니 머리속이 정리될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일어난 일부터 끝내고 봐야겠죠. 다시금 손을 뻗어 구멍을 막아봅니다.)
손놀림
기준치: 20/10/4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그렇게 얼마나 헛손질을 해댔을까요.
 
20분의 수고 끝에 쏟아지던 물은 모조리 욕실로 사라지고, 천장은 스스로 고쳐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물난리가 끝이 났습니다.
 
데미안:... ...
 
젖은 바닥에서 발을 들면 나뭇가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데미안:(잔뜩 지친 눈으로 나뭇가지를 바라보다 주워듭니다)
 
데미안 지능 판정
 
데미안: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물에 휩쓸려 들어온 거겠죠.
 
별로 반갑지 않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그러고 보니, 벨은?
 
당신의 방이 이런 꼴이 되었는데 그의 방이라고 해서 이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습니다.
 
데미안:(신경질적으로 나뭇가지를 던져버리고는 방문을 열고 나옵니다)
 
거실로 나오면 조금 젖은 풍경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벨의 방은 건너편 끝 방입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습니다.
 
데미안:벨..? (불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어봅니다)
 
모든 것이 젖은 방의 한가운데 그가 주저앉아 있습니다.
 
뚝, 뚝.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고체보다는 가볍고 기체보다는 무거운...
 
작은 액체가 고개를 숙인 벨에게서 떨어져 나옵니다.
 
눈이 있을 곳에서요.
 
그렇다 함은... 저것은, 눈물일까요?
 
데미안:베...벨...괜찮아?
 
벨 데니사:... (훌쩍. 언뜻 빨개진 코끝이 실룩입니다. 손등으로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냅니다. 괜찮은데, 괜찮지 않은 것도 같아요. 이상합니다. 왜 계속, 이렇게, 하염없이... ..... 슬프죠? 손등으로 볼을 짓누르며 넌지시 고개를 들어 데미안을 바라봅니다)
 
이유도 원인도 없는 슬픔이 벨의 눈에 고여, 눈물로 쏟아집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떨어집니다.
 
데미안:벨...? 왜 그래?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설마 혼자둬서? 아까도 너무 외롭다고 했었잖아요. 이번에도 나 때문인건가요? 서둘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품에 끌어안습니다.)
 
벨 데니사:.... 아니야, 그냥... (갑자기 슬퍼서. 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데미안은 자신 말고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늘 죄책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슬프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작은 단어 하나가 당신에겐 얼마나 크고 무거울지 감히 어림도 되지 않으니까요)
 
뚝뚝 흘리다 보면…...
 
투명하던 눈물에 붉은색이 섞여들기 시작합니다.
 
주르륵 흐르는 붉은 피.
 
당신에겐 익숙한 모습입니다.
 
땅을 쪼개고, 뼈를 긁는 소리, 붉은 별 아래로 흘러넘치던 피.
 
하필이면 벨의 상처를 떠오르게 하는 슬픔입니다.
 
데미안 이성 판정
 
데미안: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변화 없음
 
데미안:벨..?? 피가... (얼굴이 사색을 물듭니다. 갑자기 왜 이런거죠? 분명 잘못된건 없었는데? 서둘러 입고 있던 셔츠 자락으로 피를 닦아내며 흰 셔츠가 붉게 물들어갑니다)
 
벨 데니사:.... 응? (그제야 당신의 셔츠 자락에서 피를 봅니다. 갑자기 왜? 분명히 사무치던 슬픔이 눈물로 흘리내리던 것 아니었나요. 왜 피로 변한 건지 자신도 모릅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까부터 이상한 일만 일어나는데 자신 혼자 동떨어진 기분입니다. 아니, 데미안도 알 리 없으니 혼자는 아닌가요?)
 
마른 천이 붉은 색으로 젖어갈 무렵이 되면, 갑자기 흘렀던 피를 닮은 눈물은 돌연듯 멈춥니다.
 
모든 것이 급작스럽습니다.
 
겨우 1층짜리 공간에서 안락을 취하겠다는데.
 
그마저도 사치스럽단 말인가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안도합시다.
 
눈앞의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으니까요.
 
데미안:.... (자신에게는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쉬는 것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전부...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가요... 차라리 이럴바에는 죽어버리고 싶어요. 제발 누구든 좋으니까 날 좀 죽여줘. 아우성이 익사할 것처럼 숨이 막히는걸 자각했을 땐, 자신의 손으로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벨 데니사:..?! 데미안, 지금 뭐하는 거야?! (화들짝 놀라 당신의 손목을 붙잡습니다. 힘을 주어 떼어낸다고 해서 떼어질 의지일까요?)
 
데미안:벨...항상 이래... 내가 원하는걸 이루면 항상 이런 일이 생겨... 다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실소를 터뜨리며 눈의 안광이 사라져갑니다. 손은 여전히 목을 향하지만 소용없다는걸 이미 알고있어요.)
 
벨 데니사:그게 무슨 말이야. 이젠 아니잖아. 그래서 여기 들어온 거면서! (이젠 울음의 주체가 생겼네요. 당신의 손을 붙들고 애원하듯 웁니다. 제발 이러지 마)
 
데미안:... ... (이렇게 해봐야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어요. 그저 다 소용없는 발악일 뿐이죠. 목을 조르던 손은 힘없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허망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눈 앞에 있는 당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습니다.) 난.... 그냥 너랑 있고 싶었을 뿐인데...
 
벨 데니사:... (나랑 같이 있잖아. 갈 곳 없는 말이 목구멍에서 흩어져 바스라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네 곁엔 내가 있잖아. 따위의 말은 그에겐 기만이고 위선일 뿐이죠. 염원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자신이 하는 거라곤 고작 말 없이 당신을 품에 안고 등을 다독이는 것 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던 걸지도 모르죠)
 
데미안:(왜 계속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이젠 그냥 조용히 살면 안되는건가. 잠시 인간이었을 적에 저지른 죄가 많아서 지금 다 돌려받고 있는 걸까요. 유일하게 자신에게 남은건 당신 하나뿐인데... 떨리는 손을 올려 등을 끌어안습니다. 마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요. 당신은 사라지면 안 돼.)
 
벨 데니사:(제 존재를 새기는 것처럼 마주 안아주는 행동에 등 뒤로 몰래 웃음 짓습니다. 단 둘이라는 건 꽤 로맨틱하고 효율성 있는 단어죠. 당신에겐 나 밖에 없다는 걸 확인 시켜주는 확인사살과도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슬퍼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요. 손을 올려 아까와 같이 천천히 뒷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괜찮아.
 
데미안:....응... (죽지는 않았어도 목을 조른 여파로 조금은 쉰 목소리가 맴됩니다. 그래요.. 조금 다르다고 해도 똑같은 너 일거야. 지금 내 옆에 있는 너면 충분해. 존재를 확인한 손은 천천히 풀어집니다.)
 
벨 데니사:목 다 쉬었네.... 물이라도 조금 마실래? 한결 나아질 텐데. (걱정스럽다는 듯 내린 눈꼬리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당신이라면 이런 자신도 사랑스럽다 여겨줄 게 분명하죠)
 
데미안:...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식당으로 가면 커다란 창에서 적당히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라탱 특유의 오래 끓인 수프 냄새가 납니다.
 
치즈와 해산물, 야채와 우유가 뒤섞인 부드러운 냄새.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가 햇볕에 숨지 못하고 하얗게 빛납니다.
 
벨의 도움을 받아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데미안 행운 판정
 
데미안:
기준치: 50/25/10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갓 구운 빵 냄새가 납니다.
 
그라탱 냄새가 아니라, 새로운 음식의 냄새가 납니다.
 
데미안:...? (자신이 생각하지도 않은 냄새에 고개를 듭니다.)
 
시선을 돌리면 아일랜드 식탁에 클로시가 놓여 있습니다.
 
데미안:(왠지 이질감이 듭니다. 이런걸 떠올린 적이 있던가요? 손을 뻗어 클로시를 열어봅니다.)
 
뚜껑을 열어 보면 무화과타르트가 담겨 있습니다.
 
아, 그날과 똑같은 것입니다.
 
꼭대기를 장식하는 무화과는 설탕을 발라 반지르르하게 빛나고 다디단 향기가 감미롭게 떠다닙니다.
 
침이 고이는, 좋은 향기입니다.
 
어서 나를 먹으라고…… 무화과가 스스로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다시 보니 그것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합니다.
 
데미안:(급격히 안색이 창백해집니다. 그날의 악몽이 온몸을 휘감는 섬칫한 감각이 선명해요. 존재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손으로 밀어내 식탁 아래로 떨어진 뒤였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밀쳐낼 필요도 없습니다.
 
부정한 감정을 떠올리자마자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젠 지겨울 정도입니다.
 
데미안:... ... (숨이 불안정하게 헐떡이며 얼굴에 빈공간이 아려옵니다. 손으로 안대를 움켜쥐며 상체가 아래로 고꾸라집니다.)
 
벨 데니사:..? 데미안? 왜 그래? (화들짝 놀라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잔은 놀라서 놓쳤는지 바닥을 뒹굴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데미안:....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얼굴에 식은 땀이 흐르지만 숨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킵니다.)
 
벨 데니사:(식은땀을 손바닥으로 훔쳐주며 걱정 어린 눈길을 보냅니다) 어디 아픈 건 아니고...?
 
데미안:괜찮아... 잠깐 헛것을 봐서 그래... (얼굴을 쓸어주는 손에 기대다가도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고개를 듭니다.)
 
벨 데니사:...... ..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네. (괜찮은 척, 표정을 바꾸지 않고 손을 거둡니다)
 
데미안:.... 그래...그런가봐....
 
벨 데니사:역시 아까 더 쉬었어야 했던 걸까..~
 
데미안:지금 방에서는 더 쉴 수도 없어... (이미 다 말랐겠지만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벨 데니사:그럼 어떡하지~ .. 내 방도 아직 조금 젖어 있을 텐데... (손으로 턱을 짚으며)
 
데미안:괜찮아...차라리 서재에 가 있을게.. (지친 몸을 일으켜 서재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벨 데니사:(여전히 걱정된다는 듯 바라보며) ... 혼자 있을 거지?
 
데미안:(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에 떨어져있는게 좋겠지만 아까 일도 그렇고 신경이 쓰여서 쉽게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 이번만이야.. (결국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벨 데니사:(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그 위로 제 손을 포개 올리고 활짝 웃는다) 응!
 
장면전환
 
윈도우 벤치가 딸린 서재입니다.
 
창밖으론 언제나 그랬듯이 넓은 하늘만 펼쳐져 있습니다.
 
비가 올 양인지 잿빛을 띠고 있습니다.
 
창의 양옆으론 책장이 촘촘하게 서 있습니다.
 
벨 데니사:비가 오려나..~
 
데미안:그런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벤치에 앉아)
 
벨 데니사:비 오는 거 별로 안 좋아했었지?
 
데미안:그랬지. 괜히 빈곳이 아프거든.
 
당신이 그렇게 말하자 창밖이 환해지더니 날이 맑게 개입니다.
 
맞아, 당신은 신이었죠.
 
원하면 날씨까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책장에는 백 권 남짓 되는 책이 꽂혀 있습니다.
 
▶: 자료조사 판정을 통해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데미안:(날씨가 맑아지자 조금은 표정이 편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을 한번 슬 둘러봐)
 
데미안 자료조사 판정
 
데미안: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책장에서 책 하나를 꺼내 듭니다.
 
어떤 책인가요?
 
데미안:(인체 해부와 관련된 책이네요. 왜 이걸 꺼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벨 데니사:(데미안을 바라보다 자신도 책 하나를 꺼내옵니다)
자료조사
기준치: 65/32/13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데미안 행운 판정
 
데미안:
기준치: 50/25/10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책의 마지막 문장이 바뀝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뚝 잘려있어서 다음 내용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익숙한 문체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겹도록 들어왔던, 당신을 채근하던 그 목소리잖아요.
 
성경 구절인 게 분명합니다.
 
데미안:... ...
 
▶: 원한다면 성경을 찾아 이 구절을 대조해볼 수 있습니다.
 
데미안:(지겹도록 귓가에서 맴돌던 목소리가 진절머리나지만 책장에서 성경을 찾아본다.)
 
데미안 지능 판정
 
데미안: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어디서 보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래되고 흐려진 기억은 본디 그런 법이죠.
 
데미안:... (뭐 상관없지 않을까요. 또 자기들 멋대로 할거잖아요. 내 의견이 언제 필요라도 있었을까.)
 
당신과 벨이 책을 읽고 있으면, 땀이 삐질삐질 납니다.
 
실내 온도를 너무 올려둔 걸까요?
 
날이 좀 덥지 않나 싶습니다.
 
……. 좀이 아니라 미칠 듯이 덥습니다.
 
양 뺨이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익어버릴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뜨거워졌지?
 
데미안:(갑자기 더워진 공기에 머리를 쓸어올린다) 이번엔 또 뭐야..?
 
고개를 돌리면 창밖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저 멀리서부터 타오르는 하늘.
 
불꽃과 연기에 휩싸여 화려하게 치장한 풍경.
 
노을이라기엔 불길하고, 석양이라기엔 끔찍한 색.
 
굉음과 함께 긴 꼬리를 그리며 별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데미안:... ....
 
촘촘히 박혀 있던 별들은 검은 구멍을 남기고 아래로, 아래로 추락합니다.
 
지금이 낮이었나?
 
벌써 밤이 된 건가?
 
반사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고,
 
쾅!
 
땅에 처박힌 별들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낙원의 지축을 흔듭니다.
 
저 멀리서 계속해서 별들이 떨어집니다.
 
데미안:...?!!
 
다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그저 당신이 제자리로 돌아가라 명하면 됩니다.
 
데미안:젠장...
좀.... 그만할 때도 됐잖아...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내며) 작작하고 돌아가...
 
데미안 대인기능 판정
 
데미안:
위협
기준치: 50/25/10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떨어지던 별들은 궤도를 바꿔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체질을 녹일 듯이 뜨겁던 날씨도 차차 적정 온도로 돌아옵니다.
 
데미안:....하....
 
익숙하기 짝이 없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벨의 눈도 멀쩡합니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평온하게 끝났습니다.
 
……그때도 이랬다면, 벨은 다치지 않고, 죽지도 않을 수 있었을까요?
 
데미안:.... .....
 
설핏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벨 데니사: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콜록, (작게 마른 기침을 하며 제 목을 약하게 움켜 쥡니다. 목이 조금 마른 것 같은데.... 아까 너무 울어서 그런가...?)
 
데미안:...? 벨? (기침소리에 생각에 묻히기도 전에 뒤를 돌아봅니다)
 
벨 데니사:.. 응? (불편한 기색을 감추고 웃으며)
 
데미안:(웃으며 감춘다고 모를 자신이 아니죠) 왜 그래. 어디 불편한거야?
 
벨 데니사:아니 그냥... 목이 조금 말라서.. 별 거 아니야.
 
데미안:정말 괜찮은거지..? (방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더 불안한 기색이 얼굴을 스칩니다.)
 
벨 데니사:.. 물만 좀 마시면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옅게 웃으며 말하더니 책상 위에 책을 덮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데미안:... ...
 
벨 데니사:(네가 말이 없자 다시금 웃으며 예의 그 목소리로 말한다) 괜찮다니까.
 
데미안:응... 알았어.
 
벨이 나가고 혼자 남은 서재는 지나치게 조용합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낙원은 한 사람의 목소리라도 없으면 이렇게까지 고독한 곳이었군요.
 
그렇게 18분이 지났습니다.
 
이상하게 벨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분명 괜찮을 거라 말하지 않았나요?
 
데미안:... (자꾸만 드는 불안한 생각들을 멈출수가 없습니다. 결국 서재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합니다.) 벨?
 
식당에 가면 바닥이 죄 유리 투성이입니다.
 
잔이 깨지기라도 한 모양새입니다.
 
바닥 한 구석이 깊게 패여 있는 걸 보니, 벨이 제 성질에 못 이겨 잔을 집어던진 것 같네요.
 
데미안:... 벨...? (바닥에 널부러진 유리조각들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벨을 바라봅니다.)
 
벨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벨 데니사:(짜증나..... 식탁을 짚은 손이 하얗게 뜰 정도로 주먹을 꽉 쥔다) ... 목 마른 게 안 사라져..
 
데미안:...그래서 잔을 던진거야?
 
벨 데니사:...... 짜증나게 하잖아.
 
데미안:(손짓 한번으로 바닥에 널린 유리조각들을 치워내고 가까이 다가갑니다.)
 
벨 데니사:...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7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살짝 주춤, 하더니 그 자리에 가만 있는다)
 
데미안:... 왜 그래? (손을 들어 하얗게 질린 손을 감싸며) 괜찮아 잠깐 그러는 걸거야.
 
벨 데니사:..... 잠깐, 이라기에는 계속 이런단 말이야. 이상한 충동도 들고.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한쪽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쥔다)
 
데미안:이상한 충동?
 
벨 데니사:... ....... ...
 
데미안:....벨 말해봐. 지금 네 상태가 어떤지.
 
벨 데니사:.. .... ... 피,
 
데미안:피?
 
벨 데니사:...... 그것만 마시면 될 것 같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아니, 확신이야. 그것만 마시면 이 이상하고 불편한 갈증 따위 사라질 거라고!
 
데미안:... ... (그 말에 아무 망설임도 없이 팔뚝을 걷어냅니다. 그리곤 당신의 입 앞까지 내밀어요.) 자, 얼마나 마셔도 상관없어. (뭘하든 죽지 않는 몸인건 이미 여러번 시험해봤으니까요)
 
벨 데니사:... 미쳤어? 데미안, 이건 아니야. 내가 싫다고! (하지만 자꾸 핏줄이 선연한 팔뚝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정말 미쳐버린 걸까요? 감히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를 탐해서 저주라도 받은 걸까?)
 
데미안:벨, 괜찮아. 어차피 안 죽는거 알잖아. (질색하는 당신과 다르게 태연한 말이 이어집니다.)
 
벨 데니사:안 죽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왜 자꾸 나한테 이러는 거야? 뒷걸음질 치며 입술을 꾹 깨뭅니다)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데미안: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여긴 너 그리고 나 뿐이잖아. (뒷걸음치는 만큼 다가가) 여기서 네가 마실 수 있는 피는 나 말고는 없어.
 
벨 데니사:.........
 
한사코 거절하던 벨은 결국 마지못해 당신의 팔뚝을 뭅니다.
 
깨물린 살을 고통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자신의 피로 갈증을 채우는 벨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나요?
 
데미안:...- (고통이 얼굴이 잠시 구겨지며 앝은 신음소리가 입안을 맴돈다)
(*고통에)
(당신을 만들면서 뭔가 잘못 됐던 걸까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하지만 딱히 경계심이나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어찌되었건 이것도 자신이 책임질 일이니까요. 당신을 이렇게 만든건 나니까요.)
 
벨 데니사:(처음엔 괜찮았던 기분이 갈수록 이상해집니다. 피를 마시면 마실 수록 귓가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해졌기 때문입니다. 종내에는 그 안에 무엇이라도 들은 양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역시 처음부터 하질 말았어야 했다고. 불쑥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떠올립니다. 아니, 떠올렸다기 보다는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는 게 적확한 표현이겠죠. 과거의 기억입니다. 지금의 자신이 아닌, 원본이 되는 이의. 단단한 이가 자신을 물어뜯고 피를 마시는 ...... ....... 헉. 퍼뜩 고개를 듭니다. 입가에 잔뜩 묻은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네게서 멀어집니다)
 
데미안:(갑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간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작은 구멍이 2개 뚫린 팔에 셔츠를 쓸어내리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뭔가... 잘 못 되었어요.) 벨...?
 
벨 데니사:.... 응? .. (부름에 본능적으로 대답하더니 곧 제 상태를 인지한 듯 팔을 들어 느리게 입가를 문질러 닦습니다. 피부 위로 번져 뭉개지는 핏방울이 먼 옛날을 상기 시킵니다)
 
데미안:...왜 그러는거야? 또 어디가 이상해? (한발자국씩 당신에게 다가가)
 
벨 데니사:.. 아니, 아니야. ... 괜찮아. (전부 괜찮아. 하지만 이런 기억은, 없었는데.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손을 등 뒤로 가져간다)
 
데미안:... ...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등 뒤로 숨긴 손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곤 태연히 붉은 핏방울을 닦아냅니다.)
 
벨 데니사:(흠칫 놀라는 것도 잠시 뿐입니다. 자신에게 묻은 피를 닦아내주는 걸 보며 입을 다뭅니다)
 
데미안:...말해줘. 지금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줘야 알 수 있잖아.
 
벨 데니사:.............. 어차피 내 기억도 아니잖아.
 
데미안:..... ..... 누구의 기억일거라고 생각해?
 
벨 데니사:..... 당연히 내 원본이겠지.
 
데미안:..... .... 확신할 수 있어?
 
벨 데니사:.. ... 그러면?
 
데미안:네가 뭘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 앞에 보이는 흰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내 피를 마셨다면 내 기억일지도 모르지. 이미 오래 지나버린...
 
벨 데니사:.........
(이걸 가지고... 그 오랜 시간을 살았다고? ..... 답지 않은 동정심일까요. 평소였다면 시끄럽게 떠들었을 목소리가 조용합니다. 자신은 그 무엇 하나 해줄 수 없으니 당연하겠죠. 괜찮다고 위로해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정작 는 알지 못합니다. 내가 가진 기억이라고는 .... 단편적이고 극히 일부일 테니까요)
 
데미안:....내가... 왜 널 만들었을거라고 생각해? 왜... 만들게 됐을까. (역겹고 괴로운 기억이 등골을 타고 섬뜩하게 신경을 파고듭니다. 이건 내 업보이자 씻을 수 없는 죄이고 평생을 안고 있어야할 짐이다.) 내가 죽였어... 고작 세상 하나...나 하나 살자고 내가...(손 끝에 스치던 머리차락은 힘없이 떠나가고) 이 손과 입으로 먹어치운거야....
 
벨 데니사:....... 살기 위해 그런 건 아니잖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눈 앞의 이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오래 전의 자신을 먹었을 리 없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고통을 지고, 나를 볼 때마다 슬픈 눈을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단순한 이유로 그랬겠나요. 분명 자신은 알지 못하는 뒷이야기가 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는 말해주지 않겠지)
 
데미안:... 맞아. 이유가 있었어...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난 이미 죄를 저질렀고 그 얼굴을 잊지 못하고 널 만들었어. 그래놓고 이제는 널 힘들게 만들고 있지... (다가왔던 발걸음은 이제 뒤로 하나씩 멀어집니다.) 전부 내가 신이기 때문에 이렇게 된거야... 애초에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서는 안 됐어...
 
벨 데니사:......... (자신은 모르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반감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보여도 원본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는데, 어째서? ... 그저 묵묵히 네 얘기를 들어주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데미안:.... 다 내 잘못이야... (인간이었던 시절이라면 하지도 않았을 자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넌 나랑 가까이 있으면 안되는거야...
 
벨 데니사:.. 그만. 그만 해. ... 이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야.
내가 네 곁에 없으면 어디에 있어? 그런 거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자꾸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나 하잖아. 내 생각을 정말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런 말은 하지 마. (덤덤하지만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잇더니) .. 옷 갈아입고 와. 괜히 불편하게 그러고 다니지 말고.
 
데미안:...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정말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 행복한 신이라는게 어디 있겠어요. 인간들은 항상 신의 구원을 바라고 신에게 소원을 빌지만, 정작 신의 소원과 구원은 누가 들어주는거죠? 아무도.. 내가 바라는건 아무도 들어주질 못해요. 결국 힘없는 걸음을 돌리며 드레스 룸으로 들어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방에는 좌우로 옷걸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당신과 벨이 즐겨 입는 옷이 차곡차곡 걸려 있습니다.
 
데미안:(물과 피로 젖은 옷을 벗고 깨끗한 셔츠를 꺼내듭니다.)
 
옷을 갈아입고 옷걸이를 둘러보면, 익숙한 옷이 눈에 띕니다.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벨과 당신이 세계 멸망의 날에 입고 있던 것입니다.
 
데미안:... ...
 
벨이 입었던 의사 가운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 있는지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데미안:(말없이 다가가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어봅니다.)
 
주머니에서 잡히는 건 돌입니다.
 
이게 뭐지?
 
꺼내 볼까요?
 
데미안:(주머니에서 잡히는 것을 꺼내들어 살펴봅니다.)
 
그것들은 다름아닌 보석입니다.
 
빨간색, 파란색, 옥색, 녹색, 흰 줄무늬를 가진 검은색,
 
또 빨간색, 연두색, 투명한 청록색, 노란색, 하늘색, 불그스름한 주황색, 영롱한 보라색까지.
 
총 12개의 보석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피와 먼지, 더러운 것이라곤 조금도 묻지 않은 채.
 
데미안:왜 이런게 여기...
 
당신은 자연스럽게 그 보석들을 부르는 다른 이름을 기억해냅니다.
 
벽옥과 남보석, 옥수와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과 녹옥, 담황옥부터 비취옥에 청옥, 자정까지.
 
……이 이름들을 어떻게 알고 있지?
 
흔한 보석의 이름도 아닌데.
 
어딘가 막연한 기분이 듭니다.
 
데미안 지능 판정
 
데미안: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성경의 한 구절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요한 계시록 21:19~20: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데미안 관찰 판정
 
데미안: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보라색 자수정에 벨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데미안:... ...
 
이름이 쓰인 보석은 순금 테두리를 따라 아름답고 정교한 모양으로 장식되어있습니다.
 
얼핏 지구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끝부분에 부러진 흔적이 있습니다.
 
이 아래로 무언가 더 이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보석에서 벨의 이름을 발견한 당신은 불길한 기분을 느낍니다.
 
데미안 이성 판정
 
데미안: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변화 없음
 
데미안:...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데...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했잖아. 차라리 죽여달라고도 해봤다.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러는건데.)
 
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요?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데미안:... ...
(결국 다시 가운 주머니 안에 보석들을 넣어놓습니다. 밖에 있는 당신에게 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알아...내 잘못인거 알고 있다고...
(꺼낸 옷을 대충 걸쳐 입으며 드레스룸을 나온다)
 
벨 데니사:이제 와? 생각보다 조금 걸렸네.
 
데미안:응... 그런게 좀 있어서.
 
벨 데니사:그런 거? ... 또 이상한 일 겪고 왔어?
 
데미안:조금은... (하지만 상관없죠. 그저 자신의 잘못을 되새기라는 것처럼 놓여있었으니까요.)
 
벨 데니사:..... 기분 전환이라도 조금 할래? (온실이 있는 쪽을 곁눈질하며)
 
데미안:....그럴까. (조금은 씁쓸하게 웃어보이며 당신의 손을 잡고 온실로 향합니다.)
 
자그마한 실내 온실입니다.
 
격자 창틀에 매달린 유리는 투명한데도 불구하고 빛을 받아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나고 있습니다.
 
언젠가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말이에요.
 
머리 위로 얽히고설킨 덩굴 식물과 발치에 흐드러진 꽃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집니다.
 
온실 내부에는 두 사람이 좋아하는 꽃이 잔뜩 피어있습니다.
 
누가 심거나 물을 주고 돌보지 않았는데도 하룻밤 사이 자라난 것들입니다.
 
온실을 가로지르는 얕은 시내가 투명하게 반짝거립니다.
 
온도도 습도도 적당한 곳.
 
아름답고 다디단 것이 가득한 곳.
 
그야말로 낙원이라 불리기에 모자랄 것이 없는 곳입니다.
 
걷다 보면 길게 휘어진 나뭇가지 하나가 뺨을 스칩니다.
 
끝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과일이 매달려 있습니다.
 
성큼 다가온 과일 내음에 머릿속까지 달게 절여지는 것 같습니다.
 
데미안 행운 판정
 
데미안:
기준치: 50/25/10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또다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데미안:...
 
벨 데니사:(.... .. 문득 눈을 찌푸립니다)
 
데미안:...또 무슨 소리가 들려?
 
벨 데니사:... 아까랑 똑같아. 자꾸 달그락대. 거슬리게.
 
데미안:귀에서 들리는 소리는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모르겠네. 나도 좀 닥쳐줬으면 하는데 말을 안듣거든. (이젠 익숙하다는 듯이 말해)
 
벨 데니사:(짜증나. 귓가를 신경질적으로 긁다가 손을 내린다) 그럼 어쩔 수 없네..~
 
훅, 여름을 떠오르게 하는 부드러운 온풍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흩트려놓습니다.
 
꽃잎이며 잎사귀, 가지와 뿌리에 이르기까지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모든 산 것이 무어라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들을 생각이 없다면 닿지 않을 목소리입니다.
 
아니,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돌아오라고, 세상을 구하라고, 다시금 우리의 주인으로 행사하라고…….
 
데미안:.... ....
 
갑자기 흰 비둘기가 훅, 날아듭니다.
 
데미안:...?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작은 새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살아있는 것은 실로 오랜만에 봅니다.
 
어디로 들어온 거지?
 
데미안:어디서 날아온거지..?
 
이곳엔 문이 없을 텐데요.
 
비둘기가 날아 온 방향으로 가볼까요?
 
데미안:... ... (결국 또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됐네요. 자리에서 일어나 비둘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향합니다.)
 
비둘기를 쫓아가면 두 사람이 가지 않은 곳을 들르는데, 문을 열 때마다 동물이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동물들의 생김새가 어딘가 이상합니다.
 
뿔이 열, 머리가 일곱 달린 짐승.
 
표범과 비슷하나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진 것.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생긴.
 
그 뒤를 따라 마찬가지로 기괴하게 생긴 짐승들이 뒤따릅니다.
 
새끼 양 같은 두 뿔이 달린 용.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는 것, 갈빗대를 입에 문 곰을 닮은 것…….
 
녹아내리고 제멋대로 엉겨 붙은 가죽들이 흉측스럽습니다.
 
“──────────────.”
 
이름 모를 괴물이 긴소리로 웁니다.
 
짐승의 것이라기엔 무디고 괴물의 것이라기엔 애매한 울음.
 
그때, 낙원을 배회하던 그것과 눈이 마주칩니다.
 
전원 매혹 판정
 
데미안:
매혹
기준치: 40/20/8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벨 데니사:
매혹
기준치: 44/22/8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그러나 짐승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쫓아오지도, 이를 세우지도 않아요.
 
마치……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요.
 
데미안 지능 판정
 
데미안: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처음 보는 형태의 괴물인데도, 당신은 이것들이 눈에 익습니다.
 
곧 깨닫습니다.
 
맨 처음 만들었던 엉성한 짐승들이라고.
 
언제쯤이었더라, 나흘째였나…….
 
당신이 원한다면 멀쩡한 동물로 바꿀 수도,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전지전능하니까요.
 
데미안:왜 이게 여길... (아까부터 계속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니 이제 골치가 아픕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짓 한번으로 저택에 들어온 동물들을 없애버립니다.)
 
당신의 손짓 한번에 동물들이 사라집니다.
 
벨 데니사:
rolling 1d2
 
(
2
 
)
 
 
=
2
.... 데미안, 우리 밖에 나가 보면 안 돼?
 
데미안:....뭐?
 
벨 데니사: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직접 만든 세계잖아? 안 돼?
 
데미안:..... 내가 왜 그래야하는데?
 
벨 데니사:그냥... 내가 나가고 싶어서?
 
데미안:... ... 안 돼. 애초에 여긴 나갈 방법도 없어. (자기 스스로 나가는 방법을 기억에서 지워버렸으니까.)
 
▶: 현재 KPC는 광기로 인해 세계를 사랑하게 된 상태입니다. PC가 매혹 판정에 성공하면 사랑하는 대상을 세계에서 본인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데미안:그렇게... 여기서 나가고 싶어?
 
벨 데니사:.... 응.
 
데미안:나가면 다시는 여기 돌아올 수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나갈거야?
 
벨 데니사:그래도 상관없어. 난 바깥이 더 좋아.
 
데미안:... .... ....
.... 벨... 내 눈 똑바로 봐. (매혹 판정합니다..)
매혹
기준치: 40/20/8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벨 데니사:...?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네게 돌린다)
 
데미안:... ... 결국... 너도 그런거구나... (얼굴에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역시 그런거였어요.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어요. 날 사랑하지 않는대도 이젠 상관없어졌습니다. 원망하고 욕해도 좋아요. 그냥... 옆에 있기만하면 돼. 손을 뻗어 당신의 눈을 감아내며 결국 깊이 재워버립니다.)
 
당신은 결국 벨을 재우기로 결정합니다.
 
그러고 나면, 문득 밤이 깊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창밖은 어둑어둑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추락을 잊은 것처럼 별들은 총총 빛날 뿐입니다.
 
낙원은 다시금 평화를 되찾습니다.
 
당신도 슬슬 잠자리에 들도록 할까요.
 
데미안:(잠든 당신을 품에 안아들고 느린 걸음이 당신의 방으로 향합니다. 이젠 바싹 마른 침대 위로 조심히 눕혀준 후에는 곤히 잠든 당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며 작은 미소를 지어봅니다.) ...잘 자, 벨...
 
장면전환
 
깊은 잠에 들면, 또 다시 꿈을 꿉니다.
 
긴 의자에 벨이 누워있습니다.
 
회칠한 것처럼 파리한 얼굴은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를 깨닫습니다.
 
벨과 멸망을 피해 도망쳤던 그 성당입니다.
 
좌우로 드리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색으로 빛나며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데미안:... ...
 
새벽 별이 빛나는 아침, 허다한 무리의 웃음과 많은 물소리, 즐거이 부르는 노래, 순결히 갈무리한 세마포와……
 
혼인 잔치.
 
데미안 듣기 판정
 
데미안: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 듣기 특성치를 1D10 상향하고 보너스 다이스를 1개 가진채 재판정합니다.
 
데미안:
Rolling 1D10
굴림: 2
듣기
기준치: 62/31/12
굴림: 39, 69, 73
+2: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0: 보통 성공
-1: 실패
-2: 실패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스테인드글라스 안의 풍경은 평화롭고, 행복하고, 완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래도록 기다렸던 자신의 신부를 맞은 어린양은 즐거이 뛰어놀고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빠진 구석 없이 완벽한 해피 엔딩입니다.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언을 말하는 거라면, 당신의 이야기라면…….
 
긴 의자에 누운 벨이 보입니다.
 
당신이 삼킨 자.
 
과거에 당신의 것이었던 마지막 무화과.
 
사과와 그리움의 대상.
 
죽음을 삼킨 창백한 얼굴 위로, 그림자가 파르르 떨립니다.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처럼 속눈썹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꿈에서조차 단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던 벨이.
 
데미안:....베..리..?
 
벨 데니사:... 덴?
 
드디어 눈을 뜹니다.
 
잠기운이 서린 얼굴은 옛적에 알던 그대로입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복제도, 비슷한 것도 아닌 당사자라고.
 
벨 데니사:다 끝난 거야?
 
데미안:아....아......... (자신을 부르던 그리운 호칭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얼굴에 퍼집니다. 분명 이건 꿈이에요.) 어째서....어떻게....
네가...어떻게.......
 
벨 데니사:..? (고개를 갸웃 기울이다 피식 웃는다) 글쎄~ 기적이라고 해야 될까? 자기가 신이라서 그래~
 
처음 부른 것은 당신의 이름.
 
처음 건네는 말은 그날의 연장.
 
낯선 인사도 괴리감도 전혀 없는 완벽한 재회.
 
벨은 성당에서 헤어진 날에 머물러 있습니다.
 
데미안:그럴리가 없잖아... 몇 번이고 실패했어... 몇 번이고 달랐다고....
 
당신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말한 적 없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꿈에서 깨어납니다.
 
장면전환
 
많은 물소리가 들립니다.
 
창밖으로 검은 밤이 펼쳐지고, 그 위를 할퀴듯 촘촘한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데미안:.... ....
 
축축하게 젖은 공기가 여름이 도착했음을 시사합니다.
 
아직 사위가 어두운 것으로 보아 한밤중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쨍그랑!
 
커다란 소리가 납니다.
 
데미안:제기랄.... .... (주먹 쥔 두 손이 얼굴 위로 올라오며 얕은 신음을 뱉어)
...??
 
무언가 깨진 건가?
 
온종일 낙원과 벨의 상태가 이상하더라니, 당신이 잠든 사이 또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모릅니다.
 
데미안:(서둘러 침대에서 나와 방 밖으로 나옵니다)
 
소리를 따라가면 낙원의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에 도착합니다.
 
걷는 내내 빗소리만 웅장할 뿐, 날카로운 소리는 다신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고적함이 어쩐지 별이 내리던 멸망의 때 같았다면 기시감일까요.
 
TV마저 멈춰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거실, 서늘하게 식어 아무 냄새가 없는 식당, 책과 정적으로 가득 찬 서재,
 
조명이 모조리 꺼져 깜깜하기만 한 드레스룸을 건너 도착한 곳은 실내 온실입니다.
 
온실의 문은 한 뼘쯤 열려 있습니다.
 
그 사이로…….
 
데미안 관찰 판정
 
데미안: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달콤한 포도 향기가 무르익었습니다.
 
당신이 문을 여는 순간.
 
찰박, 발아래에서 물 소리가 납니다.
 
어느새 온실에는 붉은 물이 발을 적실 정도로 충분하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낮에는 보지 못했던 녹음의 덩굴이 온실을 뒤덮고 있습니다.
 
다디단 향기가 머릿속까지 절일 것처럼 강렬합니다.
 
당신은 이것이 포도나무이며 바닥을 뒤덮은 것이 포도주임을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깨닫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물어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렇다는 확신이 듭니다.
 
당신이 포도의 존재를 깨닫자마자 덩굴마다 송이송이 보랏빛 열매들이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탐스럽기 짝이 없다가도 다닥다닥 엉겨 붙은 모양새가 징그럽기도 합니다.
 
포도나무 사이에 서서.
 
포도주의 바다에 발을 적신 채.
 
현실의 벨은 꿈속만큼 창백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습니다.
 
장마라도 시작될는지, 빗줄기는 여전히 우후죽순으로 쏟아집니다.
 
달도 별도 빛나지 않는 어두운 밤입니다.
 
볼 것이라곤 전혀 없는데 벨은 무엇에 저렇게 시선이 팔린 걸까요.
 
물방울이 창문에 긴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합니다.
 
데미안:... ... 벨.. 여기서 뭐하는거야..? (온실 안으로 들어와 발이 젖는건 신경도 쓰지 못한채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벨 데니사:...... 데미안,
....... 돌아왔어.
 
데미안:뭐..?
 
벨 데니사:그 사람이 돌아왔다고.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벨이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데미안:무슨 말이야. 누가 돌아왔다는거야.
 
벨이 창밖에서 시선을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벨 데니사:네가 그토록 찾던 사람.
 
데미안:... ....뭐...?
 
온실에는 어느새 다른 꽃과 나무는 모두 지고 탐스러운 포도만 잔뜩 영글었습니다.
 
장대비가 내리는 이 밤에 그 열매를 취할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요.
 
보고 싶어 마지않던 진짜 벨이 되돌아왔다는 걸 알게 된 당신은 어떤 반응인가요?
 
벨은 그런 당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끼나요?
 
그 말을 하기를 망설였을까요.
 
망설이지 않았을까요.
 
포도 향기가 자욱한 가운데 차가운 숨소리가 드나듭니다.
 
여름에 나는 과일이 무르익었는데도 도통 따뜻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외로움 탓일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설익은 여름인 거예요.
 
데미안:그럴리가....
 
신의 한계는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으로 오래 머물렀던 당신은 자신의 전지전능을 의심하고, 죽음을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했습니다.
 
다시 만들었던 모든 벨이 완벽할 수 없었던 것은, 만든 이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었던 거지요.
 
참 얄궂은 일입니다.
 
겨우 모든 것을 멈추고 둘만의 세계에 틀어박혔는데.
 
낙원을 창조하고 수리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그 한계를 부수어 놓다니…….
 
두 사람은 간밤에 꾼 꿈을 떠올립니다.
 
돌아온 진짜 벨은 멸망의 날에 이별했던 성당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런즉 나가기 위해서는 이 낙원을 열어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나가는 방법은 오직 당신만 알고 있는데, 당신은 결단코 나가지 않을 작정으로 자신의 기억을 지워두었습니다.
 
이곳은 아무도 여는 법을 모르는 밀실이란 거죠.
 
그토록 그리워하던 상대가 도착했다는데, 만나러 갈 수 없다니.
 
희비가 교차하고 여러 감정이 비와 함께 일렁입니다.
 
데미안:(그래요. 그토록 바라던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그럼...자신의 앞에 있는 당신은요? 아무리 가짜라 하더라도 분명히 숨쉬고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그가 느낄 상실감은 누가 책임지는거죠? 예전에 자신이라면 분명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겠지만... 너무 신 놀이에 심취한 탓일까요. 머리속이 복잡하기만 합니다.)
 
달그락.
 
벨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진 것은 그때였습니다.
 
드레스룸에서 보았던 자수정입니다.
 
벨의 이름이 적힌 그것입니다.
 
끝부분의 부러진 흔적이 어두운 밤중에도 선명하게 빛납니다.
 
데미안 지능 판정
 
데미안: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끝이 부러진 보석을 보는 순간, 당신은 낙원을 여는 방법을 떠올립니다.
 
낙원을 짓고 남은 것으로 열쇠를 만들었었죠.
 
그리고 다시는 나가지 않기 위하여…….
 
보석에 새겨진 벨의 이름.
 
지웠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 오릅니다.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
 
이미 한 번 해본 방식.
 
결단코 찾을 수 없으면서도 단언컨대 가장 안전한 것.
 
향이 좋고 부드러우며, 독하되 달콤한 그 술은 오직 우리의 낙원에 숨겨져 있습니다.
 
누구도 들고 누구도 나지 못하도록.
 
이것은 당신의 다시는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단 굳건한 의지였겠지요.
 
이 시점에, 당신의 사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그 술을 마셔, 목을 축이고, 낙원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이자 전지전능입니다.
 
이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찾아 헤매던 진짜 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이되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고, 벨에게도 영생을 선물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한계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당신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벨 데니사:.... 데미안?
 
벨이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기시감이 듭니다.
 
이번에는 멸망하는 세계도 녹아내리는 손끝도 없는데, 그런데도 벨에게선 그때처럼 달콤한 향기가 풍깁니다.
 
포도주의……
 
데미안:....또....또 이런 식이야...항상....
 
벨 데니사:(또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만 깜박이고 있습니다)
 
데미안:절대....절대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고... 돌아올리가 없었다고... (머리속을 가득 채운 죄책감과 혼란에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이 이어집니다.)
 
벨 데니사:......
그러면 차라리 외면해.
 
데미안:뭐...?
 
벨 데니사:그렇게 괴로우면 차라리 생각하지 말라고.
여긴 어차피 그 누구도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잖아.
 
데미안:.... ....
 
벨 데니사:나로 만족하고 살면 안 돼? 굳이 그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야? 결국 같은 사람인데. (같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입이 거짓을 고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으니까)
 
데미안:.... 아니... 분명히 달라... 너희 둘을 만든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머리에서 손을 떼어내며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그래...너로 만족했었어.. 분명 그랬으니까 네가 여길 나가는게 싫었던 거겠지... 하지만 벨.... 네가 왜 만들어졌었는지 떠올려 봐..
 
벨 데니사:.........
..... 난 결국 못 이기는 거야? 뭐가 그렇게 달라서? 왜?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 단 한 문장만으로 모든 것이 정의되었다. 난 그를 이길 수 없다. 닮되 닮지 않은 것이라서. 완전히 같은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안 되고 그 사람은 되는 거야? 만들어졌어도 결국엔 만족했잖아!
 
데미안:그 사람은... 널 만든 이유이자...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니까... (처음으로 느꼈던 분명한 감정이었다. 절대 잃고 싶지 않았기에 더 간절했던 것, 어쩌면 인간이었을 시절에 유일하게 내 것이었던 사람. 만족했었어도 난 결국 네가 아니면 안되는 거였던 거야..)
이건 다 내 죄이고... 씻을 수 없는 업보야. 하지만 벨, 난...돌아가고 싶어...
 
벨 데니사:.... .... ....
 
돌아온 벨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떠나려는 당신을, 벨은 잡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잖아요.
 
당신은 벨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그날의 피는 모두 지워진 손끝이 벨을 당기자 순순히 이끌려 옵니다.
 
따라서 기분 좋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칩니다.
 
전부 마시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데미안:날 평생 저주해...
 
벨은 살아 있는 술이었으니까요.
 
아프다고 우는 벨을 달래고, 도망치려는 벨을 잡아 누르고, 무딘 이로 목덜미를 꿰뚫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구태여 설명할 필요 없겠죠.
 
삶은 영화가 아니므로 흡혈은 그저 아프고 축축하기만 했습니다.
 
기분 좋은 황홀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몇 방울 남겨 둔 것이 녹아내린 열쇠일지도 모르니까요.
 
열쇠를 회수하기 위해선 전부 마셔야만 했습니다.
 
달고 독한 맛은 혀끝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진짜 포도주도 아닌데 왜 이리 지독하게 달고, 잊을 수 없을 만큼 독한 걸까요.
 
다 마시고 난 후에는 취한 것처럼 머릿속이 어지러웠습니다.
 
끝맛이 짭짤했다면 눈물이 섞인 탓일 겁니다.
 
베리를 얻고 벨을 잃었다면, 수지타산이 맞는 거래였을까요?
 
당신은 문득 생각합니다.
 
평생토록 미안해야 할 이가 하나 더 늘어버렸다고.
 
당신이 낙원의 문을 열고 나갑니다.
 
바깥의 세계가 어떤 풍경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지창조 같은 건 한 번이 어렵지, 세 번쯤 되면 식은 죽 먹기거든요.
 
문밖을 나서자 비는 온데간데 없이 그치고 저 너머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밤새 젖은 땅 따윈 흔적도 없이 말라붙을 겁니다.
 
당신을 적신 벨의 피 또한 그렇습니다.
 
당신이 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어떤 풍경을 그리건,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건 다 알 바 아닙니다.
 
한눈파는 법 없이 긴 의자 사이를 달립니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의자들을 제치고 맨 앞까지 다다르면……
 
.
 
벨 데니사:덴!
 
그토록 그리웠던 목소리가 당신을 부릅니다.
 
데미안:.... (눈 앞에 물이 고여 흐려지며 입고리가 살며시 올라갑니다.) 오랜만이네, 예쁜아...
 
벨 데니사:오랜만에 이쁘게 입었는데 왜 울어~ (눈물이 살짝 고인 눈가를 엄지로 쓸어주며 활짝 웃는다)
 
데미안:하... 그러게-...(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그리워하던 온기에 얼굴을 부빕니다.) 정말... 너무 보고싶었어...
 
벨 데니사:정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작게 꺄르륵 웃으며 두 손으로 뺨을 감싸쥔다)
 
데미안:내가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돌아와줘서... (닦아내도 흐르는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져) 고마워...
 
벨 데니사:못 본 사이에 눈물이 너어무 많아졌는데~? (닦아내도 계속 흐르는 것을 보더니 손을 내리고, 그 대신 널 품에 껴안는다) 뭐 귀여우니까 상관없나~
 
데미안:이제 다시는 사라지지 마.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품에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부벼) ....사랑해, 베리...
 
벨 데니사:.... (사랑한다는 말에 멈칫, 하며 눈을 깜빡인다) 응? 어? (순간 얼굴이 홧홧해져서는) 당연하지..~? 아니, 음. 근데 방금 뭐라구?
 
데미안:널 사랑해. (망설임없이 똑같은 말을 다시금 전하며 고개를 든다.) 진심이야...
 
벨 데니사:..... 그런 걸 이런 때 말할 생각을 했어..? (이번엔 자신이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한다)
 
데미안:...너는? (고개를 기울이며 시선을 쫓아간다.) 여전히... 날 사랑해?
 
벨 데니사:...~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데미안:(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지며 끌어안은 널 가볍게 안아들고) 사랑해, 베리. 정말 사랑해. (끊임없는 고백이 이어진다.)
 
벨 데니사:.... 부끄러우니까 여러 번 말하지 마..~! (네 어깨에 얼굴을 파묻어놓고선)
 
바야흐로 해피 엔딩입니다.
 
END 1.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PC1 생환? PC2 복귀
 
보상: PC1과 PC2는 재회합니다. PC2는 신의 권능을 가진 채로 인간의 삶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왔습니다. 딱 한 알이 빠졌지만, 포도 알갱이를 일일이 세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